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 엄마가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떠 주위를 휘익 둘러봤다. 역시나 오늘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삼일째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 대신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할머니가 어린이집 등원 준비해 주고 아빠 밥도 차려주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한다. 할머니가 갑자기 우리 엄마가 된 걸까?
할머니는 빨래를 개다가, 반찬을 만들다가, TV를 보다가도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아이고 우리 준후. 어쩌면 좋니. 너희 엄마 어쩌면 좋니.”
하며 울먹거리셨다. 할머니의 이런 반응이 낯설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건 큰 병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그날 엄마는 이상하게 휘청거리며 걸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눈이 풀려있었다. 나는 엄마가 넘어질까 봐 엄마 손을 꽉 붙잡았다. 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른했다.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엄마는 백미러로 나를 계속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운전할 때는 앞을 봐야 하는데 왜 계속 딴 데를 쳐다보지. 그런 엄마가 불안했지만 눈치 없는 잠이 나를 꿈나라로 보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하나는 분명히 떠오른다. 엄마가 오랜만에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항상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 우는 얼굴이었다. 그나마 무표정일 때는 엄마 기분이 좀 괜찮아 보여 무표정일 때를 골라 과자를 달라하거나 만화 보여달라고 졸랐다. 여태 몰랐는데 꿈속 엄마는 웃을 때 왼쪽 볼에 콕하고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예뻐 살짝 만졌더니 엄마는 더 활짝 웃었다. 엄마가 웃으면 웃을수록 눈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할머니처럼 늙어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까만 눈동자 속에 엄마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내가 비치고 있었다. 꿈에서 깼을 때도 엄마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났더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엄마가 아닌 두 눈이 시뻘건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깨어나자 다행이라는 듯 웃더니 곧바로
“선생님! 준후 깨어났어요! 빨리 와보세요!”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파란 유니폼을 입은 여자와 남자들이 몰려왔다. 남자는 불빛이 나는 볼펜을 내 눈에 이리저리 갖다 대더니 아빠에게 뭐라고 설명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이해가 안 됐지만 대충 내가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고 아빠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나는 오른쪽이 욱신거려 고개를 돌렸더니 팔에는 뭐에 쓸린 듯한 상처가 나 있었고 다리에는 커다란 밴드가 몇 개 붙어 있었다. 그걸 보니 더 아픈 것 같다. 무섭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엄마...”
나는 울먹거리며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옆에 없었다. 분명히 엄마랑 같이 차에 탔는데 이상하다. 아니면 엄마는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걸까? 내가 엄마 어딨냐고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는 계속 나보고 괜찮다고만 중얼거리고 엄마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엄마 얘기만 하면 피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거나 딴청을 피웠다. 집에 돌아와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 어딨어?”
거실이며 부엌, 세탁실 구석까지 온 방을 뒤져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외치고 울부짖어도 엄마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처럼 내 곁에서 사라졌다.
엄마가 숨바꼭질하자 했는데 내가 같이 안 해서 영영 숨어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센터에 들어가기 싫다고 징징거려 화가 나서 어디로 떠나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 속상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숫자 공부하는데 내가 계속 딴청 피워서 엄마가 화가 많이 나 불길이 붙어 사라져 버린 걸까. 아니면, 아니면...
엄마가 사라진 게 꼭 나 때문인 것 같다. 상상하기도 싫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엄마가 혹시 도망을 간 걸까 싶을 때도 있다. 그게 만약 진짜라면 너무 슬프다. 그렇게 어디로 사라졌을까, 왜 사라졌을까, 내가 싫어 도망갔을까 이런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면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날도 엄마가 보고 싶어 울다 잠든 날이었다. 문득 재잘거리는 소리에 깨보니 할머니가 식탁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준후아범은 아직 병원에서 안 왔어. 준후 엄마 중환자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이 없어서 그래. 에휴, 그러게. 이게 무슨 일이야.”
할머니는 울먹거리며 말하더니 코를 크게 킁! 풀었다. 엄마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가만히 할머니의 말에 귀 기울였다.
“준후? 준후는 괜찮아. 사고 났을 때 운전석 쪽으로만 박아서 준후는 다행히 크게 안 다쳤어. 사람들 말로는 준후 저리 안 다친 게 기적이래.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애라도 살리려고 한 건지 벽에 박기 전에 핸들을 확 꺾었다 하더라고.”
할머니의 말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엄마는 나를 구하려다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저 불쌍한 것을 놔두고 준후어미 그리 허망하게 하늘로 떠나면 안 되는데, 흑흑.”
할머니는 기어이 흐느끼면서 안경 안의 눈물을 닦아 냈다. 난 할머니가 엄마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할머니도 엄마가 많이 걱정되나 보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하늘로 떠나면 안 되는데-.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우리 반 친구 미나가 막 울면서 등원했다. 선생님이 왜 우냐고 물으니
“우리 집 강아지 뭉치가 오늘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아직 떠나면 안 되는데. 너무 슬퍼요.”
그러면서 펑펑 울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미나 곁으로 모여들어서 토닥여주고 어떤 아이는 같이 울기까지 했다. 나는 하늘로 멀리 떠나면 높이 날아서 좋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하늘나라로 떠나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미나의 강아지처럼 하늘로 떠나버리면 어떻게 될까. 항상 내 옆에 있는 엄마. 나의 방패막이되어주는 엄마. 내 눈빛만 봐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찰떡같이 알아듣는 엄마.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엄마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 엄마는 내가 허락한 유일한 타인이자 세계의 모든 것인데 그런 엄마가 날 두고 하늘로 떠난다고? 이제야 나도 미나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 것 같다.
“떠나면 안 되는 데에-. 으아아앙!”
할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전화를 급히 끊고 침대방으로 달려왔다. 할머니는 내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줄 알고 울지 말라고 토닥여줬지만 나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계속 반복하며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