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20. 청년
"아!"
순간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통에 수인은 외벽에 손을 기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수인의 외마디에 앞서 가던 사람이 힐끔 뒤돌아봤다. 수인이 괜찮은지 신경 쓰는 것 같아 수인은 애써 웃으며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퇴원한 지 일주일정도 지났지만 아직까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처럼 길을 가다가 핑 어지러울 때도 있고 몸을 조금만 비틀어도 악- 비명소리가 절로 날 만큼 통증이 남아있었다. 병원에서는 좀 더 입원하면서 요양하라고 권했지만 수인은 한사코 빨리 퇴원을 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준후가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한 달 가까이 입원을 했다. 사고 난 후 보름정도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졌는데 수인이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여름 끝자락에 수인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복도를 하염없이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병원 산책로를 거닐며 조금씩 일상의 감각을 찾아보려 했다. 여기 왜 있는 건지, 어떻게 된 건지 더듬거려 보려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기억만은 또렷하다. 준후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에서는 방문객 출입을 금지하여 남편만 보호자로 오고 준후는 입원 내내 볼 수 없었다. 영상통화로 보는 준후는 역시나 엄마가 다쳤는지,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엄마가 보고 싶긴 한 건지 잠깐 엄마 얼굴을 쳐다보고는 금세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준후는 크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어쩌면 신이 우리를 기적적으로 살려준 것은 아닐까 수인은 생각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신 따위는 없다고,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고 악담을 퍼부었는데 그런 신에게 왠지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인 기분이었다.
주말 아침, 남편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갔고 수인과 준후도 밥 먹고 아파트 앞 공원에 산책하러 나갔다. 퇴원 후 수인은 재활 운동 겸 준후와 매일 밖에 나가 산책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자기 신발을 다 신은 준후가 수인의 손을 꼭 잡았다. 준후는 여전히 자신만의 세상에서 중얼거리고 탐색하고 있었지만 수인이 돌아온 이후로 좀 변한 게 있다. 엄마를 그저 이방인처럼 생각하던 준후는 이제 수인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고 예전과 달리 안기거나 손을 잡는 일이 많아졌다.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에게 달려와 수인의 눈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사라져 버릴까 봐 불안한 것처럼.
밤사이 기온차로 나뭇잎과 풀들 사이사이마다 이슬이 맺혀 있었다. 초록빛 이슬을 머금은 신선한 공기가 수인의 머리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자 준후는 또 신이 나는지 막 이리저리 뛰며 돌아다녔다.
"준후야, 천천히 뛰어. 그러다 넘어져."
준후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던 그때 수인의 눈에 저만치서 어떤 청년이 걷는 게 보였다. 아파트 단지 내나 공원에서 몇 번 지나쳐 봤던 남자였다.
이십 대 중반 정도됐을까. 키가 큰 데다 덩치도 제법 있어 더 우람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청년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덥수룩한 고수머리에 이마에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눌러 붙어 있었다. 항상 아침, 저녁시간대에 어기적거리며 열심히 걸어 다녔다. 걷는 게 마치 자신의 임무인 것처럼 그는 묵묵히 걸어 다녔다. 가끔은 허공에 손가락을 흔들 때도 있었고 짧은 괴성을 지를 때도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 때도 있었다. 그런 청년의 10미터 정도 앞에는 항상 챙모자를 깊게 눌러쓴 중년여성이 있었다. 여성이 앞서 가면 청년은 열심히 따라갔다. 어쩌다 한 번씩 청년이 나비나 잠자리에 한눈을 팔면 여성은 멀찍이 서서 청년을 기다렸다. 수인은 처음 그 청년을 봤을 때 알아봤다. 이 청년도 준후 같은 아이구나.
준후가 자폐진단을 받은 뒤로 수인은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있으면 작은 몸짓에도 구별할 수 있었다. 성형한 사람은 눈이나 코 성형한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전문가는 쓰는 용어, 작은 몸짓에도 같은 전문가를 알아보듯이 수인은 준후와 비슷한 아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그 청년을 보면 안 됐다는 생각과 함께 준후가 저렇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수인은 일부러 그 청년을 못 본 척할 때도 많았다. 눈을 질끈 감아버릴 때도 있었다. 마치 그 청년을 바라보면 준후도 저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아냐, 저건 준후의 미래가 아니야.
하지만 오늘은 열심히 걷는 청년을 찬찬히 살펴봤다. 문득 청년이 궁금해졌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무게가 꽤 있는 몸에다 다리까지 절뚝거리니 속도가 더뎌 준후와 수인은 금방 그 청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매일 청년을 앞서 걷던 중년의 여성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수인은 무심결에 손을 뻗어 청년의 팔을 툭툭 쳤다. 청년은 신나게 걷다가 갑작스런 터치에 놀랐는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둘레둘레 돌려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 자신을 세운 이를 쳐다봤다. 수인은 자신이 해놓고도 스스로의 돌발행동에 더 놀랐다. 내가 어쩌자고 이 청년을 세운건지. 수인은 자신의 눈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청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다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청년은 수인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무슨, 일이세요?"
어눌하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청년을 보고 수인은 내심 놀랬다. 말도 못 할 줄 알았던 자신의 편견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인이 가만히 있자 청년은 다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아, 여기 이 아파트 살아요? 나도 여기 사는데 그쪽이 매일 열심히 운동하는 것 같아서요. 여기 우리 애도 그쪽처럼 매일 운동하려고요, 하핫."
