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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행복한 뒤통수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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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은하육수 Aug 28. 2024

청년

연재소설

20. 청년

“아!”

순간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통에 수인은 아파트 외벽에 손을 기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수인의 짧은 비명에 팔을 열심히 휘두르며 운동하던 아주머니가 힐끔 뒤돌아봤다. 수인의 상태가 이상한 걸 보고 괜찮은지 신경 쓰며 다가오려는 걸 수인은 애써 웃으며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퇴원한 지 이주일 지났지만 아직까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처럼 길을 가다 핑 어지러울 때도 있고 몸을 조금만 비틀어도 악- 비명소리가 절로 날 만큼 통증이 아직 남아있었다. 병원에서는 좀 더 입원하면서 요양할 것을 권했지만 수인은 한사코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준후가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한 달 가까이 입원했다. 사고 후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졌는데 수인이 몸을 가눌 수 있을 때는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여름 끝자락에 수인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도 있었고 복도를 하염없이 왔다 갔다 하며 하루를 보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병원 산책로를 거닐며 조금씩 일상의 감각을 찾아보려 했다. 여기 왜 있는지,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더듬어 봤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기억만은 또렷했다. 준후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에서는 방문객 출입을 금지하여 남편만 보호자로 올 수 있었지만 준후는 입원 내내 볼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영상통화로 준후를 매일 보여줬지만 준후는 엄마가 어디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역시 모르는 눈치였다. 엄마가 보고 싶긴 한 건지 잠깐 엄마 얼굴을 쳐다보고는 금세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엄마라도 불러봐 주지 하며 수인은 섭섭하면서도 준후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신이 우리를 기적적으로 살려준 것은 아닐까 수인은 생각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신 따위는 없다고,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고 악담을 퍼부었는데 그런 신에게 왠지 새로운 기회를 받은 것 같아 얼떨떨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주말 아침, 남편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갔고 밥 먹고 준후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 수인은 아파트 앞 공원에 산책하러 나갔다. 어지러울까 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천천히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자기 신발을 다 신은 준후가 수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준후야, 엄마 넘어지지 말라고 손 잡아주는 거야?”

수인의 질문에 준후는 그저 여기저기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지만 수인은 준후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빙그레 웃으며 같이 손을 꼭 잡았다. 수인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준후는 조금 변한 것 같았다. 할머니가 그동안 맛있는 걸 해주셨는지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것도 있지만 어디 갈 때나 집에 있을 때도 준후는 엄마의 손을 잡아줬다. 예전에는 손을 잡으면 마주 쥐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아이가 먼저 손을 꽉 잡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가 사라져 버릴까 봐 불안한 양처럼. 준후의 손이 이렇게 따스했구나, 수인은 보드랍고 따스한 담요를 만지듯 준후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밖으로 나갔다.

밤사이 기온차로 나뭇잎들 사이사이마다 이슬에 맺혀 있고 아스팔트 길은 물기를 머금어 푹신했다. 초록빛의 신선한 공기가 수인의 코로 들어오며 지쳐있던 몸에 맑은 에너지를 채워줬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자 준후는 또 신이 났는지 엄마 손을 놓고 이리저리 막 뛰어다녔다.

“준후야, 천천히 뛰어. 그러다 넘어져.”

준후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던 그때 수인의 눈에 저만치서 어떤 청년이 걷는 게 보였다. 아파트 단지 안이나 공원에서 몇 번 지나쳐 봤던 남자였다.

이십 대 중반 정도 됐을까. 키가 큰 데다 덩치도 제법 있어 더 건장하게 보였다. 청년은 한쪽 다리를 절며 수인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덥수룩한 고수머리에 이마엔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몇 가닥 눌러 있었다. 청년은 항상 아침, 저녁시간대에 어기적거리며 열심히 걸어 다녔다. 걷는 게 마치 오늘 하루의 임무인 것처럼 그는 같은 시간에 묵묵히 땅을 내디뎠다.

