연재소설
3.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배가 고프다. 내가 배고프다고 흐응흐응- 하며 신호를 주니 엄마는 내 신호를 찰떡같이 알아채고는 시선을 자동차 앞유리를 향한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옆좌석에서 부스럭대며 빵을 꺼냈다. 그리고 뒷좌석으로 쑥 손을 내밀어 빵을 나에게 건넸다.
오늘도 치즈빵이다. 내일도 치즈빵일 것이다. 나는 치즈빵이 너무 맛있어서 매일 먹는 건 아니다. 가끔은 빵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에 먹기 싫을 때도 있고 솔직히 좀 물린다. 하지만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익숙하다. 나에겐 음식은 맛보다는 익숙한 것이 중요한 기준이다. 처음 보는 것이나 조금만 모양이 변해도 먹기 싫다. 엄마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굳이 나에게 다른 종류의 빵을 권하지 않는다. 빵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빨갛고 노란 물감을 마구 흩뿌린듯한 창밖 하늘을 쳐다봤다.
병원에 다녀온 뒤 나의 일상은 바뀌었다.
일어나서 어린이집에 가는 것까지는 똑같지만 어린이집 하원 후 나는 더 바빠졌다. 다른 친구들은 하원하면 놀이터나 태권도학원,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
엄마는 내가 쉬는 게 싫은지 일주일을 센터스케줄로 꽉 채웠다. 월, 수, 금요일은 언어치료센터에 가야 하고 화, 목요일은 감각통합센터에 가야 한다. 그 수업들이 끝나면 특수체육, 놀이치료, 인지치료, 미술수업도 가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차를 타고 멀리 있는 ABA센터도 다녀와야 한다. 주말에는 승마까지 한다.
연달아 있는 수업과 이동시간으로 이렇게 센터를 돌고 나면 어느새 바깥은 깜깜해지고 집에 와 저녁밥 먹고 씻으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된다. 아빠랑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은 게 언제인지, 소파에 드러누워 tv만화를 본 게 언제인지 벌써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를 센터에 데려다주는 엄마는 아주 피곤해 보인다.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운전에만 집중한다. 나랑 말할 힘도 없나 보다. 아니면 이야기를 해도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저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와 앞만 번갈아 쳐다보며 운전속도를 낸다. 그렇게 늦지 않게 센터에 도착해서 엄마는 선생님 방으로 나를 들여보내고 마치 미션 클리어한 것처럼 홀가분한 한숨을 내쉬며 대기실 소파에 앉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린다.
센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복도에는 젖소들이 사는 집처럼 문들이 죽 늘어서있다. 선생님들은 엄마와 바통터치하듯 아이를 인계받아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 사이로 들어가게 된다. 벽면 책장에는 여러 가지 장난감과 책들이 즐비하게 놓여있고 방 한가운데에는 선생님과 내가 앉을 수 있는 책상이 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처음 보는 장난감들이 많아 센터에 오는 것이 즐거웠지만 몇 번 와보니 이제는 매번 갖고 노는 것만 갖고 놀고 선생님도 매번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비슷한 레퍼토리로 수업을 했다. 무엇보다 선생님과 둘이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게 답답했다.
선생님들도 가지각색이다. 내가 어떤 장난감에 무심코 손을 대면 호들갑을 떨면서 같이 갖고 놀자고 옆에 찰싹 달라붙는 선생님도 있고(이럴수록 나는 장난감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옆에서 귀 아프도록 계속 조잘대는 선생님도 있다.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나에게 말을 따라 하게 하는 선생님도 있고 내가 잘 갖고 노는 장난감을 갑자기 훽 빼앗아 내 반응이 어떤지 살피는 선생님도 있다. 며칠 전 바뀐 언어치료 선생님은 내가 공룡을 좋아하는 걸 보고 “티.라.노.사.우.르.스, 프.테.라.노.돈” 하며 이렇게 발음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내 눈을 맞추며 열성적으로 수업해 주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선생님은 수업 초반에만 소리 높여 가르치다가 중간중간 폰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걸 종종 봤다.
치료시간은 총 50분인데 그중 40분은 나와 선생님의 수업시간이고 나머지 10분은 엄마와 선생님의 상담시간이다. 내가 별문제 없이 순순히 선생님의 지시에 따른 날에는 선생님들이 오늘 수업 너무 잘했다면서 내 조그만 반응도 크게 부풀리며 호들갑스럽게 말하다가도 내가 짜증을 내거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나에게 큰 문제라도 있다는 듯 엄마에게 나의 잘못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하루는 센터 밖 공사장에서 커다란 드릴소리에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몸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소음이었는데 선생님은 준후가 오늘 산만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엄마에게 말해 억울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이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면 환하게 웃다가도 조금이라도 안 좋은 말을 하면 걱정 반, 분노 반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몸이 이상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몸이 붕 뜨는 것처럼 나른하고 살짝 더운 것 같다. 그런 내 상태를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치료실에 나를 밀어 넣었다.
“자, 준후야. 우리 오늘은 도형 그리기 해볼까?”
선생님이 내 손에 크레파스를 쥐어주며 동그라미 따라 그리라고 하는데 도저히 크레파스를 손에 쥘 힘도 안 난다. 내가 크레파스를 놓고 책상에 엎드리자 선생님은 또 시작이냐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나는 치료시간 내내 울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냈다. 40분 내내 저 상태였으니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선생님은 “준후가 오늘 이상해요.”라는 말만 반복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힐끗힐끗 노려보며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카시트 벨트를 매주며 소리쳤다.
“이게 돈이 얼만데! 여기까지 겨우 와서 하는 게 고작 울기만 하면 어떡하니!”
나는 내 컨디션도 안 좋은데 엄마는 내가 어떤지는 살펴보지도 않고 화만 내는 게 서러워 또 울었다. 울어서 그런 건지 내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날 밤 나는 온몸이 펄펄 끓었고 체온계는 빨간색으로 떴다. 밭은 숨을 내쉬는 나를 부리나케 끌어안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목이 많이 부었네요. 해열주사 맞고 나면 열은 금방 내릴 겁니다. 푹 쉬게 해 주세요.”
바쁜 생활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힘들어져 이렇게 아픈 건가. 해롱거리는 의식 속에서 엄마는 옆에 앉아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일은 토요일이라 승마수업만 빠지면 되니까 주말 동안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수업받자. 응?”
엄마의 말에 진절머리가 나 두 눈을 꼭 감았다. 엄마는 내가 아픈 것보다 치료수업을 받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치료센터를 많이 다녀야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다. 며칠 전에는 자다 깨서 보니 엄마가 ‘그룹치료’라는 또 다른 치료센터를 알아보고 있어 기겁한 적이 있다.
병원에 있는 건 싫지만 치료센터를 안 갈 수만 있다면 여기 계속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바빠야만 엄마는 안심할까. 엄마, 아빠도 회사 다니며 집안일하며 “바쁘다, 바빠.”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나도 바쁘다,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