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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Sep 07. 2024

매미 소리 들으며 쓴 아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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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삶에 의미 없는 자국을 남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좋은 무늬로 촘촘하게 채워가야 한다.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질책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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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양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 나다. 너무 많은 계획이 있었으나, 계획이 적었을 때에도 매번 다 지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이라도 세워두지 않으면 삶이 무의미한 시간의 뭉텅이로 과거가 되어버린다. 뭘 잃었는지조차 몰라서 내게 주어지는 시간에 감흥이 없어져 버린다.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잘 살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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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찬 매미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었다. 나는 왜 저만치 계절에 열렬하지 못한지. 왜 그래본 적이 없는지 부끄러워져서 귀를 막지도 못했다. 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앉아놓고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도 모를 매미 울음을 폭우처럼 맞고 있다. 그 안에서 내 하루는 얼마나 보잘것 없어지는지. 이미 흘러가버린 오늘 치의 시간을 헤아려보다 남은 하루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태양은 맹렬하고, 꺾이는 건 내 자신감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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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건 뭔지. 왜 잘 살아야 하는 건지. 내게 금지된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며 기분의 눈금선을 스스로 낮춘다. 신나고 싶지 않았다. 신이 날만한 일도 없었다. 신이 나지도 않는데 신나 죽겠다 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웃기지도 않은데 ㅋㅋㅋ 찍는 건 무례하지 않나. 기분이 커서 이성이 눈치를 본다. 마땅히 나서야 할 때에도 머뭇거린다. 혼자 있어서 눈치 보는 시간이 흐른다. 매미소리 그치지 않고 속이 지열처럼 끓는다.

2023. 08. 06





요즘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를 읽고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그의 이름을 딴 다이어리와 시간관리 법칙은 잘 알았다. 특히 3-5-7-9 시간법칙은 실제로도 실천하는 부분 중 하나여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의 루틴 타임블록이 내 타임기록과 닮은 걸 보고는 기뻐하기도 했다. 때문에 책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관심 있고 혹할 만한 한 사람의 일생이 차근차근 상영된다. 즐거운 만큼 복잡한 기분도 드는데 긴 시간 나를 압박해 온 ‘쓸모’라는 말과 루틴형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거북한 느낌으로 함께 자라온 ‘효율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시간관리를 촘촘히 한다는 건 어떤 일의 경중을 까다롭게 따진다는 것이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치부해 버리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무례해지고, 인간성을 상실하기 쉽다. 이 점만은 상시 경계하고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밴 습관들이 몸에 남아있고, ‘쓸모’에 집착하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들이 특히 그러하다. 지난 일기를 읽다 보면 그런 나의 생각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나아질 거란 기대가 별로 없을 만큼 고질병으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견딜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무리를 하면서도 무리하는 줄 모른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좀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을 구명줄처럼 여기고 곁에 두고 있다. (2024. 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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