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4화
미화원의 일은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장미는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며 밤사이 더럽혀진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퇴근하며 오는 길에 말끔히 치웠다고 해도 같은 상태로 유지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위에 잿빛 얼룩이 남아있었다. 장미는 주머니에서 걸레를 꺼내들었다. 마른 얼룩이 쉽게 닦였다. 다행이었다.
장미는 걸레를 주머니에 넣으며 정면에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는데, 사용자도 장미뿐이었다. 애초에 장미가 숙소로 가는 용도로 만든 길이었다. 장미만 조심한다면 매일같이 쓸고 닦지 않아도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저승이 워낙 지저분한 터라 큰 효과는 못 보고 있지만.
저승은 통로. 망자들이 밟는 땅이자, 더러움의 상징인 악마들의 관할 구역이었다. 이곳에서의 더러움은 이승과 의미가 달랐다. 장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동전 크기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았다.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는 얼룩도 많아졌다.
언뜻 보기엔 먼지 덩어리 같기도, 굳은 잉크 자국 같기도 한 이것들을 여기서는 ‘찌꺼기’라고 불렀다. 찌꺼기는 ‘악’의 결정에서 나온 부스러기였다. 별것 아니어 보여도 악의 본질을 담고 있기에 주의해서 다뤄야 했다. 맨손으로 만져서는 당연히 안 됐다. 손에 물들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청소하는 타이밍도 중요했는데, 찌꺼기들이 뭉쳐서 커지려는 습성이 있기에 서둘러 처리할수록 좋았다. 저승이 상주 미화원을 두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습성 때문이었다. 악마들에게는 자신들을 대신해 찌꺼기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바로바로 치워줄 존재가 필요했다.
사실 찌꺼기는 마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기에 악마들 입장에서는 제거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마물이 찌꺼기를 먹고 자라서 인체화를 마친 성체가 되면 부려먹기에 좋았다. 실제로도 저승의 대다수 일을 그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성체 마물 중에서 유달리 악하고 강한 개체는 악마로 인정받아 동족이 되기도 했으니, 이는 곧 악마들의 세력을 늘리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악마들이 자신들의 밥줄을 스스로 동여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찌꺼기 처리에 동참하게 된 것은 ‘위’에서 내려온 공문 때문이었다. 천국의 감독하에 운영되는 ‘지옥 초과밀화 현상 조사단’에서는 망자들의 99%가 지옥으로 가는 이유 중 하나로 찌꺼기 문제를 꼽았다. 저승의 찌꺼기가 인간계로 흘러가는 바람에 인간의 악마화가 진행되어 지옥행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었다.
이에 조사단은 “인간계로의 찌꺼기 유입 차단 및 철저한 관리”를 명령했고, 저승 운영위원회는 최초의 인간 직원을 채용하게 되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마물에게 악의 부스러기를 맡길 수 없으니. 그리고 그 일은 악마들이 직접 하기에는 영 폼이 안 났으므로……
마침 그 시기에 면담을 받았던 장미가 단독 후보에 올랐다. 장미는 재수 없게 얻어 걸렸다고 오늘날까지도 툴툴거리고 있었지만, 당시 면담을 진행한 악마들 사이에서 장미는 스스로 지옥에 가서 엄마를 기다리겠다는 신생아 다음으로 호감도가 높았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의 선택으로 천국행이 결정되어 있던 가족들의 미래를 망쳐버렸는데.
특히 6번 악마가 장미를 마음에 들어 해서 미화원이 되도록 적극 밀어주었다. 미화원이 되고 나서는 옆에 끼고 다니면서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직접 교육시키기도 했다. 장미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차라리 지옥에 갈걸! 6번 악마의 악랄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렸다. 장미의 악마 혐오증은 6번이 남기곤 간 잔해였다.
오솔길이 점차 넓어지더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광장’이었다. 망자들이 저승의 문을 넘으면 제일 먼저 밟는 땅이자, 천국과 지옥과도 연결되는 핵심부였다. 저승이라고 하면 대부분 이 광장을 말했다. 저승의 크고 작은 행사들은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장미가 면담을 받던 곳도 바로 여기였다. 그만큼 찌꺼기가 많이 고이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장미는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작업복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조임끈을 바짝 당겼다. 일주일 전에 수리를 맡긴 안구 보호용 고글이 오늘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애석함을 느끼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고쳐 잡았다. 누가 일부러 투척하기라도 한 것처럼 전방위에 찌꺼기가 널려있었다.
장미는 바로 앞에 보이는 찌꺼기를 쓸어 담았다. 틈새에 박힌 찌꺼기는 밀대칼을 이용해 꼼꼼히 파내고, 표백과 살균에 도움이 된다는 세제를 뿌린 뒤 걸레로 박박 닦아서 남아있던 얼룩까지도 감쪽같이 제거했다. 말끔해지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다. 쓰레받기가 꽉 차자 장미는 작업복 윗주머니에서 보라색 복주머니를 꺼내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벨벳 소재의 주머니가 거대한 솥처럼 부풀어 올랐다.
자동차 두 개를 포개놓은 듯한 크기였다. 끈으로 조여진 입구 부분이 바다 밑바닥에서 자라는 해초처럼 꾸무럭거렸다. 장미는 라켓을 휘두르듯이 쓰레받기를 허공에 털었다. 복주머니가 입을 쩍 벌리며 시커먼 속내로 찌꺼기를 단숨에 빨아들였다. 목적을 달성한 복주머니의 입이 합 다물어졌다. 꺼억 불결한 트림 소리가 이어졌다. 장미는 콧잔등을 눌러서 마스크를 피부에 완전히 밀착시키며 돌아섰다.
