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두 번째 겨울

폭설

by Blair

올해 제주의 첫눈이 내렸다. 첫눈 단어만으로도 이렇게 설렐 수 있다니, 아니 사실 이 설렘은 10년 전까지의 설렘이다. 지금의 나는 눈이 그렇게 반갑지만 않다.



첫눈이 내리던 순간은 오전 아이의 등원길이었다. "우와 눈이 내리네!! " 하고 밝은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이한테 티는 못 내고 불안한 마음이 역력했다. 눈이 꽤 많이 내리는데 이렇게 계속 내리면 집에 어떻게 돌아가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차 안에서 눈을 바라본 아이는 신이 났다. "눈이다!!!" 하며 발을 흔들어 댄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눈이 오는 것을 맘껏 즐거워하는 아이가 부러웠다. 나도 눈이 오는 걸 좋아할 때가 있었지...



제주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뉴스에서는 제주도에 50cm의 눈이 내릴 거라고 예보했다. 금요일 오전 눈이 조금 오더니 그치고, 토요일 아침 내내 꾸물거리더니 오후부터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치고 내리 고를 조금씩 반복해서 눈이 쌓일락 말락 했다. 문제는 저녁이 되자 눈보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세졌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집 앞에 놓인 빗자루도 의자도 저 멀리 날아가 떨어져 있었다.



앞 집에서 놀다 온 아이가 돌아오는 길, 휘청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바람에 날아가는 줄 알았다. 맘카페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날씨로 인해 비행기도 모두 결항이라고 했다. 지난번 태풍이 올 때보다 창문이 더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눈바람이 얼마나 지독하던지...



대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설경을 만났다. 눈이 눈 덕분에 환해지는 기분이다.



앞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 문을 두드린다. "빨리 나와~ 놀자!" 아이는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는데 언니들 부름에 금세 밖으로 뛰어나간다. 종일 눈이 내리고 그치길 반복한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탄다. 눈이 중간마다 펑펑 내린다. 아이들은 더 신나게 눈 놀이를 한다.



낭만 넘치는 올해의 첫눈을 맞이했다. 다시 제주에서










겨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다. 지난주의 첫눈은 눈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기간 제주에는 폭설이 내렸다. 제주 2년 차는 이렇게 많이 오는 눈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제주도가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곳이었어?



날씨는 이미 목요일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이동하는데 하늘에서 눈이 비처럼 내렸다. 처음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건지, 눈이 내리는 건지 그러나 하루종일 어마무시하게 내렸다.



그 와중에 엄마인 나는 금요일 산타행사가 어떻게 되려나 걱정했다. 아이가 일 년을 기다려 산타를 만나는 날인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네는 눈이 오면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내일 등원을 하지 못하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걱정을 하며 종일 내렸다 그쳤다 하는 눈을 감시했다.



하원시간이 되었다. 아이가 선물을 가지고 나온다. 다행히도 하루 먼저 산타행사가 치러졌다. 그런데 선물을 받은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니었고 원장님이었다며 시무룩하다. 원장님도 눈이 많이 와서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였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집으로 돌아왔다. 더 많은 눈이 쌓였으면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차에서 내렸는데 눈이 제법 쌓여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린 눈으로 휴원이 결정되었다. 요가 수업도 휴강이다. 그리고 우린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바깥은 온통 겨울왕국이다. 우리야 집에만 있으면 되지만 제주가 온통 난리였다. 금요일 출퇴근,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오는 사람, 특히 제주도로 여행온 사람들은 비행기가 전체결항이라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주말은 꼼짝없이 집에서만 지냈다. 그러나 평화로웠다.





정원 가득 쌓인 눈








제주의 주택 집에 살게 되며 눈이 오는 것은 풍경이 너무 예뻐 황홀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처럼 밖으로 나가도 되지 않는 날에는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 좋고 특히 정원 가득 소복하게 쌓인 눈은 정말 아름답다. 특히 눈이 많이 왔다고 집 앞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진다.



작년과 올해 제주에서 폭설을 만났다. 제주가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곳인지는 몰라서 당황스러웠지만, 창을 통해 펑펑 내리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눈으로 설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한라산은 정말 매력적이다. 겨울 제주도 여행의 백미는 한라산 눈꽃트레킹이라고 하던데 제주에 살 때 꼭 한번 눈 쌓인 한라산에 올라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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