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하는 것은 정말 고민된다. 그 사람에게 알맞은 선물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받고 싶을 만한 것을 선물하고는 하는데, 이것은 분명 내게 마음에 쏙 드는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도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선물할 때마다 들곤 한다. 그래서 점점 더 선물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솔직히 요즘은 선물은 주고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원래 처음부터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20대 해외여행에 푹 빠져있었을 때는 일 년에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곳마다 선물을 구매했다. 넉넉하게 구매해서 여행 후 다녀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다 나눠줬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 행동을 멈춰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거 준다고 누가 좋아할까?' 게다가 나는 주기만 하고 받는 선물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솔직히 누가 달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오랜 시간을 혼자 선물을 퍼주고는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30대가 되면서는 선물을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두자'
그러다 지난번 서울에 다녀오며 그냥 갈까 하다가 면세점에서 초콜릿 몇 개를 사들고 갔다(왜 제주에 다녀오면 한라봉 초콜릿 이런 것 선물하지 않나) 그러나 꼭 주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줄 수 없었다. 사정이 생겨 못 만나게 돼 거나, 혹은 갑자기 만난 것이라 초콜릿을 챙겨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선물로 산 초콜릿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 채 제주로 돌아왔다. 다음부터는 선물을 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봉 초콜릿을 선물로 받으면 좋을까?
제주여행을 온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의 특징은 얼굴을 볼 때마다, 무슨 날이 아니어도 늘 선물을 들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늘 완벽한 선물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정말 내가 딱 필요한 것으로만 해주기 때문이다. 친구가 선물하는 것을 보면 20대 때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당연히 나만 주는 것 같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다 선물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필요한 것만 주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이다.
그렇게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 꽤 많았다. 신기하게도 내게 헤어 에센스가 필요하면 그 선물을 준비하고, 커피 캡슐이 떨어지면 커피를 선물로 주고, 사용하거나 갖고 싶었던 것들, 특히 지난번엔 페이스 필링젤까지 선물로 줬는데 마침 써보고 싶었던 제품이었다. 암튼 내가 꼭 원하는 선물을 주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때때로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 친구는 대체 선물 센스가 이렇게 탁월한 걸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친구는 올해는 자주 만날 수 없어서 그런지 선물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아니, 만나서 주는 선물도 많으면서 택배까지 보냈지? 생각했다. 지난번 우리 아이가 입다 작아진 아우터, 원피스 등의 옷을 보내준 것에 대한 보답의 선물이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엔 물려받는 옷이 정말 많지만 때때로 새로 사서 입었던, 선물 받았던 옷들이 있는데, 그런 깨끗하고 예쁜 것으로만 골라 선별해 친구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다. 다행히도 친구도 좋아하며 기꺼이 받아준다. 요즘 나는 친구에게 선물 대신 육아용품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당연히 아이 선물을 사줄 때도 있다).
친구가 보낸 선물 택배에는 내가 마시는 커피머신의 캡슐이 가득 들어있었다. 물려준 옷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친구가 보내준 캡슐커피의 양을 정말 넉넉 보내 줬기 때문에 매번 집에서 내려마시는데도 여전히 많은 양이 남아있다. 두둑하게 쟁여둔 커피 캡슐을 볼 때마다 마음이 풍족해진다. 커피, 차를 좋아하는 나라서 커피, 차 선물은 언제든 환영이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선물이 어딨을까!
그런 친구가 제주에 여행을 온다고 했다. 작년에는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갔는데 이번에는 나에게도 사정이 있고, 친구에게도 지인과의 만남이 있어서 잠깐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워낙 친한 친구라 얼굴이 보고 싶어서 두 시간 정도의 만남을 약속으로 잡았다.
제주 여행 온 친구에게 선물로 보답하고 싶었다. 다른 선물은 짐이 될 것 같아 아이 선물을 사기로 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인형을 구매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아이가 안고 다녀도 그렇게 짐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적당할 것 같았다. 특히 아이 어릴 때는 인형도 다 새로 사야 해서 인형이 몇 개 없었던 시절도 있기 때문에 괜찮은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다른 예쁜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지만 여행 온 입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피 큰 장난감을 들고 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거기에 겨울이 되며 또 작아진 아이 옷을 몇 개를 챙겨서 가지고 나갔다.
그렇게 제주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 부부와 아이가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의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친구가 들고 오는 기저귀 가방에는 짐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다른 짐들도 들고 있었다. 아이를 챙기라고 그 가방과 짐을 들어주려고 하니 "이거 네 선물이야! 받아~"하고 건네준다. 갑작스럽게 받은 쇼핑백에는 나에게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뭐???!!! 제주까지 오면서 내 선물을 챙겨 왔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2시간이 흘렀다. 친구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갔다. 나는 집에 와서 친구가 준 쇼핑백을 열어봤다. 쇼핑백에는 아이의 선물과 커피 드립백, 마스크 팩 등이 들어 있었다.
친구는 작년에 제주에 놀러 오며 우리 아이 선물을 못 사줬다고 미안해했다.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그동안 마셔보고 싶었던 카페의 커피 드립백이 들어있었다. 꽤 유명한 카페의 드립백인데 궁금해했던 커피였다. 와.. 신난다! 정말 나의 취향을 확실히 고려한 선물이다.
사실 생각지 못한 선물은 마스크팩이었다. 선물로 마스크팩이라고??? 이것은 선물로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다르다. 나는 피부관리를 받으러 가는 대신 종종 마스크팩을 붙여 얼굴을 관리한다. 심지어 마스크팩을 가리지도 않고 아무 브랜드 것도 잘만 쓴다. 마침 사놓은 마스크팩이 거의 떨어져 가서 사야 할 참이었다. 어쩜... 이 친구는 선물을 이렇게 딱 맞춤하게 사 왔지?
친구의 선물 센스는 이번에도 엄청났다.
사실 고백하건대 앞에 쓴 글의 선물을 받아서 좋아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선물 받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연히 선물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일까 봐,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필요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되기 때문에(뭐 이런 걱정을...) 차라리 선물을 받지 않는 편을 더 선호한다.
20대의 나에겐 선물 센스가 없었던 것 같다. 여행을 갔다가 그 나라에서 유명한 것들만 사 오곤 했으니 그게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경우보다는 거의 '기념품'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 환영받지 못할 만도 했고, 매번 가는 여행에서 선물을 사는 것도 어느새 지쳤던 것 같다. 그러다 30대의 나는 선물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탐탁지 않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러나 친구는 20대에도, 30대에서 어쩜 내가 좋아하는 선물만 해준다. 이런 선물 센스를 타고나기도 힘들 것이다. 나는 친구가 선물로 준 물건을 사용할 때 그 친구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꼭 고맙다는 연락을 한번 더 한다. 그것은 진심으로 필요한 선물을 줘서 고맙다는 연락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선물은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편이고 아주 열심히, 잘 사용한다. 특히 친구가 나를 생각해서 샀다는 선물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나는 무슨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았으면 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대체 선물 주는 센스는 어디서 배워야 할까? 우연히 친구가 준 선물이 나의 취향에 맞았던 걸까? 나는 이제 그 친구에게 선물 잘하는 센스를 물어봐야 하는 걸까?
나도 친구들에게 센스 있는 선물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선물을 쓰는 내내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마음은 진짜 욕심일 것 같다. 다만 정말로 센스 있는 선물을 하는 사람은 되고 싶다. 아... 정말 어렵다 선물을 주고받는 일, 친구의 취향을 딱 맞는 선물을 전해주는 일. 앞으로 열심히 고민해봐야 할 과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