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광장에 꽃가루가 날렸다. 현수막이 내걸리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무리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대열을 따라 끝까지 따라가보면 하얀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문 너머로도 사람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옷소매로 눈물을 찍는 사람, 몽둥이를 움켜쥔 사람.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발간 얼굴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사람. 저마다 표정도 행동도 달랐다. 성별도 나이도 달랐다. 모두가 성인이라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인간 성체네.”
동철이 꽃받침을 하고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옆에서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던 석조가 동철의 작은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저승 용어 쓰지 마. 성체가 뭐야. 마물이야?”
“그럼 뭐라고 해?”
“성인.”
“되게 성스럽게 느껴지는 말이다. 우리가 그런 말을 써도 되나?”
석조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쪽 눈을 떴다. 오늘 따라 유난히 밝은 저승의 하늘이 석조의 눈을 찌를 듯 파고들었다.
“넌 대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노예?”
“게다가 내가 말한 성인은 그 성인도 아니야.”
“나도 알아.”
“다행이네. 난 또 한국말 수준도 퇴화한 줄.”
“우씨.”
동철이 통통한 볼살을 부풀리며 석조를 흘겨봤다.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나도 알아.”
“알면 좀 공손히 해. 장우유서 몰라?”
“장유유서.”
“발음이 새는 건 신체적 제약 때문이야!”
“조용히 좀 해.”
동철이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아침부터 저기압이던 장미는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더 무시무시해지고 있었다. 동철은 크게 혼이 난 아이처럼 침울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느 사이 일어난 석조가 동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동철이 왈칵하여 그의 품으로 파고들자 석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동철의 작은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래서 애들이란.”
“…… 신체적 데약 때문이야.”
“제약.”
“우씨…….”
석조는 장미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언제나 담담하기만 한 얼굴이 소리 없이 분노하고 있었다.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날 정도는 되어야지 이마를 한껏 구기고 허공을 노려보던 사람이 쉼 없이 눈을 굴리며 얼굴 근육을 파들 파들 떨어대는 걸 보자니 기분이 복잡했다. 이제야 좀 인간미가 느껴진다 싶다가도 얼마나 싫은 일이기에 저러나 싶어지는 것이다.
관리자가 대뜸 ‘행사를 준비하라’고 통보한 데 이어 ‘보이지 않는 곳에 찌그러져 있어!’라고 명령할 때까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장미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들이 부당한 일을 당한 것만은 확실했다. 장미는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특히 못 견뎌했으니까. 갑자기 생긴 야근만큼이나 분개하며 싸울 각오를 했다. 그것이 야근 연장의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멈추지 못했다.
“이제 좀 알려주지?”
석조가 말을 걸자 장미는 눈으로만 흘긋 돌아보았다.
“뭔지 알아야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든, 선배 너처럼 열을 내든 할 거 아니야. 혼자 꽁해서 무게 잡고 있는 거 옆에 있는 사람은 되게 거슬리고 불편하거든.”
이어 눈썹을 불량하게 씰룩거렸는데, 탐탁지 않을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장미는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마중 행사.”
“그게 뭔데?”
“보면 알잖아.”
석조는 목젖을 치며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삼켰다.
“그래, 어디 함 보자. 봐.”
그는 엉덩이를 끌며 장미의 바로 옆으로 옮겨 앉았다. 동철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의 허벅다리 위에 잽싸게 올라앉았다.
미화부 직원들이 나란히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문에서 저승의 입구까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감독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 찌그러져있으라고 한 말은 저들과 섞이지 않게 하라는 뜻일 터다. 흰색을 성스럽게 여기는 이들 앞에 그들의 작업복은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으니 알아서 눈에 띄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흰 옷의 사람들은 세 명씩 줄을 맞춰서 서 있었는데, 그 줄이 워낙 긴데다 장애물을 피하느라 구부러지기까지 하여 멀리서 보면 거대한 흰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튼 것처럼 보였다.
“저 많은 천국 사람들이 왜 저승으로……”
석조의 말을 끊으며 난데없이 폭죽이 쏘아졌다. 광장의 하늘 위에서 꽃가루가 팔랑팔랑 떨어졌다. 천국의 사람들이 일시에 환호했다. 저승의 대지가 흔들릴 만큼 격정적인 반응이었다. 이어 둔탁한 쇳소리가 절도 있게 세 차례 울리더니 저승 문이 육중한 신음 소리를 내며 개방됐다. 선두에 서 있던 세 명의 천국 사람들 앞에 망자 세 명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숨을 집어 삼켰다. 한 쌍은 주저앉고 한 쌍은 얼싸 안았다.
“아이고. 네가 진짜 여길 왔구나.”
“어, 어머니, 어머니가 어찌 여기에…… 이, 일단 절이라도……”
“아서라. 네 나이가 벌써 구십이다.”
“아…… 하하. 맞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느 세월에 구순이 되어 세상을…… 흡.”
“엄마, 엄마! 진짜 엄마 맞아?”
“왜 이렇게 고생을 했어! 몰골이 이게 뭐야? 엄마가 다 봤다! 네 새끼들이 내 새끼 피 말리는 거 내가 다 봤어!”
“아냐 엄마 나 괜찮아. 진짜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졌어. 엄마 보니까 너무 좋다. 잠깐인 거 알지만 너무 좋아. 엄마…… 난 엄마가 천국에 가 있을 줄 알았어. 거기서 편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좋다.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훌쩍거리는 소리가 합창으로 이어졌다. 그 속에서 마지막 한 쌍만이 대치하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백 년 가까운 시간을 살면서도 이런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등 뒤로 땀이 쪽 흘렀다. 죽은 자도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망자는 애써 웃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아버지, 건강해 보이시네요.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입……”
“네 이놈!”
남자의 고함이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일순 광장의 밝기가 불규칙해지고, 새까만 먼지 바람이 줄 선 사람들 사이를 할퀴듯 지나갔다. 한(恨) 이었다. 십수 년을 삭여온 한마디가 비로소 터져 나온 것이었다. 살면서 가장 혈기왕성하던 때의 외양을 선택한 것도 오늘을 위해서였을 터였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백 세가 다 되어가는 망자 앞에서 태산처럼 커다래 보였다.
남자의 손에는 절굿공이가 들려있었다. 반대편 손은 뒤쪽으로 뻗어있었는데, 뒷사람과 손을 잡고 있었다. 남자가 손에 힘을 싣자 뒷사람이 주춤주춤 그의 옆으로 나와 섰다. 그는 남자보다 예닐곱 살 많아 보였다. 새까맣고 숱 많은 파마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하얀 색 치마 정장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다.
망자가 그를 보고 놀라서 주저앉았다. 망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만도 괴로웠는지 비스듬히 선 채로 신발코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남자의 화를 돋우었다.
“네 놈이 네 어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내가 똑똑히 보았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오늘을 기다렸는지 너는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 지금부터 네 머릿속엔 지옥불의 고통만이 들어찰 테니까!”
남자가 절굿공이를 크게 휘둘렀다. 늙은 망자의 머리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핏물이 덩어리째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장미가 주먹 쥔 두 손을 떨며 숨을 몰아쉬었다.
“저…… 저……”
분노에 찬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걸 다 누가 치우라고.”
잇새로 짓이겨져 나오는 말소리에 살기가 묻어났다.
“아.”
석조는 비로소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저거 우리가 다 치워야 하는 거야?”
동철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말해 줘.”
하지만 장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석조와 동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