장미가 자리를 옮기자 복주머니도 따라갔다. 주머니 입구가 장미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는데, 꼭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미는 그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빠르게 청소 작업을 이어가다가 쓰레받기가 꽉 차면 어깨 뒤로 홱 털어낼 뿐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던지든 복주머니는 티끌만 한 찌꺼기도 놓치지 않고 받아먹었다. 지옥의 야심작이라더니 악마들이 으스댈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복주머니가 찌꺼기를 받아먹을 때마다 후끈한 입김과 함께 지독한 입 냄새가 풍겼다. 성능을 무색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장미는 몸서리를 치며 성큼성큼 거리를 벌렸다. 복주머니가 송충이처럼 몸을 접었다 펴가며 곧바로 쫓아왔다. 장미는 별안간 방향을 홱 틀었다. 복주머니가 삐끗하며 육중한 몸을 반 이상 허공에 띄웠다. 넘어질락 말락 하는 밑창 사이로 얄쌍한 다리가 총총 걸어오는 게 보였다. 다리만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장미는 못 본 척 돌아서서 빗자루질을 하기 시작했다.
“청소!”
마물들은 언제나 장미를 ‘청소’라고 불렀다. 청소밖에 존재 가치가 없다는 의미를 담은 멸칭이었다.
“너 내 말 안 들려? 아악! 청소나 하는 인간 노예 주제에! 감히 이 몸을 무시해?”
다리가 씩씩거리며 장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미가 계속 무시하자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나를 무시해? 나를 무시해? 네가? 감히? 청소 주제에?”
다리 밖에 없는데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장미는 늘 궁금해했다.
악의 찌꺼기들이 모이면 덩어리가 됐다. 덩어리인 채로 단단해져서 긴 시간을 보내면 영혼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덩어리는 성장을 위해 찌꺼기를 흡수했다. 인간의 형태를 이루는 인체화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악마는 다양한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달라졌다. 인체화를 이룬 마물들을 성체라고 부르는데, 수억 마리의 마물이 덤벼도 성체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 수천 마리의 성체가 숫자를 받은 악마 중 최하위인 999번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숫자가 달린 악마들은 지옥에서 생활했고, 저승에서의 최강자는 성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주요 직책을 성체가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물들은 그들의 뒤를 잇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마물들의 입장에서 장미는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앗아가는 약탈꾼이었으며, 영혼이 스미기 직전의 덩어리를 잔인하게 죽여버린 살육자였다. 마물들은 장미를 비난하고 따돌렸다. 만날 때마다 트집을 잡으며 어떻게든 시비를 걸려고 했다. 그때마다 장미는…… 솔직히 말해 귀찮았다. 하루 중 말 한마디를 안 하고 보내는 날이 태반인 적적한 삶이어도 마물들이 말을 걸어준다고 반가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물이나 악마나. 장미에겐 모두 더럽고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소형이냐 대형이냐의 차이일 뿐 모두가 폐기물이다.
“이게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다리가 쿵 하고 바닥을 내리찍더니 검고 끈적한 액체를 위쪽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액체는 곧바로 굳어서 몸통을 만들어갔다. 몸통 양 옆으로 팔이 달렸는데, 다리 두 개를 포갠 것보다도 주먹이 컸다. 평소보다 고집을 부린다 했더니 새 주먹을 얻고 기세가 등등해진 모양이었다.
마물은 커다란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장미를 위협했다. 장미는 빗자루를 옆구리에 끼고 허리춤에서 집게를 꺼냈다.
“청소. 너 내 말이 들려, 안 들려?”
좀 전보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짐승이 그르렁거리듯 위협적으로 들렸다. 장미는 고개를 까닥했다.
“들려.”
“그럼 말해 봐. 내가 누구야?”
“대왕 코딱지.”
“뭐?”
“비듬 덩어리?”
“너…… 너……!”
“아유 더러워.”
“너 이…… 캬학?”
장미가 집게로 마물을 집어 어깨 뒤로 홱 던졌다. 지루함에 늘어져있던 복주머니가 퍼뜩 입을 벌리더니 단숨에 마물을 낚아챘다.
“굿.”
“후옹.”
주머니가 몸통을 꿀렁거렸다. 장미는 저승의 집게 에 감탄했다. 대상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맞춤으로 변한다더니 살아있는 커다란 생물도 단숨에 집어올릴 수 있었다.
“이건 좀 쓸만하네.”
장미는 만족하며 집게를 허리춤에 도로 꽂았다. 복주머니의 입질이 심상치 않았다.
“끄흐…… 으욱……”
토하기 직전 인간의 목울대처럼 혼자서 한참을 꿀렁거리더니 이내 주둥이를 벌리고 하늘로 내용물을 쏘아 올렸다.
“프항.”
“으어아아아아아아아아!”
마물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저편으로 날아갔다. 복주머니의 또 다른 기능이었다. 청소용 주머니는 폐기 대상인 찌꺼기만 소화할 수 있었다. 소화되지 않은 쓰레기는 스스로 분리해서 배출했다.
“의외로 기술이 좋단 말이야.”
장미는 마뜩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꺼억.”
복주머니가 그에 화답하듯 트림을 뱉더니 입을 옹졸하게 다물었다. 장미는 청소를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