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8. 어떤 꿈
“준후야, 오늘은 이 옷 입자.”
수인은 옷장에 빳빳하게 걸어 둔 파란색 셔츠와 면바지를 준후 앞에 내밀었다. 매일 헐렁한 티셔츠에 고무줄 바지만 입던 준후는 신축성 없는 옷이 불편한지 벗으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수인은 그런 준후의 손을 제지했다.
오늘은 1년여 만에 다시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사실 2주 전에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때는 검사만 받았고 오늘은 그 검사결과를 들으러 간다. 수인은 마치 시험결과를 들으러 가는 것처럼 긴장되고 파도치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1년 전 처음 검사받았을 때는 준후가 검사실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고 검사 진행 중에도 계속 울기만 해 제대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들어갈 때 징징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저번보단 많이 울지 않고 무사히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검사실 너머 준후가 상담사 질문에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수인은 혹시 아는 건데도 틀리게 말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면서도 내심 준후가 대견스럽고 그렇게 준후를 돌봐온 자신이 뿌듯했다.
1년 사이 준후는 많이 성장했다. 키도 커지고 몸무게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1년 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이 페이스대로 유지한다면 준후는 학교 가기 전엔 평범한 아이가 되어 있을 것만 같다. 특별한 아이가 아닌 ‘평범한 아이’가 되기 위해 수인은 정말 치열하게, 쉼 없이 달려왔다.
수인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걸 싫어했다. 특별히 나서는 것도 없었고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사람들 틈에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무난한 인생이 좋았다. 준후를 키우면서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다른 엄마들은 자녀가 뭔가 특출 나길 바란다.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했으면, 운동을 잘했으면, 말을 잘했으면, 예쁘고 잘생겼으면 한다. 자식이 뭔가 특별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준후에게는 그런 게 아무 필요 없다. 그저 평범하게 자라길, 평균의 삶을 살기를 수인은 간절히 빌었다.
이걸 이루기 위해 일주일 중 7일 모두 치료실, 센터를 돌아다니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준후가 집에서 편하게 쉴 때는 밤에 잠잘 때뿐이었다. 밖에만 돌아다니고 바통터치하듯 바로 다른 치료실에 들어가는 아이가 어떨 땐 안쓰러울 때도 있었지만 수인은 그럴수록 이렇게 해야 된다고, 더 독해져야 된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이의 상태는 곧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의사나 치료사나 사람들이 그랬다. 그 노력의 결과는 수인의 몸이 망가지고 수천만 원의 빚이 생긴 것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아이만 좋아진다면, 정상으로 되길 수 있다면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았다. 아이에게 온 정성과 돈을 쏟아 자폐진단받은 아이를 정상발달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부모들의 수기를 수인은 교과서처럼 읽고 또 읽었다. 다른 부모들도 했는데 자신이라고 못할 것이 없었다. 나도 이런저런 노력을 해서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어 놨다는 성공수기를 쓸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노력의 결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오늘 이곳에 온 것이다. 긴장반, 설렘반으로 짧게 숨을 들이쉰 후 수인은 진료실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준후야, 안녕. 오랜만이야.”
교수는 웃으면서 준후와 수인에게 인사했지만 눈빛은 X-ray처럼 온몸을 투과하겠다는 듯 준후를 스캔했다. 교수는 준후에게 이름이 뭔지, 오늘 기분이 어떤지, 어린이집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준후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진료실을 돌아다녔다.
“요즘 애가 대답을 잘하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평소보다 어수선하고 말을 잘 못하네요.”
수인은 억지로 준후를 앉히면서 교수에게 변명했다. 그렇군요- 수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교수는 키보드 자판을 열심히 두드렸다. 준후 상태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적는 것 같아 수인은 애가 탔다. 1년 동안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준후의 요즘 상태는 어떤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수인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교수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뗐다.
“준후 어머님, 아무래도 준후는 장애 등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수인은 누군가 쇠방망이로 자신의 머리를 후려갈긴 듯 강한 충격을 받았다.
“저희 애가 차도가 전혀 없다는 말씀인가요? 교수님께서 1년 동안 열심히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 하셨잖아요.”
