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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Aug 23. 2024

엄마가 사라졌다

연재소설

19. 엄마가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떠 주위를 휘익 둘러봤다. 역시나 오늘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삼일째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없는 대신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할머니가 어린이집 등하원 준비 해주고 아빠 밥 차려주고 빨래하고 청소한다. 할머니가 갑자기 우리 엄마가 된 걸까?

               

할머니는 빨래를 개다가, 반찬을 만들다가, TV를 보다가 문득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아이고 우리 준후. 어쩌면 좋노. 느그 엄마 어쩌면 좋노."               

하며 울먹거렸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병원에 다녀온 그날 엄마는 이상하게 휘청거리며 걸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눈이 풀려있었다. 나는 엄마가 넘어질까 봐 엄마 손을 꽉 붙잡았다. 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엄마는 백미러로 계속 나를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운전할 때는 앞을 봐야 하는데 왜 계속 딴 데를 쳐다보지. 엄마가 불안했지만 눈치 없는 잠이 계속 나를 꿈나라로 보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엄마가 오랜만에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항상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 우는 얼굴이었다. 그나마 무표정일 때는 엄마가 기분이 나은 것 같아 엄마가 무표정일 때를 골라 과자를 달라하거나 만화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여태 몰랐는데 엄마는 웃을 때 엄마의 왼쪽 볼에 콕하고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예뻐 살짝 만졌더니 엄마는 더 활짝 웃었다. 엄마의 눈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할머니처럼 늙어 보이지 않았다. 웃는 엄마의 모습은 누구보다 예뻤다. 엄마의 까만 눈동자 속에는 엄마처럼 환하게 웃는 내가 비치고 있었다. 

              

일어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두 눈이 벌건 아빠의 얼굴이었다. 아빠는 내가 깨어나자 다행이라는 듯 웃더니 곧바로     

"선생님! 준후 깨어났어요! 빨리 와보세요!"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파란 유니폼을 입은 여자와 흰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불빛이 나는 볼펜을 내 눈에 이리저리 갖다 대더니 검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준후는 괜찮은 것 같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한쪽 팔과 다리가 욱신거려 고개를 돌렸더니 팔에는 뭐에 쓸린 듯한 상처가 나 있었고 다리에는 커다란 밴드가 몇 개 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스럽고 불안했지만 난 울음을 참고 목구멍을 쥐어짜며 말했다.               

"엄마? 엄마?"     

분명히 엄마랑 같이 차에 탔는데. 그럼 엄마도 옆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계속 나보고 괜찮다고만 하고 정작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피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거나 딴청을 피웠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계속 "엄마, 어딨어?"를 외치며 울었다.               

잠잘 때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엄마는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엄마가 숨바꼭질하자 했는데 같이 안 해서 영영 숨어버린 걸까. 아니면 센터 들어가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숫자공부하는데 내가 계속 딴청 피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니면...

               

엄마가 사라진 지 5일째 되던 날 밤. 문득 재잘거리는 소리에 깨보니 할머니가 식탁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준후아범은 아직 병원에서 안 왔어. 준후 엄마 중환자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이 없어. 에휴, 그러게. 이게 무슨 일이야."     

할머니는 울먹이시더니 코를 크게 킁! 풀었다.

               

"준후? 준후는 괜찮아. 사고 났을 때 운전석 쪽으로만 박아서 다행히 준후는 크게 안 다쳤어. 사람들 말로는 준후 저리 안 다친 게 기적이래.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애라도 살리려고 한 건지 벽에 박기 전에 핸들을 확 꺾었다 하더라고. 아이구, 저 불쌍한 것을 놔두고 준후애미 그리 허망하게 떠나면 안 되는데."  

             

할머니의 말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엄마는 크게 다친 것 같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떠나면 안 되는데-.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우리 반 친구가 막 울면서 등원했다. 선생님이 왜 우냐고 물으니     

"우리 집 강아지가 오늘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아직 떠나면 안 되는데. 너무 슬퍼요."     

그러면서 펑펑 울었다. 나는 하늘로 가면 높이 떠있고 좋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그 친구 곁으로 가서 토닥여주고 어떤 아이는 같이 울기까지 했다. 하늘나라로 떠나는 건 뭔가 대단히 슬픈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항상 내 옆에 있는 엄마. 나의 방패막이 되어주는 엄마.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고 웃고 울고 화내고 짜증 내고 즐거운 순간에도 언제나 함께인 엄마. 어느 누구도 엄마의 대체가 될 수 없다. 나에게 엄마는 엄마 하나뿐인데 그런 엄마가 떠난다고?  

             

"떠나면 안 되는 데에-. 으아아앙!"     

할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통화를 급히 끝내고 나에게 와 울지 말라고 토닥여줬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계속 반복하며 계속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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