수인이 아무 말이나 내뱉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상스럽게 바라보던 청년은 곧 준후를 보고는 조금씩 경계를 푸는 것 같았다. 1, 2초 잠시 수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청년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우리 집은 110동이에요."
수인은 그런 청년을 보며 왠지 목이 메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넌 어떻게 자랐니? 학교는 잘 다녔니? 어떻게 살고 있는 거니? 매일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게 좋니? 너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은 여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며 지내는데 너는 그러지 못하는데도 괜찮니? 너는... 행복하니?
“저기, 지금 행복해요?”
“행... 복...?”
수인은 이 청년에게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알 수 없었다. 준후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인생을 산다면, 그건 불행이고 행복이 될 수 없다고 수인은 생각했다. 준후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정상 아이들과 비슷해지는 거라고 믿었다.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수인은 애써왔다. 어쩌면 준후의 미래에 대한 답을 청년에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파리한 실마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은 수인의 말을 되뇌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수인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인은 답을 못하는 청년에게 괜한 것을 물어봤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자리를 피하려 할 때였다.
“네! 행복해요!”
청년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웃음. 어쩌면 준후의 미래가 될 청년. 일반 사람들과 달라도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구나. 행복해질 수 있구나. 수인은 청년의 얼굴을 보며 순간 준후의 웃음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무슨... 일이세요?”
목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니 챙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물통을 챙겨 들고 서 있었다.
“우리 애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어요. 목이 가눠지지 않았고 걷는 것도 잘 못해서 재활치료도 다녔죠. 가족들은 애가 아프게 태어난 게 엄마 탓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어요. 난 죄책감으로 아이 치료에 전념했죠. 내 몸이 바스러져도 아이만 나아진다면 상관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이러다 평생 애 뒷바라지만 하다 죽으면 어쩌나 싶었죠. 그냥 이 아이를 포기해버리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애를 버리고 집을 나갔죠.”
그녀는 챙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다부진 눈썹에 유난히 눈 밑의 기미가 짙게 보였다. 그녀는 공원 모래밭에서 마주 보며 앉아있는 청년과 준후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그냥 실컷 하고 살자며 집을 나갔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목적 없이 가고 있는데 애 생각 때문에 너무 불안한 거예요. 내가 없으면 애 밥은 누가 챙겨주지. 기저귀는 누가 갈아주나. 잠잘 때 내 배 만지면서 자는데 없으면 어떻게 자나. 눈 질끈 감고 잊어버리고 내 인생 살아보자 해도 애 생각에 미쳐버리는 거 같았죠. 그때 깨달았죠. 아, 내가 애를 돌본 게 아니라 우리 애도 나를 돌봐주고 있었구나. 얘도 나 없이 못 살듯이 나도 얘 없으면 안 되겠구나."
청년은 준후의 손을 잡더니 같이 모래를 파자는 시늉을 했다. 준후가 시큰둥하게 반응이 없자 청년이 열심히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손이 커서 그런지 금방 큰 구덩이가 파였다.
“이틀도 안 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우리 애가 이렇게 태어난 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아이의 엄마로 된 게 내 운명이듯 얘도 내가 자기 엄마로 된 게 지 운명이잖아요. 각자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죠."
처음에는 청년이 모래 파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준후도 재밌어 보였는지 청년 옆에 앉아 같이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다 큰 청년과 아이가 그러는 걸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도 둘은 그러거나 말거나 모래파기에 열중했다.
"장애인의 엄마로 산다는 거, 쉽지 않아요. 처음엔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나도 죄인처럼 살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요. 그건 정작 내가 우리 아이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엄마한테 존중 못 받는데 남들한테 어떻게 존중받겠어요? 나는 내 울타리에서 아이를 보호하며 우리 무시하고 편견 가진 사람들한테 당당하게 맞서 싸워요."
어느새 모래는 거대한 모래성이 되었다. 청년은 준후가 모래성을 높이 쌓을 수 있도록 옆에서 모래를 날라주었다. 그러다 준후가 모래 안에 뭔가를 발견했는지 소리를 꽥 질렀다. 청년이 모래 안을 보더니 곧 장난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거기에 손을 넣었다. 손에는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있었다. 준후는 지렁이가 무서운지 손사래를 쳤는데 청년이 조심스럽게 지렁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지렁이처럼 꿈틀꿈틀하며 행동하자 준후는 청년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내 꿈은 몇 살이 됐든 우리 아이 자립하는 거예요. 그걸 위해서 장애인복지관에서 조금씩 배우고 집안일도 익혀서 나중엔 우리 집 옆집에 집을 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독립시킬 거예요. 조금씩 엄마 품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죠. 난 그렇게 될 거라 믿어요."
둘은 열심히 구덩이 파 놓은 것을 다시 모래로 덮어놓고 있었다. 저런 단순한 놀이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둘은 최선을 다해 모래를 옮겼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은 그들대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지금도 난 견디고 있어요. 가끔 불안하고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다는 거예요. 생각보다 아이 덕분에 기쁜 일도 많고 행복한 일도 많아요. 사는 게 그리 암울하진 않더라고요. 우린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버텨야 돼요."
수인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렸다.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투성이였지만 상관없다는 듯 서로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커다란 웃음들이 하늘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