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저세상 미화원]
저승문이 열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닥쳤다.
“으앗!”
기껏 모아둔 마물 찌꺼기가 날아가서 석조도 동철도 허둥거리며 붙들어야 했다. 문지기도 없이 저승문이 열리다니? 당황하느라 사태를 확인해 볼 새도 없었다. 바람이 잠잠해지며 구두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또각. 또각.
저승이 통째로 울리는 소리에 미화원들은 악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람과 함께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안개가 걷히면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부츠에 검은 바지, 중세풍의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검푸른 색이었다. 반묶음 하여 높이 묶었는데,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무표정으로 걸어오던 여자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여자는 미화원들과 차례로 눈을 맞췄다. 그러곤 말했다.
“뭐야? 이 어린 것들은.”
나른하고 무심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장미는 바로 알아차렸다. 여자에게서 풍겨나는 위압감은 망자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와도, 천사와도 달랐다.
석조와 동철이 장미의 곁으로 달려와 바짝 붙어 섰다. 그들 또한 위기감을 감지했을 것이다. 졸지에 3 대 1 대치 구도가 되었지만, 여자는 그런 데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미화원의 존재 자체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너희 사람이야?”
미화원들은 움찔했다. 목소리에 불이 붙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저희는……”
“미화원입니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미화원과 여자 사이에 검은 안개가 솟구쳤다.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안개가 빠르게 사람의 형태를 갖춰가며 말했다.
“여기도 환경 미화가 중요해져서요. 청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답니다. 이들은 새로 뽑은 미화원이에요. 일을 아주 잘하죠?”
악마였다. 뒷모습만 봐도 높은 서열이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눈도 깜짝 안 했다.
“사람이야?”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듯이.
악마는 빙긋이 웃었다.
“저승은 망자들의 세상이죠.”
“망자들은 갈 길이 정해져 있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면 저승 바닥에서 돌아다닐 이유가 없지.”
여자가 악마를 옆으로 밀치고 아이들을 다시 보려고 했다. 악마가 곧장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언뜻 보인 악마의 얼굴에 아이들은 놀랐다. 5번이었다. 그렇게 높은 숫자를 석조와 동철은 본 적이 없었다. 장미는 두 사람보다 더 놀랐는데, 그가 바로 장미가 알던 6번이었기 때문이다.
‘6번이, 그 6번이……’
여자를 상대로 쩔쩔매고 있었다.
“합당한 절차를 통해 뽑힌 아이들입니다. 위에서도 허락한 일이고요.”
“지천의 짓이군.”
악마는 묵묵히 미소만 띄웠다.
“이 개자식이 또 일을 벌였어.”
“왜 또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하십니까. 아이들은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이들이 말해줬습니다.”
“얘들이 그럼 네 얼굴 보고 여기 너무 끔찍해요, 악마들을 매일 보려니까 토할 것 같아요, 그래? 너는 거울을 안 봐?”
“…… 오랜만에 오셔서 왜 이리 차가우시지.”
“비켜. 태워버리기 전에.”
“화신님, 아시겠지만 이곳은 전투 불가 지역으로 개인의 힘을 그렇게……”
순간 여자의 등 뒤로 거대한 불덩이가 떠오르더니 지옥문 앞까지 단숨에 내질렀다.
“아뜨!”
5번이 기겁을 하여 비켜섰다. 그제야 화신은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화신의 눈에는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너희가 말해. 여기가 좋아? 편해?”
공격적인 말투였다. 석조가 반사적으로 장미의 앞을 막아섰다. 동철이 그런 석조의 앞을 막아섰다. 화신은 어이가 없었다. 장미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두 사람을 제 등 뒤로 끌어놓고 맨 앞으로 나섰다. 장미는 또박또박 말했다.
“좋아요. 편한 것 같아요.”
“같아요는 뭐야?”
“저희는 미화원이에요. 청소하는 사람들이요. 언니는 일이 편해서 해요?”
“아니?”
화신은 정색하고 즉답했다.
“완전 그지 같지. 난 일하는 게 제일 싫어.”
화신이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몸에서 풍기던 열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저승의 원래 공기가 돌아오고, 아이들도 마물들도 숨통이 확 트였다. 화신만이 덤덤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석조와 동철에게도 번갈아 물었다.
“너희는? 너희도 같은 생각이야?”
“네. 장미 생각이 곧 저희 생각이에요.”
“우리 일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거든요?”
동철이 토실한 배를 들이밀며 말했다. 화신이 피식 웃으며 동철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그래. 아-주 똑똑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이어 그녀는 뒷주머니에서 얇고 네모난 케이스를 꺼냈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속세의 물건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화신이 멋쩍게 말했다.
“아. 요즘 우리 쪽은 레트로가 유행이라.”
“저승에서도 안 없어져요?”
“나도 실험 중이야. 며칠이나 형태가 유지되나. 오래 간다면 하나 구해다 줄게.”
“우와.”
“이딴 게 뭐 별거라고.”
화신은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케이스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장미에게 주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찾아와. 악마 놈들이 부당한 짓을 해도 찾아오고.”
“에이 저희는 그런 짓 하지 않습니다.”
“네 놈들 의견은 필요 없어.”
화신은 다시 아이들을 보았다. 악마를 대할 때와 아이들을 대할 때가 눈빛부터 달랐다.
“이걸 보여주면 누구도 네 앞길을 막지 못할 거다. 그래도 내게 오는 길이 여의치 않다면 명함을 찢고 주문을 외워. 그럼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될 거야.”
“주문이요?”
“아이 씨발 좆같네.”
“……예?”
5번이 펄쩍 뛰며 장미의 귀를 막았다.
“화신님! 지금 애들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욕 좀 했다고 나를 까는 거야? 악마 새끼가?”
“아니요, 아니, 아. 미치겠네!”
화신은 5번의 이마를 밀어서 멀찍이 떨어뜨렸다. 장미에게 명함을 쥐여주며 신신당부했다.
“주문을 외울 때는 진심을 담아서, 아주 크게 외쳐야 한단다. 알았지?”
“……네.”
장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았다. 화신이 웃으며 장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석조와 동철의 머리도 공평하게 한 번씩 만져준 뒤 몸을 일으켜 5번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앞장 서라. 간만에 네 놈들 추잡한 얼굴 좀 보자.”
5번이 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 진짜. 저도 이제 5번이란 말입니다. 이런 짓 좀 말아주세요.”
“다리 두 개 생겼다고 좋아하던 찌끄러기가 뭐라는 거야? 억울하면 나보다 강해지던가.”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내가 씹어 먹는 5번이 몇 마리나 될 것 같냐.”
“하이 씨……”
“욕했냐?”
“영어 연습 한 건데요? 하이. 씨유 어게인. 저희도 이제 글로벌하게 갈 거라서요.”
“지옥의 미래도 캄캄하다.”
아이들은 멀어지는 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옥도, 악마도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 보다.”
동철이 말했다.
“누구?”
“불가마 주인.”
“아…….”
주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지옥에 고용된 노예들은 악의에 오염되어 마물로 퇴화하다가 결국 찌꺼기로 사라지게 되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 있었다고.
악마를 닥치는 대로 잡아 먹고, 악마보다 더한 악마가 되어서 지옥의 심장인 불가마까지 차지하고 앉았다던 인간.
장미는 손에 쥔 명함을 내려다봤다. 새까만 종이 위에 피처럼 붉은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악몽 관리국.
국장.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