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독립한 첫 이야기
*
아들 집 건너편으로 이사를 가게 된 노인은 이삿날까지 남아 있는 일주일 내내 짐을 꾸리는데 보내야 했다. 열아홉 시집와서부터 꾸렸던 세간살이를 홀로 정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노인은 여든둘이었고 여든둘이기에 힘이 부쳤다. 노인보다 먼저 늙은 그릇들이 녹이 슬어 포개져 있었다. 도무지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릇들 속에서 아껴온 그릇들만 골라 챙겼지만 그 또한 노인의 손때가 묻어 누렇긴 마찬가지였다.
아끼는 건 그런 거다. 매일 손을 타 누레지거나 오래 숨겨져 누레지거나.
노인이 주름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노인과 함께 살아온 그것들은 때를 감추지 못했다. 포개진 그릇들을 보자기로 동여매며 노인은 뜨끈한 숨을 쉬익 쉬익 몰아쉬었다.
*
노인의 짐을 화물차에 옮겨 실은 아들 둘은 어디선가 막걸리와 떡을 가져와 간단한 의식을 치렀다. 아버지에게 술잔을 바칠 때처럼 경건하게 술을 올린 두 녀석은 찬 바닥에 스스럼없이 엎드려 절을 했다. 오랜 시간 무탈하게 잘 살다 갑니다. 어디로 가는 인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노인은 아들들과 마음을 포개어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무탈하게,라는 말에 먼저 간 남편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떠나갔다.
*
노년을 향해 가는 아들들은 노인의 짐을 거뜬히 옮겨주었다. 온기 없던 방에 많기도 많은 짐을 꾸역꾸역 채워 넣고 보니 거기는 금세 노인의 집이 되었다. 평수로 치자면 형편없이 좁아졌지만 노인은 아늑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전 집은 크기도 컸다. 시부모님과 남편과 자식 넷을 건사하던 집을 혼자 살려니 클 수밖에 없지.
*
저녁 무렵, 큰 아들 내외는 필요한 살림들을 사주겠다며 노인을 데리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농과 서랍장, 냉장고 같이 큼직한 물건부터 조립용 선반과 욕실용 슬리퍼, 수세미 받침 등의 자잘한 물건까지 쉼 없이 사들였다. 없는 게 없는 도시의 마트에서 노인은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졌다. 며느리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필요한 물건을 찾아내었고 아들이 끌던 카트는 금세 산더미가 되었다. 그걸 보자니 노인은 돌연 겁이 났더랬다. 그만 가자. 모처럼 고집을 부려 가게를 나오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들 내외는 계속하여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을 하시라고, 뭐든 상관없으니 말씀만 하시라고, 정신도 멀쩡한 녀석들이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가만가만 듣고 있던 노인의 머릿속에 한 구절이 뱅뱅 맴돌았다. 뭐든 상관없으니. 가만 보자, 여든둘 사는 동안 내가 그런 말을 들어보았던가. 생각하던 노인이 빙긋이 웃었다. 니들 그러니까 나는 꼭 시집을 가는 것 같다야. 우리 아버지도 나 시집갈 적에 농 하나 못해주셨는데. 그래도 이불은 해주셨지, 그건 두 채나 해주셨지……. 노인의 잔잔한 미소 위로 가로등 빛이 더듬듯 스쳐갔다. 아버지의 손처럼, 남편의 손처럼, 그리고 이제는 자식의 손이 되어,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2017년 11월 13일
이렇게 자꾸 쓰면 뭐든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자주 말하곤 했는데, 정말 뭐가 되는 글이 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고 들어온 날 썼던 일기가 그랬다. 이 일기의 제목이자 첫 문장은(당시 제목을 따로 짓기가 번거로워서 첫 문장을 게시물의 제목으로 쓰곤 했다) 후일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 도입부에 그대로 실렸다. 나는 이 일기를 1년 뒤에 소설 형식으로 고쳐 써보았는데, 그때 나왔던 글 대부분이(내가 가장 아끼는 장면과 문장 역시) 거의 그대로 책에 실렸다. 5000자 남짓한 짧은 소설이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나답지 않게 댓글을 스스로 찾아보고 캡처하고, 계속 꺼내보고 그랬다. 긴 시간 이야기를 품고 있던 자리에 다정한 용기가 고이는 것 같던 시간. 이 경험이 나를 계속 쓰게 하는 것 같다. 내 안에 오래 묵은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갈 때가 또 다가온다고,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뭐라도 일단 써보자고, 스스로를 속고 속이기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2024. 0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