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에게

To.나의 첫사랑

by 박하

어렸을 때,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면 엄마는 2000원에서 5000원을 주었고 나는 그 돈으로 학교 갈 때 김밥을 사서 등교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아침과 낮에는 일 때문에 언제나 피곤해해서, 엄마를 이해했다.

가끔 친구들이 싸 온 유부초밥 같은 게 부러울 때는 있었다. 은박지에 싸인 나의 김밥보단, 도시락통에 싸 온 유부초밥이 너무 귀엽고 맛있어서, 한참을 쳐다봤던 것 같다. 참 사소하게 서운한 기억들이다. 이해했지만 서운했던 것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학교에서 소풍인가 수련회인가, 아무래도 어디를 다녀오는 날이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책상 위에 편지가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2-3장 분량의 꽤 긴 편지였는데, 그 당시의 나는 편지의 중요성을 잘 몰랐었다. 읽고 그대로 두고 나와 엄마가 너무 서운했다고 말을 했다. 지금에야 편지를 쓸 때 어떤 마음을 담는지, 엄마는 아마 그 편지를 쓰는 새벽, 나에 대한 사랑을 꾹 꾹 눌러 담지 않았을까. 그때 이후로 엄마한테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 많이 서운했나 보다.. 뭐 나도 그런 이유로 엄마에게 두 번 다시 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 이런면까지 닮는 걸까 엄마와 나는.


어렸을 때는 엄마의 생일이거나 어버이날, 무슨 날이기만 하면 곧잘 엄마에게 편지를 써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고작 카톡 몇 줄이 전부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시절 영어로 편지를 쓰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컴퓨터 자판에 적혀있는 알파벳들이 그 밑에 있는 한글과 똑같은 어순인 줄 알고 마치 암호처럼 엉터리 영어 편지를 써준 적 있다. 엄마는 내가 영어편지를 썼다기에 기대하며 펼쳐봤지만 당혹스러운 표정이 기억난다.. 덕분에 영어학원을 다니게 됐다.

언젠가 옛 감성으로 엄마에게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날을 상상해 보긴 했지만, 아직 실천은 하지 못했다.

엄마가 예상치도 못하고 있을 때 언제가 됐든 한 번쯤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보기로 하자. 우편함에 예상치 못한 선물같이 내 편지가 꽂히기를. 선물이라고 받아들여주길.

엄마는 내가 학생 때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것 때문에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슬픈 날도 있었다. 좋은 날은 뭐.. 나도 술을 마실 수 있었던 날. 힘든 날은 엄마가 만취하고 다음날 기억도 못하던 날. 슬픈 날은 엄마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울던 날. 지금도 그때도 엄마는 울보다. 그때 엄마가 술에 취해 힘들었던 날들, 괴로웠던 날들을 얘기하면서 울먹일 때 나는 사실 조금 힘들었다. 엄마의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괴로워서,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살아온 나날들을 존경하지만 답답했고, 힘든 감정은 옮는다잖아, 나 자체도 복잡한 감정이 들어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그저 엄마가 잘해왔다는 얘기만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런 말이 듣고 싶었다며 그 말을 듣고 더 큰소리로 울었지만, 나는 그 상황에 엄마가 참 미련하다 생각했다.


작은 마음을 위해 언제나 엄마는 큰 마음을 들이는구나. 자식인 나조차도 그 마음에 모두 답해주지 못하는데라고 생각하며, 그게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요즈음에도 엄마는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주변에 항상 신경 쓰고 살갑게 챙기면서, 막상 술에 취하면 내가 사랑을 너무 믿지 않길 바라고, 시니컬해지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그게 엄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 물론 나는 장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에 그렇게 마음을 살갑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이제 와서 이런 긴 편지를 쓴다는 게, 새삼스러울 거 알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삼스럽게 전해지는 거니까. 언제나처럼 고여있는 마음보다야 새삼스럽게 전해지는 마음이 진심에 가깝다고 생각해. 지금의 엄마는 그때보다는 행복해 보여. 내가 여전히 엄마의 마음을 비빌 언덕인 것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건데, 나는 엄마한테 사랑을 배웠으니 엄마같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 같아. 몇 년 전 엄마가 나한테 써준 작은 한 문장처럼 '친구 같은 딸, 친구 같은 엄마'라는 관계에서 우리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자. 가끔은 서운해도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관계로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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