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부쩍 추워졌다. 환자가 있는 집이다 보니 한기를 느낄 때마다 촉각이 곤두서게 된다. 그래도 그런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나는 차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민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눈에 띄게 밝지도 않지만, 그런 상태가 편했던 적은 별로 없었으므로 오히려 지금이 나에겐 적당한 일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적당해서 좋은 날들.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병원을 오가면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나도 모르게 작용한 건지. 아버지의 늙음을 절감하는 하루하루 속에서 속히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내 능력을 초월한 특별한 힘을 자아내기라도 한 건지.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글을 쓰고 있고, 그 일이 그리 힘들지도 않다. 병원을 다니면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 중 하나는 “기다리는 게 제일 쉬운 거야”였는데, 그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책상 앞에 앉아서 글 쓰는 게 제일 쉬운 거야. 그건 그래도 내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이고, 끝이 분명한 싸움이기도 하니까. 쉬운 싸움이다.
감사하게도 원고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드라마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블로그 방문자 수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터라 조금 면이 선다. 방문자 수가 200-300이 겨우 될 때에도 나에게 고료를 주던 출판사들이 있었다. 그 덕에 계속 쓸 수 있었고, 더 잘 쓰고 싶었고, 그래서 나도 블로그도 이만큼 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닿을 수 있도록 자라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다.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 좋은 이야기를 멀리까지 들리도록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사람들에게 더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요즘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파악하는 일에 꽂혀있다. 7시간의 수면과 3시간의 자기 계발 시간을 지키고 나의 집중시간을 체크한다. 도파민 단식을 하고 있어서인지, 기록에 남기기 때문인지 집중하는 시간이 나날이 늘고 있다. 지금 이 글도 30분 만에 썼다. 나는 점점 능숙해지고, 잘 쓰게 될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연다. 오늘의 첫 일정은 언제나처럼 병원이다. 그 사실이 이제 그리 암담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생각이다. 차근차근 해내면 될 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낼 것이다. 건강하고, 명랑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2023년 11월 10일
아버지가 병 진단을 받은 지도 어느 사이 1년이 넘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신중하게 골랐고, 매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선택하기가 두렵던 날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믿는 것밖에 답이 없었고, 감사하게도 우리가 매달린 낙관들이 우리의 답이 되어주었다.
오늘의 일상과 그날의 일상을 포개보면 겹쳐지는 부분들도 조금씩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있다. 복사해 붙여 넣기 한 것 같은 날들도 따져보면 다 다른 하루인 것이다. 미세하게 틀어지는 각도가 우리가 몸부림쳐온 결괏값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작은 도전과 실패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허투루 보낸 날들이 없었다. 나는 나를 긍정하며 더 멀리 나아가볼 힘을 스스로 얻는다.
블로그의 방문자 수는 그때보다 2-3배 정도 늘었고, 나는 여전히 많은 글을 쓰고 있다. 훨씬 더 능숙해졌고, 더 잘 쓰게 되었다. 지난 나의 마음을 이어받아 오늘보다 더 능숙하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티 나지 않은 몸부림으로 이어가며. 건강할 것이고, 명랑할 것이다.
지난 일기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내가 쓴 일기를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동안 내가 배운 것은 그것이다. 나는 나를 살리는 힘을 가졌다. 자신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2024.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