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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Sep 03. 2024

행복한 뒤통수

연재소설

21. 행복한 뒤통수

               

엄마가 집에 돌아온 이후 나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선 엄마는 당분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단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좋긴 한데 한편으론 걱정이 생겼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또 나를 다른 센터에 보내지 않을까 해서 였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는 과감하게 치료 센터를 몇 개 그만뒀다. 아빠도 자폐에 좋다는 치료가 있다면 물, 불 안 가리고 달려가는 엄마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놀랐다.

                

"준후가 많이 힘들잖아. 그리고 치료센터를 다니면서 정작 우리끼리 교감을 나눌 시간은 없었어. 이젠 준후랑 같이 있는 시간 많이 가져봐야지." 

              

이제 우리 가족에겐 같이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생겼다. 아까부터 엄마가 부엌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분주히 움직이더니 오랜만에 엄마가 만든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그동안은 엄마 회사 다니고 나 치료센터 다닌다고 요리할 시간이 없어 항상 반찬가게에서 사 먹었다. 엄마가 요란하게 차린 밥상치고는 반찬은 몇 개 없었다. 소시지 중 몇 개는 너무 바싹 구워져 새까맣게 탄 부분이 있었고 소고기 뭇국은 밍밍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볶음은 좀 질겼다. 솔직히 반찬가게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은 없었지만 왠지 음식에 온기가 느껴졌다. 계속 먹고 싶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엄마는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더니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좋아라 했다.

                

어린이집도 바꿨다. 집이랑 훨씬 먼 곳인데 나는 그래도 예전 어린이집보다 지금 여기가 마음에 든다. 우선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이전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선생님들 고함소리에 너무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그때보단 덜하다. 여기는 여러 친구들이 있다. 예전 어린이집처럼 말이 유창하고 운동 잘하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휠체어를 탄 은형이, 말을 더듬는 찬주, 귀에 반짝거리는 기계를 달고 있는 민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어주는 지수, 늘 구석에 숨어있는 하은이도 같이 있다. 나보다 덩치 큰 형은 기저귀를 차고 있어 내 기저귀가 다 떨어졌을 때는 그 형 것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어울리며 같이 논다. 난 아직은 어떻게 같이 노는지 모르지만 나보다 쪼그맣지만 똑똑한 미나가 내 손을 잡아 같이 산책도 하고 내가 혼자 놀고 있으면 같이 옆에 와 트램펄린 같이 뛰자고 한다.  

              

그리고 여기가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날 더 이상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다들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떨 때는 칭찬해 줄 때도 있다. 나는 심심하거나 불안하면 손을 펄럭거리는데 이전 선생님들은 하지 말라고 손을 내리라고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선생님이 그러셨다.                


"우와, 준후 나비처럼 날아다니네! 멋지다!"               


나는 내가 뭔가 할 때마다 멋지다고 말한 사람은 여기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문제가 있다며, 고쳐야 된다며 손가락질하던 어른들이 이제는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내가 울고 소리칠 때 이유 없이 그런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내 작은 몸짓, 표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날 보듬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엄마는 요즘 웃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친해져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어린이집 행사에 같이 참여하기도 했다. 가끔 주말에 엄마들과 친구들이 펜션에 가서 논 적도 있다. 이렇게 지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내심 안심이 됐다. 나에게 친구가 없다고 걱정하던 엄마도 내가 봤을 땐 마음 터놓을 친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활짝 피어나는 엄마의 미소를 보니 나도 흐뭇해졌다. 엄마의 폭 패인 보조개가 참 예뻤다. 계속 엄마가 이렇게 웃어줬으면 좋겠다.                          


어느 날, 어린이집 하원 후 엄마가 갑자기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차를 돌렸다.      

“준후야, 우리 사진관 가보자.”     

사진관이란 곳에 들어가 보니 한쪽 구석에 바닥과 천장이 하얀색 천으로 덮인 곳이 있었고 그 가운데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마는 얼마 전에 산 초록색 셔츠를 나에게 입혔다. 거울을 보며 빗을 것도 없는 내 머리를 계속 매만졌다. 내가 봤을 땐 달라진 것도 없는데 엄마는 나에게 계속 멋지다고 말하며 의자에 앉아보라고 했다.                


“자, 친구야! 여기 카메라 보세요!”     

내 앞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아저씨가 자기 쪽을 보라고 소리쳤다. 엄마도 아저씨 옆에서 손뼉 치고 내 이름을 연신 부르며 내가 앞을 바라보도록 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눈부시게 비쳤고 플래시가 꺼지면 눈앞에 여러 가지 빛들이 번쩍거렸다. 정신없이 사진 찍고 조금 기다리니 내 얼굴이 박힌 사진들이 조그맣게 나왔다. 엄마는 이쁘게 나왔다고 좋아했고 나는 도대체 엄마가 이걸 어디에 쓸 건지 잠깐 궁금했지만 금세 까먹었다.               

며칠 뒤 우체국 아저씨가 엄마에게 편지를 갖다 줬다. 옆에서 바라보니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카드가 있었는데 연한 하늘색 카드에는 얼마 전에 찍힌 내 사진이 박혀있었다. 사진 속의 나를 나는 멀뚱히 쳐다봤다.                


“이게.. 이게 장애인 복지카드구나.”               

엄마는 중얼거리며 연신 손가락으로 카드를 쓰다듬었다. 엄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신분증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준후야, 이것 봐. 너는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신분증이 나온 거야. 신기하지?”               

엄마는 이제 세상이 좀 더 나를 보호해 주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고 복지혜택도 많아진단다. 이런 좋은 게 있었으면 진작 하지 엄마는 왜 미루고 미루다 이제 한 걸까? 엄마는 나를 보며 밝게 말했지만 눈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나중에 겪게 될 차별과 편견, 혐오, 불안한 미래 등을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예전부터 벌써 겪어왔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한 살씩 먹어가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내가 말할 때마다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 내가 하는 행동마다 문제행동이라 여기며 고쳐야 된다는 사람들, 나는 해코지하지 않았는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이런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부모님.                


띠링-     

그때 핸드폰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보아하니 사진관에서 엄마에게 내 사진 원본 파일을 보낸 모양이었다.      


"어머, 이런 사진도 찍어주셨네?"     

엄마가 보는 핸드폰 화면을 나도 쳐다보니 내 얼굴사진 말고 다른 사진이 하나 더 있었다. 내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내가 정면을 쳐다보지 않고 새하얀 천들의 주름이 신기해 뒤쪽을 계속 쳐다봤는데 그때 찍힌 모양이다.      


"사진관 아저씨가 너 뒤통수가 예쁘게 찍혔다고 그래서 보내주신 거래."     

내 뒤통수는 엄마를 닮아 숱이 많은 빽빽한 머리에 흰 정수리가 콕 박혀 있다. 눈, 코, 입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내 표정을 알 것 같다. 나는 웃고 있다. 나는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우리 준후, 행복한 뒤통수를 가졌네?"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해서 불행한 건 아니다. 출발선도 다르고 남들과 다른 코스로 달리지만 그래도 어쨌든 도착하는 곳은 똑같다. 행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달리는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다. 그러니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편견, 걱정들을 신경 쓰지 않고 살기로 했다. 행복한 뒤통수를 가지고 계속 달려 나가야지. 엄마와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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