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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Aug 07. 2024

감정도 조절이 되나요

연재소설

17. 감정도 조절이 되나요


“준후야, 안녕?”

진료실에 들어가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줬다. 가운도 하얗지만 선생님 머리카락도 유난히 하얘 나는 의사 선생님을 볼 때마다 눈사람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앞에 의자에 앉아보라고 했지만 난 거기에 앉지 않고 선생님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침대에 폴짝 뛰어올랐다. 눈사람 선생님은 그런 내가 익숙한지 끙차-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니?”


예전에 다녔던 병원들은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항상 엄마에게 애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증상이 어떻느니, 애는 왜 이러냐느니.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발작하는 나를 보며 의사와 간호사들은 혀를 끌끌 찼다. 엄마 품에 억지로 안겨 진료를 보다가 내가 발길질을 해 의사 선생님의 다리를 툭 찬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할 거면 오지 마!”

분명 나를 혼낸 건데 마치 엄마가 혼난 것처럼 엄마 얼굴이 벌게졌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여러 소아과를 돌아다니다 집에서 좀 먼 여기에 정착하게 됐다. 다른 병원보다 소파나 테이블이 낡고 까져있는 곳도 많고 선생님이 다른 의사 선생님들보다 할아버지여서 그런지 진료받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여기를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이유는 눈사람 선생님은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준다. 


“눈가가 왜 이렇게 짓물렀어? 아이고, 따갑겠구나.”

선생님은 나의 벌겋다 못해 마른 풀이 일어난 것처럼 피부가 벗겨진 내 두 눈가를 조심히 살펴봤다. 선생님이 손을 대지도 않았지만 너무 따끔거려 얼굴을 뒤로 쑥 뺐다.

“요즘 준후가 툭하면 울어서 그래요.”

엄마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의 저 눈빛을 보니 또 뭔가가 울컥하며 올라온다. 내가 또 입을 삐죽거리고 울먹거리자 엄마는 

“또, 또 운다.”

하며 으르렁댔다. 눈사람 선생님은 그런 엄마를 제지하며 다시 나에게 말했다.

“우리 준후,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데 이렇게 계속 울면 여기 눈이 더 아파서 더 슬픈 텐데. 선생님이 안 아프게 약 발라줄게.”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또 마음을 자극해 나는 결국 소리 내어 펑펑 울었고 눈물이 나니 눈가가 아파 또 울었다. 결국 입에 비타민 사탕이 들어가고 안 울고 진료 봐야 나중에 만화 보여준다는 엄마 말에 내 울음은 겨우 사그라들었다. 엄마와 눈사람 선생님은 이런 나를 보며 말했다. 


“감정조절이 잘 안 되네요.”


나는 요즘 툭하면 운다. 예전에는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축축할 때 울었지만 요즘은 밥을 먹다가도, 기분 좋게 배가 불러도, 내가 좋아하는 공룡 만화를 보다가도, 잠자려고 누울 때도 운다. 엄마는 처음엔 우는 나를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괜찮다고 토닥여줬지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니 이제 울음 시전만 하면 엄마는 도대체 왜 또 우냐며 지긋지긋하다는 듯 쳐다본다. 우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어제 엄마가 혼낸 기억이 떠올라 울 때도 있고 아님 그냥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도 툭 슬퍼진다. 말 그대로 슬퍼서 울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 


나의 오작동 감정은 슬픔뿐만이 아니다. 내가 맞춰놓은 퍼즐이나 줄 세워놓은 장난감을 누군가가 만지면 화가 난다. 마치 뜨거운 마그마가 내 속에 흐르고 있다가 펑하고 터지듯이 말이다. 난 화가 나면 주먹을 쥐고 내 가슴을 마구 두드린다. 손에 장난감이 쥐어있으면 그걸 쥔 채로 내 가슴을 마구 때리는데 그렇게 때리고 나면 어느 정도 화가 풀린다. 엄마가 아프게 왜 그러냐고 깜짝 놀라며 내 팔을 꽉 붙잡지만 나는 마그마가 다 폭발할 때까지 나를 더 세게 때린다. 나중에 손자국으로 벌게진 몸뚱이를 보면 그제야 아프지만 이 정도 아픈 건 괜찮다. 화가 안 풀리면 그게 더 내 몸을 병들게 하는 것 같다. 


하루는 엄마가 공부 끝나고 분명히 하리보 젤리를 준다고 했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젤리를 쑥 내밀었다. 

“하리보 젤리 있는 줄 알았는데 다 먹었네. 엄마가 다음에 사줄 테니까 오늘은 이 젤리 먹어봐.”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지더니 곧 눈에 불이 날 것처럼 활활 타들어갔다. 하리보 젤리 준다 해놓고서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으아아아악!”

나는 소리를 지르며 쿵쿵거리며 집 끝에서 끝까지 돌진하며 계속 뛰어다녔다. 내 뜀박질을 말릴 수 없던 엄마는 가방을 마구 뒤지더니 겨우 처박혀있던 하리보 젤리를 찾아내 나에게 던졌다. 그걸 받아먹는 순간 나의 뜨거운 머리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푸쉬-하며 순식간에 진화됐다. 내가 하리보를 손에 쥐고 옴삭옴삭 조용히 먹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짐승이야, 짐승.”


