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5.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느낌
"준후야, 좀 이따 머리 깎으러 미용실 갈 거야. 오늘 너 얌전히 머리 깎으면 엄마가 젤리 사줄게. 알았지?”
그러면서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집으며 손가락으로 싹둑싹둑 자르는 시늉을 했다.
“아악!”
나는 너무 놀라 엄마한테서 저만치 도망쳤고 엄마는 또 시작이냐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를 안 깎은 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한창 더울 때 머리 밀고 처음이다. 저번에 머리를 밀 때도 장난 아니었다. 미용실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나를 억지로 끌고 들어갔다가 머리를 한 반쯤 깎았을까 미용실 아줌마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항복해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말 그대로 ‘반만 깎은’ 머리로 집에 왔다. 엄마, 아빠는 저대로는 절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다고 내가 깊이 잠든 동안 엄마는 내 귀를 막고 아빠는 바리캉으로 내 머리를 그냥 냅다 밀어버렸다.
민둥한 머리에 검은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송송 올라오더니 지금은 잡초처럼 덥수룩하다. 엄마는 내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내 머리를 볼 때마다 "머리 깎아야 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당사자인 내가 머리 길러도 별 불편함이 없는데 엄마가 왜 저러나 모르겠다. 그렇게 미루던 이발을 엊그제 놀이치료실에 다녀온 후 엄마는 바로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놀이치료실에는 나랑 나이가 같은 아이가 오는데 그 아이는 키가 크다. 얼굴 부분까지는 나와 얼추 비슷한데 머리카락 때문에 걔가 더 커 보인다. 숱이 많고 더벅해 마치 콘헤드처럼 머리가 솟아있는 것 같다. 그 머리만 깎아도 키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예전에 엄마는 그 친구와 친구 엄마를 보며 뒤에서 중얼거렸다.
“저 엄마는 애 머리 관리를 안 해줘, 쯧쯧.”
하지만 엊그제 그 친구의 머리를 보다가 내 머리를 보더니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머리가 그 친구 머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아이도 나처럼 미용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머리 자르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이젠 엄마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하겠지.
“저 엄마는 애 머리를 관리를 안 해줘, 쯧쯧.”
내가 요즘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는 가위질 소리다. 최근에 엄마와 종이 자르는 연습을 몇 번 했는데 가위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는 ‘스윽스윽’하는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그 소리가 내 머릿속에 콕 박혀 그날 내내 나는 스윽스윽하는 소리로 괴로웠다.
내가 쓰는 가위는 그래도 짧고 뭉툭한데 머리 자를 때 쓰는 가위는 내 것보다 훨씬 더 길고 날카로웠다. 내 머리카락이 그 뾰족하고 번쩍거리는 가위로 종이처럼 잘려나간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예전에 멋모르고 엄마 따라 미용실에 갔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미용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도망친다.
엄마는 내가 소리에 민감하단다. 하지만 모든 소리에 민감하진 않고 특정 소리에 나는 놀랜다. 엄마가 부엌에서 믹서기를 돌리면 온몸에 소름이 오도독 돋는다. 그런데 믹서기 소리와 비슷한 청소기와 드라이기 소리는 아무리 가까이 틀어도 아무렇지 않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빠 재채기 소리,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도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나는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이 크게 들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귀가 먹은 건지 괴로워하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하다. 물론 엄마나 다른 사람들은 나를 더 신기하게 여기긴 한다.
듣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피부로 느끼는 것도 예민하다. 머리에 모자를 쓰면 아무리 헐렁한 모자라도 내 머리를 꽉 쪼으는 것 같고 옷 안쪽 태그는 내 목덜미며 엉덩이를 콕콕 찔러 너무 아프다. 물놀이를 좋아하지만 얼굴과 머리에 물 닿는 게 싫어 세수하고 머리 감을 때마다 엄마와 전쟁이다. 엄마는 내가 여섯 살 때까지 나를 안아 허리를 뒤로 젖힌 자세로 내 얼굴에 물이 묻지 않게 머리를 감겨줬다. 점점 불어나는 내 몸과 그걸 지탱하느라 덜덜 떠는 엄마의 가냘픈 손목을 보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아기 때 산 샴푸캡을 이제야 사용하고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아빠가 둘이서 쑥덕거리더니 아빠는 내 몸을 붙잡고 엄마는 내 머리에 물을 들입다 부었다. 나는 내 인생 최초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내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물은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뜨거웠고 내 귀와 코, 입, 눈이 물에 잠겨 질식해 버릴 것 같았다. 엄마아빠는 몇 번 이걸 하다 보면 내가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했겠지만 하면 할수록 나는 패닉에 빠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나중에는 켁켁거리는 기침만 날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경비원인데요. 애가 너무 울고 소리 지른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 애는 괜찮은 건가요?”