가끔은 허공에 손가락을 흔들 때도 있었고 짧은 괴성을 질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몸이 커서 그런지 그의 작은 손짓은 팔을 힘껏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고 작은 소리는 고함소리로 들려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대놓고 노골적으로 청년에게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청년의 10미터 정도 앞에 챙모자를 깊게 눌러쓴 중년여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떨어져 걸어 일행이 아닌 줄 알았는데 그 청년을 바라볼 때 항상 그 여성분이 시선에 걸렸다. 그들은 마치 줄넘기 손잡이로 그들 사이에 긴 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이 앞서 가면 청년은 열심히 뒤따라갔다. 그녀가 내딛는 곳만이 길인 것처럼 청년은 여성의 발자국을 따라갔고 여성이 사람을 피해 살짝 비켜서 가면 청년은 사람이 없어도 그 자리를 그녀처럼 살짝 비켜서 걸었다. 그렇게 그녀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청년이 어쩌다 한 번씩 아파트 화단에 날아다니는 나비나 새에 한눈을 팔면 여성은 멀찍이 서서 청년을 기다렸다. 수인은 처음 그 청년을 봤을 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청년도 준후와 같은 아이구나.

준후가 자폐진단을 받은 뒤로 수인은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있으면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성형한 사람은 눈이나 코 고친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전문가는 쓰는 용어, 말투에 같은 동종업계 사람이란 걸 눈치채듯이 수인은 아이들의 작은 몸짓에도 준후와 비슷한 아이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런 아이를 보면 어떤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묘한 거부감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 준후는 치료받으면, 엄마가 노력하면 저 아이보다 나아질 거란 자만감이 있었다.

그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그 청년을 보면 안 됐다는 동정과 함께 어른이 된 준후는 저런 모습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청년을 보면 준후도 저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수인은 일부러 그 청년이 보이면 멀찍이 떨어져 걸었고 옆을 지나갈 때 눈을 질끈 감아버릴 때도 있었다. 아냐, 저건 준후의 미래가 아니야.

하지만 오늘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청년을 찬찬히 살펴봤다. 문득 청년이 궁금해졌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매일 청년을 앞서 걷던 중년의 여성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이 다가올수록 몸이 얼어붙으며 긴장이 됐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가 막 수인의 옆을 지나갈 때였다.

“저기요.”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청년이 그냥 지나치려 해 수인은 무심결에 손을 뻗어 청년의 등을 툭툭 쳤다. 청년은 신나게 걷다가 갑작스러운 터치에 놀라 고개를 둘레둘레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곧 자신을 세운 이를 쳐다봤다. 수인은 스스로의 돌발행동에 놀라 주춤거렸다. 내가 어쩌자고 이 청년을 세운 건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내려보는 청년에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청년은 자신의 페이스를 멈추게 한 그녀를 뜨악한 눈으로 내려봤다. 청년의 그림자가 수인의 몸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누구, 세요?”

20대 남자의, 중저음의 낮은 어른의 소리면서도 어딘가 앳된 티가 나는 목소리였다. 제대로 된 말도 못 할 줄 알았던 그가 어눌하지만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타인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고 수인은 내심 놀랬다. 그 청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인이 할 말을 못 찾고 가만히 있자 청년은 다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아, 여기 아파트 살아요? 나도 여기 사는데 그쪽이 운동 매일 열심히 하는 것 봤거든요. 여기 우리 애도 그쪽처럼 걷기 운동하려고요, 하핫.”

수인은 청년을 붙잡아 두고 싶어 생각나는 대로 막 내뱉었고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인을 수상스럽게 쳐다봤다. 그러다 곧 수인의 옆에 있는 준후를 보고는 조금씩 경계의 빗장을 푸는 것 같았다. 1, 2초 잠시 수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청년은 곧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우리 집은 110동이에요.”

수인은 그런 청년을 보며 왠지 목이 메었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평범한 20대가 아닌 남들과 다른 20대는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었다. 넌 어떻게 자랐니? 학교는 잘 다녔니? 어떻게 살고 있는 거니? 매일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게 좋니? 너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은 좋아하는 여자도 생기고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는데 너는 그러지 못하는데도 괜찮니? 너는... 행복하니?

“저기, 지금 행복해요?”

