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6. 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인이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지하 1, 2, 3층은 벌써 만차라며 주차요원이 경광봉을 흔들며 밑으로 내려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수인은 한숨을 쉬고 핸들을 계속 돌리며 밑으로 내려갔다. 순간 요즘 누가 사람들 불러서 돌잔치하나 싶은 생각에 신경질이 팍 났지만 몇 없는 친한 친구 아이의 돌잔치라 안 가볼 수도 없었다.
‘준후도 가족끼리만 모여서 소규모로 했었는데.’
하며 망설였지만 친구가 꼭 와서 얼굴 좀 보여달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 다닐 때 몇몇 동기와 친했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연락하며 지내자고 아주 사이가 돈독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간과 조금씩 달라지는 삶의 방향에 친구도, 우정도 점점 퇴색되어 갔다. 단체 메신저방에 드문드문 글이 올라오면 얘는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쟤는 애 낳았구나 하며 친구들 소식을 눈팅할 정도였다. 수인이 이 메신저방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은 준후를 낳았을 때였다. 속싸개에 폭 싸인 준후사진을 올리니 아직 애가 없는 친구들은 너무 귀엽고 예쁘다며, 엄마 닮은 거 같다 아니다며 자기들끼리 왈가왈부했고 자식이 있는 친구들은 육아헬에 들어온 걸 축하한다며 미리 겁을 잔뜩 줬다. 그 뒤로 하나, 둘 친구들도 아이 사진을 올리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들을 자랑했다. 수인은 준후가 커 갈수록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의 평범한 일상에 점점 배알이 꼬이는 자신을 보며 수인은 조용히 메신저방을 나갔다.
오늘 돌잔치하는 친구는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수인이 단체 메신저방을 나갔을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무슨 일 있냐며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기도 했다. 수인은 친구의 연락을 무시했지만 그 친구는 매번 수인과 준후의 안부를 물어봐 줬고 생일 때마다 조그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 써준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어 수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돌잔치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수인 혼자 참석하려고 했지만 남편은 월요일 아침까지 내야 할 기획안이 있다며 회사로 가버렸다. 그나마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요즘 친정엄마도 허리가 안 좋아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닌다는 소리에 차마 준후 맡아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끔 보니 좀 이쁘게 보이려고 왁싱을 발라는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오랜만에 입은 셔츠가 답답한지 계속 셔츠 목부분을 잡아당기며 준후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오늘은 제발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 돌잔치 오기 전에 준후에게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알아들을 리 없다. 가자마자 유튜브 틀어주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 배터리도 마땅치 않았다. 수인은 제발 오늘만은 돌발행동 하지 말기를 속으로 기도하며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준후와 돌잔치 행사장으로 올라갔다.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얼굴에 빛이 나는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친구는 정성스럽게 올린 머리에 연분홍빛 한복을 입고 해사한 얼굴로 반갑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친구의 아이는 자신이 주인공이란 걸 아는 모양인지 보타이를 맨 채 열심히 사람들 사이로 아장아장 앞으로 고꾸라질 듯 걸으며 장회를 종횡무진 다녔다.
수인은 문득 몇 년 전 치렀던 준후의 돌잔치가 떠올랐다. 가족끼리 하는 행사였지만 수인은 1년 동안 고생한 자신을 위해 신부 화장을 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남편의 팔에 안긴 준후를 보며 수인은 얼굴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1년 동안 내가 이렇게 아이를 키워냈구나 하는 북받치는 감정이 올라왔다. 준후는 돌잡이로 청진기를 잡았다. 집안 어른들이 “어이구, 우리 집안에 드디어 의사 양반 생기겠네.” 하며 좋아라 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족들의 덕담처럼 그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 수인아! 이게 얼마만이야.”
회상에 잠겨있던 수인을 깨운 것은 단체 메신저방에 있던 동기였다. 혼자 온 친구, 남편과 같이 온 친구, 온 가족이 모두 출동한 친구도 있었다. 수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면서 재빨리 자신의 뒤로 준후를 숨겼다.
“어머, 얘가 준후야? 안녕!”
친구가 준흐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준후는 그저 유튜브에 시선이 박혀있었다. 수인은 머쓱해하는 친구에게 얘가 영상 본다고 정신이 없다 하며 웃어 보이고는 얼른 자리를 옮겼다. 돌잔치가 시작되기 전 수인은 동기들이 모여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들에게 준후의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앞에서는 안 됐다, 힘내해놓고 뒤에서는 애가 이상하다며 가십거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왁자한 장내를 사회자가 정리한 후 돌잔치가 시작됐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웃음꽃이 폈고 친구 부부는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인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다 문득 두 테이블 건너 한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처음엔 누군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 강의실 맨 뒤에 앉아있던!’
