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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Sep 05. 2024

언제나 쓰는 사람


사람은 얼마만큼 자신이 바라는 모양으로 살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되고자 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중 일부만을 살아볼 수 있을 텐데 그리하여 무엇으로 기억되게 되는지를 알고 싶다. 나는 과연 무엇이 될까. 손에 틀어쥐었다고 여겼던 일들이 줄줄 새어나가는 걸 볼 때마다 그 질문을 떠올렸다. 떠올릴 때마다 욕심이 도려내지고 꿈이 깎여서 결국엔 딱 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하나 정도는 마땅히 가져도 될 것 같은 숫자니까 나도 가져도 괜찮다. 그리하여 남는 건 언제나 쓰는 사람. 나는 읽는 걸 더 잘하게 된 것 같은데, 근래에는 새롭게 읽게 된 것도 같은데 불변하는 법칙처럼 답은 언제나 쓰는 사람. 고집인지 오기인지 단념할 수 없는 필명인지. 아무튼 답은 하나니까 그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무엇을 쓸 건지. 어떻게 쓸 건지. 왜 쓸 건지. 결국 무엇이 될 건지. 생각하다 보면 리듬이 바뀌었다. 나는 하루를 조직하는 사람이고 가끔 지휘자가 되기도 한다. 기상 시간을 한 시간 더 당겼다. 글 쓰는 시간을 100분으로 늘렸다. 소설만 쓰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아침루틴. 간단히 속을 채운 뒤 점심시간까지 150분을 더 쓴다. 그럼 나는 점심을 먹기 전에 4시간을 넘게 소설을 쓴 사람이 된다. 이후의 하루를 허송세월한다고 해도 허송세월한 사람이 되지 않고 4시간 넘게 소설을 쓴 사람으로 남는다. 새벽기상의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아침루틴을 하며 글자수를 측정해 보니 집중력이 좋다면 50분 동안 1300자 이상의 글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 500자를 겨우 썼다.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당장의 목표이다. 그 시간이라면 집중도나 첨삭 여부에 관계없이 웹소설 한 편 정도의 글은 꾸준히 써낼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외의 일은 부차적이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정신력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다. 여러 갈래로 애정을 쏟기 어렵다. 하나라도 잘해서 일단 뭐라도 되자는 바람이 강하다. 오늘은 점심을 먹기 전에 소설을 4시간 넘게 쓴 사람이 되었다. 내일이라고 더 대단해질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꿈은 그다지 구체적으로 꿔본 적도 없다. 이미 되어본 사람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내가 나에게 자꾸 싸움을 걸고 이겨먹으려고 드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를 눕혀놓고 나의 크기만큼 세상을 그린다. 나를 억지로 넓히지 않고서는 세상을 알 수 없는 일이다.



2023년 4월 10일



지난 일기를 보다 보면 여러모로 깜짝 놀랄 때가 많은데, 그중 하나는 바로 오늘 쓴 것 같은 일기를 만날 때이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그런 글을 보게 되면 민망하기도 하고, 좀 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 바로 나의 속성이라는 것이겠구나, 배우게 되어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해 아는 일은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기를 쓰고, 다시 읽는 일은 권할 만하다. 가끔 징글징글할 때도 있지만, 얻는 쪽이 훨씬 커서 감수할 만하다.

요즘도 아침에 글을 쓴다. 소설 쓰기에 집중하고 싶어서, 다른 짓도 안 하고 눈 뜨면 어제 쓴 소설부터 켜서 이어서 쓴다. 빠르면 6시부터, 늦어도 7시 30분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컨디션이 좋으면 점심시간 전까지 4천 자 남짓한 글을 쓸 수 있다. 물론 그보다 적게 쓸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점심을 먹기 전까지 4시간 동안 소설을 쓰는 사람인 건 여전하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좋아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새삼 기분이 좋다. 역시나 바라는 건 쓰는 사람. 요즘은 부쩍 그런 마음이 더 커져서, 쓰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2024.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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