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6화
[검은 문 배정자를 대상으로 한 최종 실험]
검은 문을 넘어온 자,
영원한 벌이 있으리.
- 최종 실험을 마친 자만이 지옥에 들어간다.
- 이 실험은 검은 문에 배정된 신입 중 갱생이 가능한 망자가 섞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 이 실험은 천국의 허락 하에 실행되었으며, 지옥의 인구밀도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 갱생이 가능한 망자는 지옥의 벌을 받지 아니하고, 그에 준하는 노역형에 처한다.
- 실험이 시작되고 오늘까지 단 한 명의 가능자도 나오지 않았다.
해가 지면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두드러기처럼 오돌토돌 부풀어 오르는 그림자 밖으로 손과 발과 머리와 어깨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한 시절 내가 살았던 도시에서 봤던 광경과 똑같다. 여긴 낮이 없는 새 세상인데도. 모든 것이 달라진 먼 미래인데도.
검은 낮을 밝히던 불투명한 인공 태양이 기만적으로 저물고, 한껏 독이 오른 아이들이 거칠게 몸을 풀기 시작한다. 지난 밤은 유난히 길었다. 배불리 먹은 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굶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던 날이 없었으므로.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절박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나이프를 제 손가락처럼 휘두르는 중학생 옆에서 나는 신발을 끈으로 단단히 동여맨다.
단발의 기계 소음과 함께 도시의 남은 빛들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도시는 완전한 암흑으로 뒤덮인다. 동시에 치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깨지고, 터지고, 악쓰고, 통곡하고. 기관총이 연사하며 그 모든 소리들을 지운다. 찰나의 적막. 쇠 냄새와 피비린내가 구분되지 않는 공기. 대기는 얼음장 같은데 나의 몸은 뜨겁다. 타앙. 채앵. 푸욱. 피부를 뚫고 나오듯 다시 시작되는 소음. 난장. 오늘은 몇 명이나 죽어나갈까?
중학생이 나에게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로 뛴다. 뒤통수에 욕이 날아든다. 칼이 날아왔대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나는 이틀 동안 서로의 등을 지켜주었다. 번갈아 보초를 선 덕에 밀린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
여기 왔을 때 우리는 모두 열두 살이었다.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악마가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용물은 몰라도 겉모습은 다 고만고만할 테니 비벼볼 싸움이 될 거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설정한 나이이니 감사해라.”
그런데 나이를 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애들은 예외 없이 살집이 있고 생기가 흘렀다. 뼈와 거죽밖에 남지 않은 산 송장들, 그러니까 일명 ‘피터 팬’ 이라고 불리는 열두 살들과 번갈아 보다 보면 진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약탈자였다. 약한 자들의 생명을 갈취해 먹고 배를 불리고 몸을 키운.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알리기 위해 이 세계의 시스템은 그 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지도록 했다. 이마 위에 시뻘건 글자로 바뀐 나이를 표시하도록 했다. 멀리서도 알아보고 달아나라고. 아니면 눈앞의 그것을 잡아먹고 그것보다 더 커지라고.
나는 아직 열두 살이었다.
이제는 정말 열세 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열두 살.
내 나이와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이 몸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
중학생 하나가 피터팬에게서 빵을 갈취했다. 피터팬은 빵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회색 탑에 들어갔을 것이다.
중학생 둘이 나타나서 먼저 온 중학생을 죽이고 빵을 나눠먹었다. 그들은 빵을 빼앗기고 망연하게 앉아있던 피터팬도 죽였다.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였다.
중학생들은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갔다. 현장에는 시체 두 구와 피와 빵가루가 남았다.
건물의 그림자가 몸을 씰룩거리더니 아이들을 수박씨처럼 뱉어냈다. 아이들은 곧장 시체 사이로 뛰어들어서 정신없이 땅바닥을 훑고 다녔다. 빵가루로 보이는 것이라면 줍는 족족 입에 넣었다. 모래여도 상관없었다. 배가 찬다면 그쪽도 나쁘지 않았다.
