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전하는 일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서로의 안부를 묻기가 어려워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부끄럽게도 함께 아는 친구의 결혼식장에서였습니다. 서로의 의지로서가 아닌 우리 밖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머쓱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나이를 먹어 좋은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뻔뻔하게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ATM기가 어디 있냐. 망할 J가 축의금 대신 내달란다. 그걸 날 시키고 있네. 불량시절처럼 구시렁거리면 친구는 별 동요도 없이 주거래 은행부터 물어옵니다. 아무거나. 반사적으로 툭 튀어나온 성의 없는 대답을 곱씹자니 십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마저 듭니다. 그런 내 어깨를 이쪽저쪽으로 잡아끌며 친구는 가장 가까운 은행기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기다려. 건물을 나오자마자 친구가 말했지만 어디 제가 남 말을 곧이듣습니까? 왜 비가 오고 난리냐. 계집애 엄청 잘 살겠네. 투덜대며 벽돌 같은 구두를 끌고 꾸역꾸역 걸어가죠. 그럼 곧 젖은 땅을 박차는 구두 소리 하나가 들립니다. 머리 위로는 우산이 올라 있고요. 젖지 말라 어깨를 잡아끄는 단단한 손은 자동 옵션이지요. 얼마나 걷는다고. 고맙다는 말은 꼭 그렇게 이상하게 번역되어 튀어나옵니다. 그래도 돌아오는 답이 나쁘지 않습니다. 픽, 웃음소리 하나와 내용물은 변하질 않네, 칭찬도 혹평도 아닌 평가 하나.
나는 내가 뭘 잘못한 줄 알았지. 묵묵부답이었던 지난 시간을 암시하며 돌아오는 것은 때 아닌 고해성사. 사실 그건 제 몫인데 말입니다. 단 커피를 시켜놓고도 입이 씁니다. 쓰네, 써. 커피가 쓰다. 여기 커피 원래 이런가. 괜찮다더니. 애먼 커피만 잡다 쓴 입을 드디어 열었습니다. 일단 열린 입 안에서는 무수한 말이 튀어나오는 법이므로 저는 일찍 돌아가겠다던 애초의 일정을 바꾸어 음료하나를 더 시켰습니다. 이왕 자리 깔고 앉은 것, 할 말 못 할 말 다 풀어볼 작정이었습니다. 저만 힘든 줄 알고 폼만 재던 고슴도치 시절 그때처럼. 독설이 독설인줄 모르고 눈물 좀 보여도 창피한 줄 모르면서.
우리는 꼬박 열 시간을 떠들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목 아파. 목이 아파 죽겠다. 오랜만에 함께 얘기해서 좋았다는 말이 서툴러 불평만 내던지면 나도 아프다, 내가 더 아파. 불평으로 받아쳐줍니다. 뭉클한 배려입니다. 쑥스러워하는 절 위해 애써 투덜이로 분한 친구의 신들린 연기입니다. 감동합니다.
비 그친 도로를 나란히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굽 높은 힐 속에서 구겨진 발가락 열 개가 죽겠다고 난동을 피우고 저는 꼴사납게 절뚝거리지 않는 척 절뚝거립니다. 그런 주제에 허세는 잘도 부립니다. 그냥 계단으로 가. 뭐라도 되는 척 폼을 재면 친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반대쪽으로 내 어깨를 잡아끕니다. 아, 왜! 말하자 내가 힘들어서 못 가겠다 답합니다.
발가락 잘리는 줄 알았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힐을 벗어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 앉아 현관을 멀거니 보자니 오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도 사실 생각나는 말들은 몇 없었습니다. 대신 뻔뻔할 정도로 어리광 피우고 있는 제 모습만 선명합니다. 그걸 또 당연한 듯 받아주고 있는 친구의 모습도 선연합니다.
진짜 내용물은 안 변하나 보네.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그간의 무심함이 무얼 위해서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잘 지내냐는 말에 잘 지낸다 답하고 너는 어떠니란 물음으로 돌려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다고. 새삼 부끄러워 뒷목을 긁적거립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지만 친구는 오늘 첫 강의를 빠졌다고 합니다. 나랑 떠드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면전에선 그리 말하고 넘겨버렸지만 오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무심한 세월만 늘였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나한텐 강의보다 더 중요했어. 잠들기 전 도착한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습니다. 사람은 잃는 것도 한순간, 얻는 것도 한순간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깜빡거립니다.
어느덧 알고 지낸 세월이 삶의 반. 어린 내가 부리는 어설픈 호기에 멋있다고 엄지를 세우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 쪽지 하나에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해했던. 나도 보지 않던 내 걸음마 시절 사진을 사진첩에 끼어두고 수시로 펼쳐 보던 열몇 살의 친구 모습을 떠올리며 뒤척거립니다.
2016년 3월 7일
알고 지낸 시간이 길다고 그 관계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의 언어를 쓴다는 사실은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절감하며,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모나지 않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 투덜대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게 디폴트였다. 그게 미안해서 집에 가면 장문의 편지를 써서 다음날 갖다 주곤 했다. 얼마나 구구절절 써놨던지, 친구들은 귀여워해주었다. 몇 번을 고마워해도 부족한 일이다. 학교 밖 세상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 배울 의지도 없었는데 그런 나를 이곳저곳 끌고 다니며 신세계를 알려준 친구들이 있어서 많이 뒤처지지 않은 성인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서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저 잘 살겠거니, 믿으며 이따금 기분 좋게 떠올려 본다. (2024. 0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