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7화
뺨이 보기 좋게 볼록하고 낯빛이 맑았다. 생기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말도 행동도 통통 튀었다. 죽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열두 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보통의, 평범한, 으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열두 살. 비록 나는 살아서도 그런 열두 살은 본 적이 없었지만.
지미는 또랑또랑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말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여기 회색탑 앞이야. 빵을 먹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로 와. 우리 여기서 배도 채우고 얘기도 나누자. 언제까지 지금처럼 살 수는 없잖아.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아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어서 와! 기다리고 있어!”
아이들이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산 중턱에 설치된 회색탑 앞 무대까지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무대 조명이 날카로운 빛을 길게 늘어뜨리며 길잡이 역할을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밤길을 수월하게 헤쳐갈 수 있었다. 무대로 향하는 길마다 사람이 채워졌다. 여러 마리의 잿빛 구렁이가 산을 타고 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나도 어느새 행렬에 끼여 있었다.
“빵은 아직 많이 남았어! 포기하지 말고 와!”
하늘에서 방싯방싯 웃는 지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우리를 독려했다. 오늘이 배고픔을 느끼는 마지막 밤이 될 거라고 확신하던 열두 살들에게 소멸 외에 다른 답을 제시했다. 마치 우리가 그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꿈을 은근히 암시하며.
나는 속지 않았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열두 살인 그가 어떻게 하늘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 이 세계의 관리자만이 접근할 수 있다던 회색탑을 무슨 수로 열었는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어른들을 병풍으로 쓰면서도 나이를 먹지 않은 비결은 무엇인지.
나는 이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살다가 죽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비정한 세계였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건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악에 물들지 않은 선은 없다는 것이었다. 물들지 않는 선한 사람은 죽었다. 미쳤거나. 지미의 천진한 웃음이 믿기지 않았다.
빵은 미끼였다.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빵을 쥐여주고 무엇을 받아내려 하는지가 문제였다. 본능은 아까부터 소리치고 있었다. 돌아가라고. 함정일 것이 뻔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앞뒤로 아이들이 바짝 붙어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빵의 유혹이 강해졌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남아있었는지조차 몰랐던 힘으로 앞사람의 등을 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입구에서는 작대기를 휘두르며 입장객을 분류하고 있었다.
“넌 여기. 넌 저기.”
작대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아이들이 꾸역꾸역 안쪽으로 이동했다. 앞사람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미가 그들과 눈을 맞추며 감탄했다.
“와우. 세상에! 주위를 둘러 봐. 아직도 이렇게나 많은 열두 살이 있다는 게 기적 같지 않니?”
그제야 아이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피터팬이 있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매끈한 이마를 볼 때마다 뜨거운 감정이 목울대를 때렸다. 붉은 숫자에 쫓기느라 몰랐다. 우리 열두 살들의 숫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죽음이 일상인 타락한 세계에 떨어져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양심의 증거였다. 비록 지옥행을 선고받았을지언정 여기 있는 아이들은 달랐다.
무엇에도 훼손당하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 새로운 정체성이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땟국물의 시커메진 해골 같은 얼굴에 미약한 미소가 스몄다. 하늘에 떠 있는 얼굴이 그 모든 미소를 합한 것처럼 웃었다.
“우리는 모두 훌륭했어.”
“……맞아.”
“훌륭했어.”
열두 살은 작은 목소리로 후창했다.
“우리는 살아남을 자격이 있어.”
“그래. 자격이 있어!”
목소리를 높이며, 지미처럼 웃었다.
산 중턱에 일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판판한 공터가 있었다. 공터 정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 사방으로 빛이 뻗쳐 나왔다. 공터 전체가 밝았다.
무대 뒤로 보이는 회색탑이 악마의 뿔처럼 흉흉하게 서 있었다. 악마의 눈구멍처럼 푹 패인 상단에서 새빨간 불빛이 간헐적으로 점멸했다. 그때마다 회색탑은 피의 분수대처럼 음산해졌다.
탑의 입구가 여 보란 듯이 열려있었다. 안쪽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빵이 무대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덮으며 산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공터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차례로 원을 그리며 앉았다. 중고등학생들이 일일이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그들이 가리킨 자리에 앉으면 빵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두 손에 빵을 꼭 쥔 채 다음 안내를 위해 옆으로 옮겨가는 중고등학생들의 빵 봉투를 보았다. 봉투에서 빵이 계속 나오는 게 신기했다.
원은 겹겹이 작아져서 무대와 20미터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첫 번째 원에 앉은 아이들 중 일부는 지미의 실물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지미는 작고 건강했다. 고급스러운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고, 신발도 새 것이었다. 하늘에서 보던 것보다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위압감도 느껴졌는데, 손짓 몇 번으로 성인들을 움직이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8번과 32번이 특별히 가까운 사이인 듯 보였다. 지미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두 사람이 다른 동료들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동료들은 고등학생 여섯 명을 끌고 가더니 복면을 씌운 여섯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들은 무대 위에 무릎이 꿇린 채 앉혀졌다. 두 팔이 뒤로 결박되어 있었다. 한눈에도 열두 살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무대를 둘러앉은 열두 살들이 긴장한 얼굴로 빵을 움켜쥐었다. 먹는 속도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지미가 무대 위로 올랐다.
“빵이 맛있어?”
하늘 위의 그의 얼굴이 열두 살들을 굽어보았다. 열두 살들은 건성으로 호응하며 저마다 빵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입안에 밀어 넣거나, 가장 더러운 신체 부위 안에 구겨 넣거나.
“걱정 마. 빵은 아직 많아!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씩은 더 먹을 수 있어!”
그제야 아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지미에게 집중했다. 하늘을 보는 아이도 있고, 무대를 보는 아이도 있었다.
“딱 하나씩만 더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은 낮게 신음했다.
“어쩌면 두 개?”
기대감에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거렸다.
“그보다 많이 먹을 수도 있겠지. 나눠 먹을 사람이 줄어든다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기마저 멈춘 것 같았다. 지미만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선택의 시간이야.”
천사 같던 얼굴이 악마로 보이는 건 한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