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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08. 2022

버려야 한다는 강박


블로그에 '버리는 삶'이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분명 제주도로 이사 올 때 싹 정리하고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이사온지 몇 개월이 지나니 물건이 점점 증식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시 물건에 치여서 살고 있다. 그래서 정리 모드에 돌입했다. 나에게는 '언젠가는 쓰겠지'라고 남겨둔 물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매일 매의 눈으로 집안 곳곳을 훑고 다녔다.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버려가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3월 한 달 버린 것들




지난 3월 한 달 내내 버린 것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버린 물건의 개수가 적었다. 아직 한 두 가지 정말 버리지 못하는 것 빼고는 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다가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버릴 것이 없나?' 하고 찾아보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라고는 아이가 그린 그림 3점 정도이다(물론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집안 곳곳 물건이 차고 넘치고 있다. 물건이 증식하는 데는 사실 숨은 범인이 바로 아이와 나다. 우리는 겨우 세 식구가 사는데 남편 빼고 나랑 아이는 물건 사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사실 남편이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굉장히 자주 편의점을 가는 마니아다. 다행히도 그것은 먹으면 사라지고야 마는 것들이니 구매해도 물건이 쌓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요즘 미니멀을 지향하며 물건을 사는 것을 어느 정도 자제하는 편인데, 아이는 새로운 것을 보면 갖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엄마의 그 딸이다. 아이는 20년 전의 나를 너무도 닮았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욕구가 더한 것 같다. 그 말인즉슨, 아이가 앞으로 물건에 집착할 시간은 족히 2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원래 기념품 샵에 가도 매번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지나치는 아이가 안쓰러워 한 두 번 사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제는 제주에 살면서 매주 가게 되는 뮤지엄이나 관광지에 갔을 때 마지막에 있는 기념품 샵 꼭 물건을 사고 싶어 한다. 못 이기는 척 몇 번 사주고는 했는데 최근에 아이가 잦은 물건 구매로 인해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 대한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자제시키는 중이긴 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아빠랑 단 둘이 보낸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인형을 사 왔다. 나는 들고 온 토끼 인형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미술관에서도 인형을 샀다고? 왜냐하면 이주 전에 친구와 함께 해양박물관에 갔는데, 그때도 인형을 샀기 때문이다. 그날 인형을 사면서 이제 제주에서는 더 이상 인형을 사는 것은  안 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약속까지 했다. 그날이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아이니까 내가 많이 양보해서 세 달 정도 흘렀으면 인형을 산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넘지 지나지 않고 또 인형을 샀다는 것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인형은 비싸기도 했다. 참고로 주 전 아이가 산 인형은 26000원, 이번에 산 토끼 인형은 크기도 작은데 15000원이나 했다. 분명 지하상가 같은 곳을 가면 5천 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분명하다(아까워...). 집에 돌아온 아빠와 아이는 나의 눈치를 보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안 사려고 했는데, 점원이 예쁘지? 이거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하면서 구매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아... 그곳에 둘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도 못한 결과를 들고 왔다.




토끼 인형까지 집에 온 순간, 집에 있는 모든 인형들이 짐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집에 있는 보관함에는 인형이 차고 넘치고 있다. 아무렴 아이니까 인형을 좋아하는 것은 이해한다. 나도 어릴 적 인형을 참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인형도 종류가 많아지니 이전에 산 것들은 잊혀 가지고 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이 1명이 가지고 있는 인형들







사실 나도 할 말 없다. 그동안 제주에 와서 기념품으로 엽서를 샀다. 무민뮤지엄에 가서도 엽서, 왈종미술관에 가서도 엽서, 본태박물관에서도 엽서를 샀다. 엽서는 크기도 크지 않고, 저렴하고,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으니까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종종 나에게 엽서를 선물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생각나서 샀다며 건네주는 엽서가 너무 좋았다. 처음엔 나도 그녀를 위해 엽서를 산 것이었다. 그것은 금세 습관이 되었다(친구 핑계ㅎㅎㅎ) 친구에게 보낼 엽서 말고도 계속 사는 엽서가 늘어났다. 자꾸만 쌓이는 엽서를 보며 이것들도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그 엽서들은 쌓아놓지 않고 집안 곳곳에 붙여두었다. 이렇게 엽서를 모으다가는 더 이상 집에 엽서를 붙여둘 빈 공간의 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곳곳 엽서와 받은 카드를 붙여두었다




그래서 그 엽서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 생각이 나서 산 엽서는 이번에 그 친구 생일카드로 보냈고, 부모님께 안부 엽서도 보내드렸다. 그동안 내가 산 엽서는 당분간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배달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엽서와 이별을 선언한다. 왠지 이 정도는 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틈만 나면 물건 버리기를 시전 중이다. 그러나 집안 곳곳 붙여진 엽서를 보며, 보관함을 차고 넘치는 인형을 보며 깨달았다.  집안을 돌며 버릴 물건을 찾는 것보다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먼저라는 너무 뻔한 진리! 앞으로는 엽서와 기념품은 굿바이다. 제발 사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자!







메인사진 출처 : https://pin.it/2C2xk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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