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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Sep 03. 2024

작고 모난 마음


젖은 유리창은 징그럽다. 밖에 깔린 안개가 주는 음습한 기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을 뜨러 거실에 나갔다가 그것을 보고 돌아왔다. 사연 많다고 지껄이는 인간의 연극적인 눈동자처럼, 불쾌한 거짓의 냄새가 유리 한 장으로 겨우 막혀있는 것만 같다. 어째서 저리 흉할까. 안개가 끼고 창이 젖었을 뿐인데.


보이는 건 결국 마음의 모양이라는 말이 징그럽게 들리면서도 부정할 재간이 없다. 마음가짐의 중요성은 누구라도 실감하며 사는 일이다. 나라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 탓이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고 싶은 건 이미 너무 많은 마음의 죄를 지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중엔 억지로 가져다 붙인 죄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항변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여서 나를 정말 ‘그런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니 마음의 힘이란 얼마나 굉장한 건지. 나를 나로 만드는 것도 마음의 힘이다. 마음은 대체 뭘까. 혼과 연결되어 있거나 혼 자체이거나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을 쉽게 다루는 사람들을 경계하게 된다. 내가 경계하는 사람 중 하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거짓말하는 사람만큼 그들은 나빠 보인다. 사소한 부분에서 그들의 정체는 드러날 수 있다. 공들여 쓴 카톡에 답이 없는 것. 듣고자 한 말과 기도만 쏙 빼먹고 가버리는 사람들. 남겨진 입장에선 당연히 마음이 식는다. 그런 취급을 당했는데 전과 같을 수 없다.


습관적으로 그러는 사람을 본다. 아마 본인은 자각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로 오히려 더 나쁘게 여겨진다. 누군가에게 지적받기 전에 자신의 이기심에 대하여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으므로 알 리가 없고, 알지 못하기에 고쳐질 가능성도 없다. 그런 사람 곁에 남는다는 건 평생 그런 일을 당하는 데 내가 동의한다는 뜻.


대단한 우정과 애정을 기대한 적 없다.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며, 교류하는 동안만은 진실하기를 바랄 뿐인데. 사소한 무책임으로 나를 방치해 놓고, 그런 나를 도리어 눈치 없거나 융통성 없는 바보 인간 취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우정 어쩌고를 운운하는 건 너무도 뻔뻔한 게 아닌지.


나는 오래 알고 지내온 사람들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각별한 사람에게만 각별함을 느낀다. 서로를 향해는 애정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쓰고 관심을 쏟고 마음을 건넨다. 나와 같이 애쓰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마음을 주고 싶어서 무례한 사람들을 소홀히 한다. 내킬 때만 가꾸는 정원에서 무슨 꽃이 피겠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마음을 달라고 해서 좋은 부분만 꾹꾹 뭉쳐서 건넸는데 저 좋은 향만 취하고 받았다 어쨌다 답도 없이 사라진 뒤 너는 말 안 해도 다 알잖아~하고 나타나면, 솔직한 심정으로 시비 거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어제 D님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다급하게 와서 빨리요, 부탁해요, 알려주세요 해놓고 원하는 걸 취하면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고 가버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검색창이나 심심이 취급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 모니터 너머에, 액정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대화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웹상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가깝다고 생각했던 지인들이 메신저를 통해서 얼마나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주는가를 여러 번 경험했다. 원래도 메시지를 주고받기를 선호하지 않는 나의 성향은 그런 경험을 통해 더욱 심화되기도 했다. 어쩜 다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기를 좋아할까. 이해심이 바다만큼 넓다면 그럴 수도 있지, 오죽하면 그럴까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음이 작다. 같은 실망을 세 번이나 해버리고 나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통 모르게 된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바란다고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024.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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