나도 무리에 섞여서 내 몫을 사수하려고 애를 썼다. 양보는 없었다. 흙바닥만 보느라 서로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힘에 밀려 나자빠진 아이가 뒤집힌 벌레처럼 낑낑거리며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횡재였다. 넘어진 아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머지 아이들은 자신의 반경을 넓혔다.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아이가 난데없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나보다 한 뼘은 작았고, 막대기처럼 말랐다. 맨발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티셔츠를 원피스 치마처럼 입고 있었다. 아이는 사정하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무시하자 갑자기 표독스럽게 얼굴을 바꾸더니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애가 별안간 칼을 꺼내서 덤벼든대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는 세상. 우리는 울지 말고 살아야 한다. 살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짐승이 되어야 한다. 연민. 양심. 동정심. 체면. 염치. 희생. 그런 사람의 도리 같은 건 배를 채워주지 않았다. 여기 있는 우리는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그 사실을 깨우치는 중이었다.
나는 아이를 비켜서 땅바닥을 계속 훑었다. 주웠다. 먹었다. 맨발의 아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100년은 늙은 사람의 얼굴이 되어 망연히 허공을 보았다. 그 아이도 알고 있던 것이다. 콩 한 쪽을 나눠먹어봤자 둘 다 굶어죽는다는 것. 나눠주지 않아서 나쁜 게 아니라 콩이 한 쪽인 게 나쁘다는 것을.
한 걸음 앞에 손톱 크기만 한 빵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아이를 어깨로 쳐내고 빵조각을 입에 넣었다. 내 어깨에 맞고 나자빠진 아이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맨발의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혀를 물고 참았다. 토해선 안 됐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시야에 언뜻 들어온 시체들은 모두 나체였다. 처음부터 먹거리를 포기한 아이들이 죽은 자의 소지품을 모조리 털어갔다. 유난히 작고 마른 아이들 서너 명이 시체의 머리에 둘러앉아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아뽑고 있었다. 그것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빈손인 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것 같아서.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면 공기를 잡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
전리품을 챙긴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아이들도 마지못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 건물의 그림자는 또 한 차례 꿈틀거리며 속을 게워낼 준비를 했다. 가장 깊은 곳에서 쏘아 올리는 냄새 나는 아이들.
그 애들은 신중해서 수박씨처럼 튀어나가지 않았다. 건물 벽에 붙어서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평소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리던 아이들이었다. 오로지 냄새로만 존재감을 알렸는데, 특유의 비린내는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허둥지둥 현장을 버리고 떠나면 비로소 그 애들의 시간이 됐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움직였다. 먹이를 탐하는 하이에나처럼 경계하고, 긴장하며. 시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몸으로 죽은 몸을 껴안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성배를 마실 것이다. 추워서. 외로워서. 배가 고파서. 오늘이 정말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한 그 아이들은 모두 열두 살.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못 본 척했다. 우리는 서로를 투명 인간 보듯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기억에 있는 얼굴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슬퍼지니까. 밤새 죽은 몸에 엉겨있던 얼굴이 시체와 함께 수거되어 영원한 소멸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울고 싶어지니까.
저 멀리 검게 칠한 트럭이 골목을 들어서고 있었다. 죽은 아이들의 흔적을 말끔히 없애는 그들의 존재가 이 세계의 순리만큼이나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들이 왜 지금 나타났을까? 아이들이 모두 숨어서 잠이 든 때에, 보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에 유령처럼 일을 끝내고 사라지던 자들인데. 왜……
타앙.
멀리서 쏘아진 총성이 적막을 갈랐다. 일순간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영상이 상영됐다. 하늘 전체가 스크린이었다. 무대와 회색탑이 보였다. 한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클로즈업되며 배경을 지웠다. 그 아이는 마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안녕! 내 이름은 지미야!”
살아있는 아이들이 지미를 올려다 봤다. 어디서 고개를 들든 그의 얼굴이 보였다.
“얘들아 많이 힘들지? 우리도 알아. 너희가 지금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
지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지미의 뒤로 보이는 여남은 명의 여자와 남자가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이마 위에는 각기 다른 붉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제일 낮은 숫자가 22였다.
“그래서 우리가 회색탑을 정복했어! 회색 탑이 식량창고로 쓰인다는 건 다들 알지? 와서 보니까 여기 정말 빵이 가득 차 있더라고!”
냄새 나는 아이들이 죽은 몸을 놓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보여?”
하늘이 무대 양편에 산처럼 쌓인 빵을 비췄다. 아이들이 작게 탄성했다. 지미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같이 나눠 먹자!”
방긋 웃는 아이의 이마가 매끈했다.
그는 열두 살이었다. 등 뒤에 어른을 세운 열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