“행... 복...?”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수인도 깜짝 놀라고 질문받은 청년도 어리둥절해했다. 수인은 이 청년에게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준후가 평균의 삶을 살 수 없다면,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산다면 그건 불행이고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준후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정상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가는 것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수인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준후 미래에 대한 답을 어쩌면 이 청년에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파리한 실마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은 행복이란 단어를 계속 되뇌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청년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괜한 것을 물어봤구나 싶어 수인은 앞서 달려가는 준후를 잡는 척하며 자리를 피하려 할 때였다.

“네! 행복해요!”

청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자신의 답이 흡족했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웃음이었다. 어쩌면 준후의 미래가 될 청년. 일반 사람들과 달라도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구나. 행복해질 수 있구나. 수인은 청년의 얼굴을 보며 준후의 웃음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세요? 우리 애한테 무슨 볼일 있나요?”

목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니 챙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물통을 챙겨 들고 서 있었다.

“우리 애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어요. 목이 가눠지지 않았고 말도 못 해서 재활치료를 다녔죠. 남편이나 가족들은 애가 저런 게 다 내 탓이라고 손가락질했어요. 난 죄책감으로 아이 치료에 전념했죠. 내 몸이 바스러져도 아이만 나아진다면 상관없었어요. 아이가 괜찮아진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았죠. 그런데 행복해지려 노력할수록 우리 아이는 점점 불행해졌어요. 그렇게 달리다가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이러다 평생 애 뒷바라지만 하다 죽으면 어쩌나 싶었죠. 갑자기 애가 꼴도 보기 싫고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애를 버리고 집을 나갔죠.”

그녀는 챙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다부진 눈썹에 유난히 눈 밑의 기미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는 공원 모래밭에 마주 보며 앉은 청년과 준후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난 할 만큼 했다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고 살자며 아무 고속버스나 탔죠. 그렇게 목적 없이 가고 있는데 애 생각 때문에 너무 불안한 거예요. 내가 없으면 애 밥은 누가 챙겨주지, 기저귀 제때 갈아줘야 짓무르지 않는데. 잠잘 때 내 배 만지면서 자는데 없으면 어떻게 잘까. 눈 질끈 감고 잊어버리려 해도 애 생각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애를 돌본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나를 돌봐주고 있었구나. 얘도 나 없으면 못 살 듯이 나도 얘 없으면 안 되는구나.”

청년은 준후의 손을 잡더니 같이 모래를 파자는 시늉을 했다. 준후가 시큰둥하게 반응이 없자 청년이 열심히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손이 커서 그런지 금방 큰 구덩이가 생겼다.

“이틀도 안 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우리 애가 이렇게 태어난 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 그냥 운명이라 생각했어요. 얘도 운명처럼 나를 엄마로 맞은 듯 나도 운명처럼 이 아이를 가진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청년이 모래 파는 걸 지켜보기만 하던 준후도 재밌어 보였는지 청년 따라 같이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다 큰 청년과 아이가 그러는 걸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도 둘은 그러거나 말거나 모래파기에 열중했다.

“그쪽이랑 그쪽 아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네? 어떻게 저희를?”

“어릴 때 우리 애랑 비슷하니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죠. 우린 서로 딱 보면 알잖아요.”

중년 여성은 장난스러운 눈길로 수인에게 찡긋 웃어 보였다. 안 보는 척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느끼고 있었다. 수인은 그녀의 아들을 보며 부정 탈까 봐 피해 다녔는데 그녀는 준후를 보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도 난 견디며 살고 있어요. 저 아이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남들이 가지 않는 풀숲을 헤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혹시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의심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나한테는 하나의 이정표가 있어요.”

모래를 파다 준후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소리를 꽥 질렀다. 청년이 그쪽을 보더니 곧 장난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거기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는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들려 있었다. 준후는 지렁이가 무서운지 몸을 뒤로 젖히며 고개를 막 저으니 청년은 조심스레 지렁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손동작을 했다. 청년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준후는 까르르 웃으며 자기도 지렁이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우리 아이가 행복해지는 이정표.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가고 있어요.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우리 아이의 기준으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인생을 완주하겠죠. 우리에겐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버텨야 해요.”

수인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그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투성이였지만 개의치 않고 다시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재미난 지 둘은 깔깔대며 웃었고 그 커다란 웃음들이 하늘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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