수인은 목소리를 쥐어짜며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는 일부러 눈길을 피하듯 계속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이 열심히 준후 치료에 매진했다는 건 압니다. 어머님은 할 만큼 하셨지만 며칠 전 받은 검사결과와 준후 상태를 봐서는 장애등록을 하는 게 맞습니다. 심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준후는 경증과 중증 중에 중증 장애에 해당될 것 같네요. 계속 괜찮아질 거라고 희망고문하기보다는 빨리 인정하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 준후에게는 더 좋을 것 같군요. 장애등록하면 오히려 혜택도 있고 지원이 많아서 준후 돌보기에 괜찮을 겁니다.”
자기 자식 아니라고 그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냐며 교수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수인은 그저 교수의 뻥긋거리는 입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교수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 의사나 무기징역을 판정한 판사처럼 보였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건만 돌아온 건 결국 평생 장애인이 될 운명이라니.
진료실을 어떻게 나왔는지, 병원 주차장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장애란 말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수인이 아는 장애인은 회사에서 만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20살, 22살의 건장한 청년들로 키가 180이 훌쩍 넘고 생긴 것도 훤칠했다. 평범했다면 뭐라도 자리했을 그들은 길에서 청소하고 쓰레기 줍는 일만 할 수 있었다.
“장애만 아니었어도 참 괜찮은 애들인데. 아깝다, 아까워. 쯧쯧.”
사무실 직원들이 뒤에서 혀를 찰 때 수인도 같이 안타까워하며 불쌍하게 여겼다. 그것뿐이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애인들의 이야기. 그게 내 자식의 이야기가 될 줄 그 누구도, 수인 자신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준후도 나중에 그런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되는 건가. 아니, 오히려 일하고 자기 앞가림할 줄 아는 그 청년들이 대단한 건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 준후는 병원 다녀오며 피곤했는지 카시트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평일이라 고속도로엔 대형트럭들이 많이 지나갔다. 수인은 백미러로 잠든 준후를 흘끗 보며 아까부터 계속 흐르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교수에게는 결국 장애등록을 미루고 싶다고 했다. 교수는 어릴 때 장애등록을 했다가 나중에 재판정기간에 정상발달 범주로 나오면 장애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강조했다. 준후는 이미 골든타임이 끝나 정상아이처럼 된다는 희망은 버리는 게 낫다고 교수는 수인에게 확인사살 시켰다. 오히려 미루다가 나중에 장애등록 하고 싶어도 결과가 애매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그래도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교수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빨리 결정하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일부러 말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나중에 군대 보내봐야 땅 치고 후회하지.”
저 사람은 모른다. 장애인 등록하면 교수 말대로 준후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사회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싶을까. 보험진단금, 장애인 지원 이딴 거 대신 그저 평범한 자식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교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 자기 자식이 그렇게 되어봐야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동안 수인이 쏟아부은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쏟아봤자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뭘 위해 이렇게 달려온 걸까. 수인은 자신의 몸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허탈하다. 무기력하다. 공허하다. 결국 이런 결말을 보자고 아등바등 살았던가. 아이가 잘못되면 다 내 탓이다. 어쩌면 수인은 자신이 욕먹지 않기 위해, 자기만족을 위해 준후에게 그렇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평생 장애아이와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너무나도 힘든 여정임을 수인은 겪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일거수일투족 졸졸 따라다니며 불안과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 남겨질 아이의 걱정을 하며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게 해 달라는 장애 부모의 처절함은 더 이상 남일이 아니다. 수인에게 준후의 장애판정은 준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박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다.
눈물이 멈출 생각이 없는지 눈앞이 부옇다.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가도 수인의 마음처럼 차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만약 이렇게 가다가 죽는다면, 한 순간에 준후와 같이 사라져 버린다면 이 고통이 없어질까.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사느니, 희망도 바랄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며 사느니, 무의미한 존재로 홀대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커다란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무섭게 질주하는 대형트럭들이 지금 이 순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준후는 살짝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슨 재미난 꿈이라도 꾸는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준후야, 엄마랑 같이 가자.
