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낮이 된 이들의 통일달리기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맴도는 졸업생들의 옷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뼈만 남은 사람들에게 기성복은 언제나 크다 바람이 쌩쌩 불어 뼈를 때린다 아야 말하고 싶어도 덜그럭 소리만 난다 해골은 해골의 언어로 덜그럭 더그럭덜 그럭다각 따각다각그럭 자전거 바퀴가 쉬지 않고 바람은 기세가 좋고 밤은 뼈 부딪는 소리로
어젯밤 우리 옆집, 해골이 해골에게 말한다 드디어 해골이 되었다 자전거는? 준비 못했대 저런, 검게 뚫린 눈구멍으로 시린 바람이
걷고 있겠지. 긴긴 시간을. 두 번 죽고 싶은 세상. 죽으려고 태어난 걸 알면. 자전거 정도는 미리 준비했을 텐데. 가끔 뛰겠지. 발악처럼. 살려달라고. 덜그럭더그럭덜그럭다각. 한동안 시끄럽겠네. 처음 죽은 것들은 이래서 문제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펼쳐 들고 해골을 제친다 이순신 장군이 칼을 빼들고 자전거 사이를 추월해 달린다 동상이 움직이는 시각은 자정 자전거 없는 해골들이 그림자 속에서 떠밀리듯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돈다. 걷거나 뛰거나. 쉬지만 않으면 돼. 밤이 낮이 된 이들의 통일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