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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Oct 15. 2024

저세상 면담 (1)

소설 [저세상 미화원] 1화 


부모는 있으나 아이는 없음 제 4구역


입장 전 안내 사항


죽으면 아이의 몸이 된다. 평균 7세 전후의 외형으로 뜀박질이 가능한 신체가 주어진다. 최소한의 기동력을 확보하면서도 쉽게 구속하기 위함이다.


7세 이전에 죽임을 당한 아이도 같은 나이의 몸을 받는다. 말할 줄 모르던 아이가 말을 하고, 걷지 못하던 아이가 뛸 수 있다. 저승의 행정절차를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이의 몸이 된 망자들은 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간혹 예외인 경우가 있지만 지옥의 규율과는 관계가 없다.



* * *



죽은 아이들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서로를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은 주마등을 보았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을 뜨니 저승이었고, 혼자가 아니었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말도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에게 다가가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처럼 신비로운 경험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리 지은 아이들 사이로 이따금 탁한 안개가 피어 올랐다. 안개가 걷힌 자리에 새로 온 아이가 멍하게 앉아있었다. 주변을 둘러 본 아이는 곧 상황을 파악하곤 자그마한 몸을 일으켜 가까운 무리에 끼어들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새로 온 아이의 흥분감이 먼저 온 아이들의 흥분감을 새롭게 데웠고, 그들의 대화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기 소개부터 다시 시작하자!


안개가 쉴 새 없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이들이, 흥분감이 계속해서 더해졌다. 불 지옥을 제외하면 이승 너머에 그처럼 뜨거운 곳도 없을 것이다. 열기가 식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발갛거나 빨갰다. 장미는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봄이면 붉은 장미로 빼곡해지던 집 울타리에서도 느껴본 적 없던 생명력이 느껴졌다.


한 아이가 장미의 무리로 다가왔다. 원형으로 둘러앉은 아이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뒤로 밀며 새 아이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장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장미가 움직이지 않아서 장미 옆자리에만 비스듬한 공간이 생겼다. 새로 온 아이들은 예외 없이 그 자리로 와 앉았다. 불균형한 모양으로 생겨난 자리를 자신이 수습하겠다는 듯이. 선량하게 웃고, 상냥한 목소리를 말을 걸었다.


“안녕.”

“……응, 안녕.”


인사를 마치면 새 아이의 시선은 장미의 무릎으로 향했다. 벌써 열다섯 번째 겪는 일이라 새롭지 않았다. 무리 중 가장 말이 많아서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아이가 언제나처럼 장미를 대신해 설명했다.


“울다가 지쳐서 잠든 거야. 그리고 걔들은 남매야.”


장미는 제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든 동생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저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었다. 새 아이가 장미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부러운 듯 바라봤다. 안쓰러움과 부러움을 오가던 감정은 늘 안쓰러움으로 끝이 났다. 여긴 아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보다 함께 죽었다는 절망감이 우세한 곳이었으니까.


장미의 동생이 숨 넘어가게 울다가 정신을 놓아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생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제 누나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더 괴로워했다. 장미도 같은 마음이었다. 남매는 마주 볼수록 고통을 느꼈다. 고통의 표현 방식까지 같지는 않았다. 동생은 끝없이 울었고, 장미는 그런 동생을 달래주었다. 어느 한 쪽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살아있을 때와 같았다. 저승도 별거 없네. 장미는 생각했다.


불현듯 바닥에서 새까만 안개 기둥이 솟아났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피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무수한 기둥이 경쟁하듯 솟았다. 기둥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 마물이 서 있었다. 서 있는 벌레 같기도, 절단된 동물 같기도 한 생김새였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눈 코 입을 겨우 구분할 수 있었는데, 다른 부위는 몰라도 입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킬킬킬. 가래를 끓어서 만든 듯한 웃음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로 도열한 마물들이 저마다 들고 있던 흉기로 일시에 바닥을 내리쳤다.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땅이 크게 흔들리더니 바닥에서 널따란 단상이 솟아 올랐다. 단상 위에는  큼직한 책상 하나와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중앙에 놓인 한 자리를 빼고는 자리가 모두 차 있었다. 검은 마스크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검은 옷을 입은 이들. 그들의 얼굴 위에는 1부터 5까지의 숫자가 붙어 있었다.


단상 중앙에는 스탠드 마이크가 있었고, 마이크 앞에 사람의 형체를 한 이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6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스스로를 악마라고 소개한 그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제엔자앙하알. 이번에도 빌어먹게들 많이 왔구나, 인간들아. 너희 인간들을 하나 하나 면담하고 배정하려면 황천의 샘이 모두 마를 때가 와도 시간이 부족하겠구나. 여염벼엉하알. 지금부터 너희들은 우리 위원회와 간단한 면담을 진행한다. 면담이 끝나면 우리는 너희에게 갈 곳을 알려줄 것이다. 그곳에서 너희의 거취가 정해질 것이다. 우리는 너희의 인생사를 문서로 받아보았기에 너희가 갈 곳을 이미 정해두었지만,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너희의 마지막 변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감사하라. 인간이었던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호의일 테니. 호명한 인간은 이 자리에 나와 신속하고 진솔하게 바람을 말하라. 참작해 줄 것이다. 질질 짜고 빌지 마라. 걷어차줄 것이다. 건방을 떤다면 저승의 규율대로 엄벌에 처할 것이니. 질문이 있다면 여섯 글자로 여섯 개만 받겠다. 그래, 거기 너. 말해 보라.”


“여기는 지옥임?”


“아니다. 여기는 저승, 거쳐가는 문이다. 면담이 끝나면 우리는 너희에게 검은 문과 하얀 문 중 하나를 말해줄 것이다. 검은 문은 지옥으로 통하고 하얀 문은 천국으로 통한다. 배정받은 곳에 가서 다음 안내를 받으면 된다. 다음. 그래, 너.”


“근데 왜 여기 악……어?”


“머저리냐? 다음! 옆에, 너.”


“여기 왜 악마만?”


“지옥도 아닌데 악마만 있는 것이 어지간히도 신기한가 보군. 나는 인간인 너희들이 그걸 묻는 것이 더 신기하다. 그래도 질문이니까 답을 주겠다. 원칙 대로라면 위원회는 악마 셋 천사 셋으로 꾸려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유구하게도 못돼먹은 인간의 역사가 우리의 절차를 바꾸었다. 천국에서 위원회를 파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간은 철저히 악마적이다. 어느 정도로 악마적이냐고? 여기 오기 전에 진행한 서류 검토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놈들 중 99%는 검은 문으로 가야 한다.”


“근데 왜 면담 함?”


“말했잖나. 우리가 자비롭기 때문이라고. 그딴 걸 따져 물을 시간에 우리를 설득할 말이나 고민해라!”


“무대가 필요함?”


“너희도 아침 조회다 오디션이다 쓸데없이 무대 세우고 마이크 들고 하지 않나? 우리도 그런 거다. 빌어먹을 면담 때문에 지겨워 죽겠는데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면담을 꼭 골방에서 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나!”


“이래서 언제 끝?”


“남는 게 시간일 텐데 별 걱정을 다하는군. 여섯 개의 질문이 끝났다. 왼쪽부터 차례로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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