빠아아아앙-!
순간 차가 크게 휘청거렸고 옆차선의 덤프트럭이 크게 클락션을 울리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수인의 차는 도로 옆 벽으로 빠르게 돌진했다.
“수인아, 일어나 봐!”
남편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수인이 힘겹게 눈꺼풀을 여니 남편은 한 손으로 수인을 흔들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찍고 있었다.
“저기 봐! 준후가 뒤집기 하고 있어!”
남편의 폰 화면에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몸을 옆으로 기우뚱하는 준후가 있었다. 얼마나 힘든지 하얀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엄마를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듯 수인을 빤히 쳐다보며 칭얼거리고 있었다. 수인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준후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건 준후 혼자 해내야만 하는 과정이고 스스로 넘어야 할 고비였다.
“영차, 영차! 준후야 힘내!”
어느새 수인과 남편이 같이 목소리를 내며 준후를 응원했다. 부모의 열띤 응원 덕분인지 준후는 몇 번 몸을 기우뚱거리다 뒤집기에 성공했고 수인과 남편은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준후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쪽쪽거렸다.
남편은 수인이 임신했을 때 내심 딸이길 바랐지만 성별을 알고 난 뒤로는 원래 아들을 원했다는 듯하고 싶은 것들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준후 크면 캐치볼도 하고 축구도 해야지. 목욕탕에 데려가서 같이 등도 밀어주고. 같이 게임도 하고 나중에도 술도 한잔씩 마시고.”
“준후가 사춘기 되면 자기가 알아서 잘 가르쳐줘야 돼. 알았지?”
“그럼 그럼. 아들 성교육은 아빠인 내가 담당해야지, 하하.”
남편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준 부모님들의 영향으로 아이에게 공부는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밝고 건강하게, 평범하게 자라주길 바랐다.
“엄마, 나한테는 만화 얼마 못 보게 해 놓고선 엄마는 왜 계속 폰으로 인터넷 하고 동영상 보고 그래?”
“엄마, 공부 못해도 좋다 해놓고선 왜 학습지는 많이 하라 그래?”
요즘 준후는 못하는 말이 없다. 수인이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펼치며 말대꾸를 했다. 결국 할 말 없는 수인이 ‘어디서 쪼그만 게 말대꾸야!’라는 무논리로 준후에게 혼내면서도 준후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싶어 내심 놀랐다.
“엄마. 오늘 있잖아, 유치원에서 만들기 수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민성이가 엄청 크게 방귀 뀌었다! 크크크, 웃기지?”
준후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수인은 저녁상을 차리면서 준후의 수다를 건성건성 들어줬다. 오디오가 쉬지 않아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준후가 사랑스러울 뿐이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올게!”
“차 조심하고 저녁 먹기 전까진 들어와야 해.”
“알겠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운동화를 구겨 신고 급하게 나가는 준후의 뒷모습을 보고 수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미소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우리 준후, 많이 컸네.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투닥투닥 싸움도 할 것이고 얻어터지기도 할 것이다. 친구들도 다 갖고 있는 폰을 사달라고 조를 것이고 수인과 남편은 머리를 맞대고 언제 사줘야 할까 고민할 것이다. 공부 못해도 좋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하니까 불안해서 여기저기 학원을 알아볼 것이고 준후는 학교 마치고 학원 돌고 오면 푹 익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올 것이다. 주말에는 아빠랑 목욕탕도 가고 배드민턴도 치면서 둘이서 실컷 엄마 뒷담화를 하겠지. 키가 엄마보다 더 커지는 순간이 올 것이고 목소리도 굵어지면서 소년에서 남자로 변할 것이다. 몸도 마음도 격변할 시기일 때 부모는 자녀의 변화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서로 부딪히고 싸우며 그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대학을 가고 취업준비를 하고 사회생활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과정을 늙은 수인과 남편은 준후의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며 응원할 것이다.
이런 당연한 일상들, 당연한 미래들인데 수인은 이것들이 왠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안개로 변해버릴 것 같았다. 점점 남편과 준후가 멀어져 간다. 저 멀리서 준후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데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수인은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