알고 보니 내 소리가 화장실 배수관을 타고 아파트 전체로 울려 퍼져 경비실에 항의 전화가 들어간 것이다. 경비 아저씨는 민원도 민원이지만 혹시 내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건 아닌가 싶어 올라와봤다고 하셨다.(이 경비 아저씨가 퇴직 경찰 출신이라고 엄마가 나중에 얘기하는 걸 들었다.) 엄마, 아빠는 경비아저씨에게 아이가 머리 감는 걸 무서워해서 그런 거라며 사정사정하며 상황을 설명했고 아저씨는 내가 괜찮은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돌리셨다.
엄마, 아빠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솔직히 학대가 맞다. 엄마, 아빠야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고 감각이겠지만 나에게는 좀 더 크고, 세고, 다르게 느끼는 걸 참고 감당하라고 강요하는 게 학대가 아니고 뭔가.
물론 나의 남다른 감각을 낫게 하기 위해 엄마는 안 해본 게 없다. 병원에도 가보고 한의원도 방문해 보고 감각통합 치료센터도 다니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엄마가 투자한 만큼 빨리 효과가 나오면 좋겠다는 조급함 대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 무뎌지기까지 많은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도 두려운 마음을 무릅쓰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니 그냥 지켜봐 줬음 한다.
결국 미용실에서 나는 의자에 앉지 않으려고 뻗대 아빠는 뒤에서 나를 붙잡고 엄마는 내 다리를 꽉 움켜쥐어 겨우겨우 깎을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 깎긴 했지만 어떤 곳은 푹 파이고 어떤 곳은 삐죽 솟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용 아저씨는 애가 계속 움직여서 그렇다고, 그래도 이 정도 깎은 것도 대단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머리 깎다가 손가락 다칠뻔했네. 이런 애들은 집에서 깎이는 게 나은데.”
미용실 아저씨는 수건으로 옷에 붙어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계속 탁탁 털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는 연신 죄송하다며 원래 커트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냈다.
한 시간 만에 우린 모두 녹초가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몸부림친다고 힘을 다 뺀 내가 다리에 힘이 풀려 길바닥에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엄마가 그런 나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무섭게 ‘일어나’하며 화 낼 줄 알았는데 엄마가 갑자기 내 앞에 등을 보이며 쭈그려 앉았다.
“준후야, 엄마가 업어줄게.”
엄마는 내가 아기일 때 이후로는 허리가 아파서 잘 업어주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업어준다 하니 어색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다시없을 것 같아 나는 덥석 엄마의 등에 매달렸다. 끙차 하며 엄마가 일어서는데 엄마 무릎이 후들거렸다. 오랜만에 업히니 어색해 나는 편한 자세를 잡으려고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었고 엄마도 불편한지 계속 엉덩이 받친 손을 고쳐 잡았다.
나는 살며시 엄마의 등에 내 얼굴을 갖다 댔다. 나를 붙잡느라 땀이 뱄는지 엄마 등이 축축했다. 그래도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의 등은 따뜻했다. 내 애착이불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엄마에게서 좋은 향이 났다. 엄마의 살냄새와 땀냄새, 화장품 냄새가 각자 따로 나는 듯하면서 이 세 가지가 합쳐져 엄마만의 향기를 만들어냈다. 어디선가 두근두근 소리가 들려 등에 귀를 대보았다. 엄마 몸속 저 깊은 곳에서 북의 진동소리가 들렸다.
북의 진동소리를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바다가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가 되었다. 나의 이 커다란 몸뚱이를 보고 다른 물고기들은 모두 요리조리 피했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나를 포근히 받아주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깊고 넓은, 아늑한 바다를 느낀다. 바다는 다시 나를 업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살 냄새, 엄마의 숨결, 엄마의 심박동 소리, 엄마의 포근한 등. 아까 두렵고 무섭고 불안했던 내 감정들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거나 소리 지를 때는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지만 그래도 가위질 소리보단 낫다. 엄마의 목소리는 나를, 내 주위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엄마가 나를 쓰다듬어줄 때, 엄마가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때 내 안에서 뭔가가 목화솜처럼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느낌은 바로 엄마 자체다.
벌써 우리 아파트에 거의 다 온 걸 보고 나는 아파트가 저 멀리 도망치길 바랐다. 그래야 좀 더 엄마 등에 업힐 수 있으니까. 저 멀리 발그레 해님이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