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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01. 2024

아이가 이상하다

연재소설

2. 아이가 이상하다


□ 특정의 장난감이나 물건을 일렬로 정렬한다. 

□ 반복하여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을 돌린다.

□ 사물의 부분(단추, 신체부위)을 빤히 쳐다본다. 

□ 다른 사람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수인은 검사지를 체크하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수도 없이 한 검사지만 할 때마다 수인을 좌절시키는 것 같다. 검사지에는 상동행동,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등 항목이 나눠져 있고 각 항목에 해당하는 검사문항이 죽 나열되어 있다. 문항을 읽고 준후가 어디에 해당되는지 표시하는데 전부 ‘자주 발견함’에 해당된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된 걸까. 


아이가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만 두 살이 지나서였다. 말이 늦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원래 다 늦다고들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기저귀도 떼지 않았다. 배변훈련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기저귀를 찬 아이는 준후 밖에 없었다. 선생님에게 기저귀를 갖다 주는 손이 민망하긴 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인은 그때쯤 복직 준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화장 안 하고는 밖에 절대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철칙은 오래전부터 깨졌고 세수도 안 하고 퀭한 눈으로 아기띠와 한 몸이 되어 마트며 놀이터를 돌아다녔다. 결혼 안 한 친구들은 차장, 팀장으로 승진했고 이러다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수인은 자신의 품에 잠든 준후를 바라보며 ‘예쁜 흡혈귀’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내 자식이지만 내 피와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내 자식. 수인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메말라 나중에는 모성애마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 더 연장할 거냐는 인사과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인은 복직할 거라고 서둘러 말했다. 빈자리가 있는 어린이집에 준후를 서둘러 입소시켰다.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마다 준후가 자지러지게 울어 출근하는 수인의 마음을 어지럽혔지만 아직 적응기간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도 안 하고 활동시간에도 참여하지 않고 혼자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는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어도 수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할 거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한건 영유아 건강검진이었다. 체격도 크고 건강해 언제나 그래프 꼭대기에 있어 문화센터 엄마들에게 상위 1%라고 은근히 자랑하고 다녔는데 개월수가 늘어날수록 대근육, 소근육 부분에서 점점 못하는 부분이 많아 점수가 낮아졌다. 소아과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 병원에서 검사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정확하게 진단은 내리지 않았지만 의사가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 수인은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뱃속 저 깊숙한 곳에 숨겨놨지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 것. 나랑은 상관없는 그것. 그 단어를 꺼내면 정말 현실이 될 것 같아 애써 외면한 것을 수인은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에 입력했다. 


‘자폐’


그 뒤로 여러 병원에 전화해 진료예약을 했다. 정신과에서 검사해야 되나 싶었지만 이 어린애가 무슨 정신과인가 싶어 처음엔 재활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어쩌면 무서워서 그랬었던 것 같다. 여러 병원을 다녔고 이번에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유명한 소아정신과도 어렵게 예약을 잡았다. 


수인은 이번이 마지막 병원이다 생각하며 검사 마지막 문항을 쳐다봤다.


□ 다른 사람(부모, 형제, 친구)이 아파해도 관심이 없다.     


문득 내가 아프면, 내가 죽어도 준후가 눈물을 흘리고 슬퍼해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글퍼졌다. 준후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할 때의 슬픔 말고는 슬퍼하지 않을 것임을 왠지 수인은 직감했기 때문이다. 


처음 간 재활의학과 말고는 다 같은 진단이었다. 그래도 오진이길 바랐던 수인의 바람은 마지막 병원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준후는 F84. 전반성발달장애(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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