이런 나의 널뛰는 감정들이 엄마는 걱정돼 ABA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준후가 왜 분노가 일어나는지 그걸 먼저 파악해야 해요. 그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엄마는 내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운다고 선생님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도 “하긴, 이런 아이들이 원래 그렇다”며 단정해버렸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너무하네. 엄마나 주변 어른들은 내가 왜 우는지, 화를 내는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조금만 나를 유심히 관찰한다면, 한 번이라도 내 입장이 되어 생각해 준다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럼 감정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야 해요. 애가 갑자기 울거나 발작하면 심호흡을 하거나 숫자를 세어보게 하세요. 꽉 안아주는 것도 좋고요.”

선생님은 다 시도해도 안되면 화냈을 때 관심을 보이지 말고 무반응으로 일관해야 한다고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거나 울려고 하면 심호흡을 시켰다. 내가 왜 그러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라며 숨만 들입다 쉬라고 했다. 이젠 엄마의 심호흡하라는 소리가 나를 더 화나고 짜증 나게 만들었다. 


하루는 자다가 깨서 보니 내가 원래 덮던 이불이 없어졌다. 더운 여름날 내 애착이불이 두껍다고 나 자는 사이에 엄마가 다른 이불로 바꾼 것 같았다. 내가 이불이 없다고 칭얼대자 엄마는 얼른 다시 자라고 내 등을 토닥여줬다. 나는 계속 이불을 바꿔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엄마는 아예 등을 돌린 채 코를 골며 잤다. 

“이부우우울!!”

머리를 쥐어 짜내 겨우 이불 단어를 소리치자 그제야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이불을 빨리 달라고 해도 엄마는 내가 밤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는 거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보며 엄마는 심호흡하라는 말만 반복했고 나는 그 소리에 더 열받아 발악했다. 내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자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며 문을 쾅 닫고 안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냥 내 애착이불만 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었다. 그래놓고선 또 내 잘못이라고 선생님들한테 일러바치겠지. 어휴. 


얼마 전 아빠가 TV에서 만화를 보길래 뭘 그리 재밌게 보나 궁금해서 같이 본 적이 있다. 만화에는 어떤 여자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여러 감정들이 살고 있었다. 동작이 크고 활발한 기쁨이, 말 걸기만 해도 울 것 같은 슬픔이,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버럭이, 눈의 흰자가 많은 까칠이, 그리고 입을 딱딱거리는 소심이. 얘들은 경험과 기억들을 이리저리 만지며 여자아이의 감정을 조절하고 있었다. 내 머리에도 저 감정들이 움직이고 있을까? 


슬픔이와 버럭이도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만 요즘 새롭게 등장한 감정이 있다. 

“준후야, 쟤가 이번에 새로 나온 ‘불안이’야.”

아빠가 tv화면에 가리키는, 주황색의 우스꽝스럽게 생긴 캐릭터를 나는 유심히 지켜봤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나 내 몸과 머리를 둥둥 울리는 소리. 혼자 있거나 혼자 놀 때는 그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거나 아주 작게 박동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크고 빠르게 쿵쾅거린다. 엄마를 안았을 때도 이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엄마는 이게 내 몸 안의 심장이라고 했다. 


리모컨이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원래 가던 길로 가지 않을 때 내 심장은 마구 뜀박질을 한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반갑다고 나에게 달려오면 귓가에 두근두근하며 심장소리가 울려 퍼진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 온몸이 뻘건 산타할아버지를 보고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내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본다면 심장은 펄떡거리며 저 멀리 도망쳐버릴 것이다. 어떨 땐 늑대 배속에 돌을 넣어 꿰맨 것처럼 내 가슴에도 돌을 넣으면 펄떡거림이 덜 하지 않을까란 상상도 해봤다. 엄마는 내 가슴이 하루종일 빠르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는 걱정되어 병원에서 검사도 받아봤다. 

“심장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불안이나 분노 등 감정조절이 어려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감정이들이 아파서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내 감정이들은 잘 작동하는 것 같은데 내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된 거란다. 열심히 일하는 감정이들이 듣고 기운 빠지고 속상해할까 봐 그냥 귀를 막아버렸다. 


“아무래도 이런 아이들은 신경학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감정조절에 어려움이 많다면 약을 먹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눈사람 선생님이 진료실 문을 나서기 전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이놈의 감정조절이란 걸 하기 위해 약까지 먹어야 되나 보다. 그냥 내가 원래 가던 길을 계속 다니면 되고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제자리에 놔두고 엄마가 조금 화를 덜 내고 나한테 조금만 관심을 주면 되는데.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내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기다려주면 될 텐데. 


내가 보기엔 엄마도, 다른 어른들도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웃다가도 버럭 화를 내고 설거지할 때도 그릇을 우당탕탕 던지고 운전할 때도 듣기 싫은 말을 내뱉는다. 슬프다고 방에 틀어박혀 있고 우울하다고 옥상에서 떨어지는 어른도 있다. 위층이 시끄럽다고 칼 들고 난동 부리는 아저씨도 뉴스에서 봤다. 그럼 엄마도, 어른들도 약을 먹어야 되겠네. 나한테만 감정조절 안된다고 잔소리하지 말고 엄마랑 어른들도 감정이 들을 잘 치료해야 되겠네. 


언제나 온화하고 평온한 눈사람 의사 선생님에게도 묻고 싶다. 선생님은 슬플 때 눈물을 안 흘리고 엄청 화가 나도 사르르 풀릴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을 아나요? 선생님은 두근대는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며 공포와 불안을 감출 수 있나요? 


감정이란 게 정말 조절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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