기억의 저장고를 더듬어보니 대학시절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동기였다. 그 동기는 항상 혼자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았고 강의 끝나고 돌아보면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과 내에서 존재감은 희미했지만 왁자한 교내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아이였다. 졸업 후 일찍 결혼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오랜만에 나타난 동기가 아니라 그녀 옆 전동 휠체어였다. 휠체어에는 10살 전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마치 뼈에 다른 부속품 없이 살가죽만 그대로 얹어놓은 듯 깡마른 아이였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지 고개가 친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한쪽 팔은 기이하게 꺾여있어 보는 사람이 자신의 팔이 뒤틀린 듯 얼굴을 찡그릴 정도였다. 시력도 좋지 않은지 두꺼운 안경 너머 작은 눈으로 열심히 행사하는 모습과 동기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동기의 아이인 듯했다. 누가 봐도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거기 주변 사람들은 돌잔치보다는 그 두 모자에 관심이 쏠리는지 계속 그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자신들만의 세계에 있는 듯 행사를 보면서 속닥거렸고 때로는 키득키득 웃으며 돌잔치를 구경했다. 동기나 그 아이의 표정은 여느 사람 못지않게, 아니 어느 누구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보여주기식 연출이라기엔 그들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자연스러운 일상 같아 보였다.
수인은 그 둘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장애 자식을 뒀다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었다. 수인은 누가 내 자식 이상한 거 알아챌까 봐 자식 숨기기에만 급급했는데 자기 자식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돌잔치 아이보다 더 빛나보였다. 반면 핸드폰에서 나오는 빛에 반사되는 준후의 얼굴은 그늘지고 거무죽죽해 보였다. 같은 공간에서 한 아이는 살아있는 눈빛을 가졌고 한 아이는 죽은 눈빛을 가졌다. 그 눈빛의 차이는 누가 만든 걸까. 엄마가 만든 것일까.
‘아니야. 쟨 그래도 장애가 보이는 거잖아.’
수인은 장애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몸은 불편한데 정신은 멀쩡한 저 아이가 나을까. 아니면 몸은 건강한데 마음 어딘가 삐걱거리는 준후가 나은 걸까. 엄마와 미주알고주알 말을 주고받고 서로 마음을 공감할 수 있지만 어디로 갈 때마다 항상 제약이 뒤따르고 공차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볼 아이. 겉보기에 멀쩡하고 밥 잘 먹고 잘 뛰어다니지만 말도 못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며 엄마와 제대로 된 교감도 나눌 수 없는 아이.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히 왔다 갔다 했다. 어느 쪽이든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문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득 아파트 물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여름이라고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을 위한 간이수영장이 설치되었다. 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준후인지라 물에 얼른 들어가자고 성화였다. 튜브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서로 물을 튀기며 장난치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 안에서 물개처럼 유연하게 헤엄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잠수를 하고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유려하게 헤엄치는 모습에 주위에 어른들은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왼팔이 유난히 짧아 보였다. 햇빛에 비춰 잘못 봤나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물밖으로 나오는 순간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은 모두 그 아이의 팔에 쏠렸다. 왼손이 보이지 않았다. 손뿐만 아니라 팔꿈치 아래가 뻥 뚫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시선을 못 알아차린 건지, 아님 익숙해진 건지 그저 똑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목마르다고 재잘거렸다.
"부럽다."
수인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놀라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 아이의 엄마가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낼 이야기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맞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수인은 준후가 차라리 신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장애’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휠체어를 탄 사람일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뇌병변장애, 절단, 마비장애 등을 떠올린다. 이런 사람들을 딱 보는 순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 아야 할 사람, 신체조건을 극복한다면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발달장애 같은 정신적 장애는 이상한 사람, 피해야 할 사람, 세상과 단절돼야 하는 사람, 평생 비정상으로 살아야 할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눈에 보이는 장애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점자나 지팡이를 이용해 생활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휠체어란 수단이 있고 계단 대신 경사로를 이용할 수 있다. 일자리도 눈에 보이는 장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익숙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기피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장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병이다.
왼팔이 없는 아이가 집으로 가다가 친구들을 만난 모양이다. 친구들은 야구를 하러 가는 모양인지 야구 방망이며 글로브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몇 마디 주고받던 아이들은 인사를 나누며 다시 제갈길을 갔고 그 아이는 잠깐 친구들 쪽을 돌아보다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 아닌가. 저렇게 정신이 멀쩡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이 더 괴로울지 몰라.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며 좌절하고 우울해하지 않을까.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수인은 그날 하루종일 수없이 저울질을 하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무엇보다 남의 장애를 가지고 이렇게 비교질을 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경멸스러웠다. 최악이다.
돌잔치 행사가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인은 그 모자에게 말을 걸어볼까 싶어 그들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궁금했다. 그녀의 저 당당함의 원천은 어딘 건지. 알고 싶었다. 그녀 또한 수인처럼 처음에 많이 힘들었는지. 그 고통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 묻고 싶었다. 사람들이 있어도 넌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지. 어쩌면 그녀도 아픈 경험들과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익숙해져서 그럴 수 있다. 나도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동시에 위로를 주고 싶었다. 그땐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그녀를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오늘은 곁으로 갈게.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여 수인은 황급하게 등을 돌렸다. 동기 주변으로 친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슬쩍 보니 동기는 반가운 표정으로 친구들을 맞이하며 자기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에게 인사했고 친구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 아이에게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그 모자는 상관없다는 듯 대화를 이어갔고 어느 순간 그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틈에 녹아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그녀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주려 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이렇게 사람들 눈을 피해 준후 손을 잡고 급하게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