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숙소로 가는 오솔길 초입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석조가 감독관을 닦달하여 얻어 낸 나무로 직접 자르고 다듬어가며 만든 것이었다. 광장에 나가기 전 당장 쓰지 않는 청소도구를 두고 가거나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일하다가 말고 와서 잠시 앉아있곤 했다.
대체로는 석조가 낮잠을 자는 용도로 쓰였다. 광장이 보여서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데다가 마물은 접근할 수 없는 오솔길 안에 있어서 방해받지 않아도 되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보다 좋은 장소도 없었다. 석조가 양보해 준 덕에 장미는 아이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석조와 동철이 광장 입구에서 이쪽을 계속 기웃거리고 있었다. 지옥에서 왔다고 하니 아이의 존재가 계속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장미를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정작 장미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미안. 애들이 좀 철이 없어.”
아이는 웃었다. “내 이름은 주아야”,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때처럼 수줍어하며. 태어나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널 알아. 지옥에서 너희 핫하거든.”
“나도 알아. 면담하는 거 봤거든.”
“봤어?”
주아가 뺨을 붉히고 부끄러워했다.
“그때는 나도 어려서 패기만 넘쳤어. 아는 것도 없어서 무서운 것도 없고……”
주아가 쩔쩔매며 말했다. 그런 주아의 모습이 귀여워서 장미는 자꾸 웃음이 났다. 장미는 속삭이듯이 물었다.
“만났어?”
주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더라.”
“죽……였어?”
“질릴 만큼.”
장미는 그 이상 묻지 못했다. 죽어서 지옥에 온 자신의 엄마를 질릴 만큼 죽이는 기분 같은 것을 입에 올려도 되는 건지. 지금의 대화가 어렵기만 했다. 주아가 먼저 말했다.
“별거 없더라. 살려달라고 빌기나 하고.”
“……그랬구나.”
“그 얼굴을 자꾸 보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나도 저랬었나 싶고, 그럼 저게 내 얼굴이었겠구나 싶고. 일찍 죽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어. 나이를 먹었는데 진짜 그 여자 얼굴이 되었으면 어떡해.”
“넌 안 그랬을 거야. 절대.”
장미가 단호하게 말하며 주아의 손을 꼭 잡았다. 주아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나한테 그렇게 말해준 사람도 네가 처음이야.”
“또 만나면 또 들려줄 거야. 만날 때마다 내가 얘기해 줄 수 있어.”
“고마워. 그것도 네가 처음이야.”
장미가 피식 웃었다.
“근데 너 말 되게 많이 늘었다.”
“그치? 그 여자가 오기 전까지 엄청 연습했거든. 죽는 날까지 몇 년을 기다려서 만나는 건데 하고 싶은 말 못하면 억울하잖아. 나 진짜 열심히 노력했어. 지옥에선 나만큼 말 잘하는 사람도 없어.”
주아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장미의 귀에 손을 대고 작게 속삭였다.
“마물은 멍청하고, 악마는 욕 밖에 안 하고, 망자들은 울거나 빌거나 악쓰는 게 전부니까.”
“네가 제일이네.”
“맞아. 내가 제일 잘해.”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대며 쿡쿡 웃었다.
장미가 귀에 닿았던 주아의 손을 잡아내렸다. 손등에 검은 얼룩을 보게 된 건 그때였다. 손목과 팔 안쪽에도 같은 자국이 있었다. 장미는 익숙한 악취를 맡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저승에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주아가 흐리게 웃으며 팔을 거뒀다.
“4번한테 들었는데 나는 이제 마물이 될 거래. 환생은 물 건너 갔고, 악마는 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대. 내가 품었던 악의에 오염돼서 인간성을 잃었다나 봐.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법도 잊게 되고, 생각 능력이 떨어지면 몸도 망가진대. 손발 모두 달린 마물이 되었다가 두 발만 남은 마물이 되었다가…… 그렇게 몸을 잃고, 형체를 잃어서 결국 악이었던 찌꺼기가 될 거래. 먼지처럼 아주 작아지는. 그때 되면 네가 나를 청소할 거야. 이 지저분한 쓰레기들! 하면서 청소기로 막 빨아들이겠지?”
주아는 장난치듯 말했다. 장미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다시 태어날 순 없어?”
“아마도?”
“아…….”
“간단한 거야. 악한 짓을 했으면 대가를 치르는 거지. 후회는 없어.”
주아의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장미는 괜히 그에 박자를 맞춰보았다. 주아가 장미 쪽으로 얼굴을 기울이더니 비밀처럼 속삭였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긴 했대”
“너 같은 사람?”
“응. 지옥으로 오긴 왔는데 벌받으러 온 건 아닌 사람. 아니다 좀 특별한 벌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은 어떻게 됐대?”
“악마를 잡아먹었대.”
“뭐?”
“처음엔 마물 찌꺼기를 주워 먹다가 말 못하는 마물을 잡아먹다가 말하고 움직이는 악마를 산 채로 씹어 먹었대. 매일매일 먹었대. 악마가 겁을 먹고 피해 다닐 정도로 닥치는 대로 먹었대.”
“어떻게 그런……”
“그치? 신기하지? 악마가 아니었는데 지옥에 와서 악마보다 더한 악마가 되어버린 거야. 결국 불가마의 주인이 되었다지.”
불가마. 지옥에서 가장 지독한 형벌. 태초의 지옥이 품고 있던 심장 같은 곳.
“근데 나는 그 사람처럼 할 자신이 없어.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순리를 따르고 싶어. 이제껏 계속 거슬러오기만 했으니까.”
주아가 발을 통통 흔들며 말했다. 장미를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자고. 주아의 손가락을 슬며시 잡으며 고백하듯 속삭였다.
“주아야.”
“응.”
“주아야.”
“응?”
“주아야.”
“뭐야.”
주아가 쿡쿡 웃었다. 이번에는 장미도 마주 웃어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