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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Oct 27. 2024

신입공고

소설 [저세상 미화원] 5화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찌꺼기는 줍는 족족 새로 생겨나는 것 같았다. 청소하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눈앞에서 폴폴 날리는 찌꺼기들을 보다 보면 인간계의 악마화는 이미 정해진 일인 듯 보였다.


마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시비를 걸었다. 주먹 마물이 날아가는 걸 보았던지 다들 흥분한 상태였다. 너무도 열렬히 주먹이 얘기를 하기에 주먹이처럼 하늘 구경을 시켜주었다. 직접 겪어보면 서로의 심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테지.


그들의 억지 소리를 일일이 받아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차라리 대거리를 하고 싸워서 서열 정리를 하는 게 나으려나? 마물을 마주 보고 서면 빗자루를 휘두르거나 쓰레받기로 찍어내리는 등의 폭력적인 상상이 자꾸 떠올랐다. 악의 가까이에서 일한 후유증일지도 몰랐다.


오전 근무를 끝낸 장미는 언덕 위에서 쉬고 있었다. 살아있었다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후식을 즐길 시간이었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는 점심도 후식도 필요 없으니. 고단했던 팔다리를 두드리며 남은 구역을 어떻게 청소해야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멍하게 시간을 때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장미는 이 시간을 어떻게든 사수하려고 애를 썼는데, 근무 중에 합당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어서 장미는 쓰러진 사람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의식이 없는 척하고 있으면 마물들도 흥미를 잃고 돌아갔다. 잠든 인간을 깨울 만큼 그들의 용건은 진지하지 않았고, 혹 장미의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을까 봐 미리 내빼려는 계산도 있었다.


인간 노예를 향한 마물들의 적개심이란 고작 그 정도였다. 지능이 낮은 개체들이어서인지 속기도 잘 속고 끈기도 없고……


“오잉? 죽었나? 귀찮아질 테니까 모른 척해야겠다.”


발이 달린 코가 화닥닥 뛰어가는 기척을 느끼며 장미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악마 조무래기들 아니랄까 봐. 사고방식부터 틀려먹었다. 하지만 모든 마물이 코처럼 돌아서 가는 건 아니었다.


통. 통통.


지면이 장미의 관자놀이를 때리며 울렸다. 익숙한 반동이었다. 장미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거짓말을 하는 족족 꿰뚫어 보는 마물이 있었다. 죽은 척을 했다가는 진짜 죽이려 들지도 모를 위인.


“바쁘다면서 맨날 와. 바쁘다는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장미는 툴툴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찌푸린 눈을 뜨니 저 멀리에서 눈코입이 달린 얼굴이 공처럼 바닥을 튕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통. 통통통. 통통통통.


거리가 꽤 있는데도 그의 움직임을 모조리 느낄 수 있었다. 노예만이 감지하는 파장이었다. 일종의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소리를 버럭 내지르면 장미는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튀김 기름에 넣었다가 빠진 것처럼 전신이 얼얼해졌다. 장미가 그의 관리 아래에 있다는 증거였다.


머리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장미는 고개를 까닥 숙였다. 기다렸다는 듯 불호령이 터졌다.


“청소하는 인간 주제에. 버릇없이!”


장미는 입술을 꾹 물고 통증을 견뎠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섰다. 아픈 내색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독하기는!”


마물의 얼굴이 끈적하게 늘어났다. 목과 몸통, 팔, 다리가 차례로 생겨났다. 완전한 형체를 갖춘 그는 장미보다 두 배쯤 컸다. 얼굴과 몸의 비율이 1 대 1 이었다.


야구공 크기의 눈동자가 데룩데룩 굴러가며 장미와 주변을 훑어 보았다. 사시인 터라 장미를 보고 있을 때도 다른 곳을 보는 것 같고, 다른 곳을 볼 때도 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파투. 6번이 자신의 후임으로 정해두고 간 성체 마물이었다. 그는 미화팀의 관리자로 직원이자 죄인인 장미를 관리라는 명목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청소는 제대로 한 거야?”


장미는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다시피요.”


“내가 제대로 못 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말 대답하지 마!”


“…….”


“내가 말하잖아! 대답해야지!”


“……네.”


장미는 최대한 평화로운 장면을 떠올렸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파투와 얘기를 하다 보면 속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이 뒤집힌 내색을 보였다간 전기 충격이 돌아왔다. 악랄한 6번이 자신의 후임으로 파투를 정한 이유가 있었다.


“근데 내가 여기 왜 왔더라?”


장미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맞다!”


파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신입이 올 거야!”


“신입……이요?”


이번엔 장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입이라니. 자신만큼 재수 없게 걸린 인간이 또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광장의 절반만 청소해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상상력이 없는 악마들 머리에 퇴근 시간을 앞당긴다는 획기적인 계획까진 무리였겠지만, 지금보다 여유로워질 것은 분명했다. 파투는 마치 자신이 직접 결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번 직원 대상 복지 정책에서 우리 미화부가 뽑혔거든. 악마님들이 이처럼 자비로우시다니까. 이토록 작고 보잘 것 없는 부서도 놓치지 않고 골고루 관심과 애정을 나눠주시니. 아무튼 그래서 새 직원이 올 거야. 운이 좋으면.”


한순간에 기대감이 꺾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운이 좋으면 온다니요. 신입 직원이 온다는 거예요, 만다는 거예요?”


“온다잖아! 운이 좋으면!”


“아니, 그러니까……”


뭐라 더 말을 얹으려던 장미가 그만두었다. 애초에 악마랑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악마와 말이 통하는 게 더 이상했다. 장미는 그들과의 괴리감을 통해 자신이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왔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해줄 리도 없었다. 죄인에게 마땅한 벌이랍시고 빗자루의 무게나 더 올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뭐, 네. 알겠어요. 네. 그렇게 하세요.”


장미는 되는 대로 대답하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휴게 시간은 진작 끝이 나 있었다. 파투도 그 이상 더 용건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검은 문 앞 청소 오늘까지 끝낼 거야?”


파투가 몸을 액체로 녹이며 말했다. 그는 금세 얼굴로 되돌아갔다. 장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운이 좋으면요.”


“끝낸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말했잖아요. 운 좋으면 하겠다고.”


“거기 오늘 대악마님들이 방문하신다니까. 무조건 깨끗해야 한다고!”


자기는 무조건 신입을 데려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마음만 공연히 들떠서 실망감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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