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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14. 2023

이 계절에 먹어야 할 맛!

어묵


이사로 인해 아이의 어린이집을 지하철로  정거장 거리를 3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의 시작부터 끝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이었다. 여태껏 다니던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겨가면 좋을 시기라, 조금 멀었지만 이제 와서 3개월을 다니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도 마땅치 않아 다니던 곳을 쭈욱 다니게 되었다.


 

아침에는 차를 끌고 그 거리를 오갔다. 지하철 3 정거장의 거리라 10정도, 환승해도 15분 정도면 갈 거리인데... 자동차로는 30~40분이 넘게 걸렸다. 하필 그 시간 자동차로 갈 때 지옥의 출근길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하철 6 정거장 거리가 자동차로 1시간~1시간 반이 넘게 소요되었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계속 자동차로 어린이집 등하원을 반복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자 하루 왕복 4차례의 운전이 지쳐버리는 바람에, 아이를 바래다주는 길에는 자동차를 이용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아이를 데리러 가고 함께 자동차로 귀가했다. 다행히도 아이 하원 후 집으로 가는 길엔 차가 막히지 않아 수월했다.



11월... 계속 이렇게 흐릴  같이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게다가 빈속으로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배가 몹시 고파왔다. 그래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게 되었는데 바로 지하철역상가로 가서 어묵을 하나씩 먹고 집으로 오는 것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오는 시간이면 거의 10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픈 것이 당연했다. 이미 그 시간 어묵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주로 먹던 어묵가게는 지하철역 상가에 있었다. 이미 그 시간 지하철역의 지하상가는 사람들이 모두 출근한 직후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곳엔 내가 자주 가던 두 곳의 어묵가게가 있었다. 하나는 쇼핑몰과 쇼핑몰 사이의 커다란 광장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위치하고 있었다. 두 번째 어묵집의 규모가 훨씬 작았다. ㄱ워낙 큰 범위의 지하철역이라 군데군데 분식집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중에 내가 자주 가던 곳은 주로 이 두 군데였다.






다양한 어묵 골라먹는 재미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가까운 어묵가게로 걸어간다. 오늘은 작은 가게로 또 다른 어떤 날은 큰 가게로 걸어간다. 이미 그곳에는 어묵을 비롯한 분식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주머니에 접혀있던 돈을 건네며 가장 평범하게 생긴 기다란 어묵을 하나 건져든다. 어묵을 들어 간장종지에 넣어 간장을 찍는다. 그 후로 입 속에 쏙 넣는다. 통통한 어묵을 한 입, 두 입 오물오물 먹는다. 어묵 한 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 후에는 옆에 놓인 종이컵에 거대한 국자(흡사 우리 집 냄비사이즈)로 어묵 국물을 떠 넣는다. '후후' 뜨거운 어묵 국물을 한참을 불어가며 먹는다. 어묵 국물을 먹는 사이 허기졌던 배가 든든해진다. 보통은 한 개만 먹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하나로 모자란 날은 지갑에 현금을 확인해 보고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어묵 두 개로 선심을 쓴다. 두 개 먹으면 더 맛있다. 마음은 이미 열개정도는 순식간에 먹어치웠으나 두 개가 적당하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내일 또 먹으러 올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묵루틴'은 겨우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코로나를 맞이하며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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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로도 한참 지하상가에서 한 개, 두 개 먹던 어묵의 맛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나 코로나의 한창이었을 때는 어딘가를 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고, 사람들과 몸을 가까이하며 음식 먹는 것을 꿈도 못 꿀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어묵탕을 끓여 먹기로 했다! 어묵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요리이다. 재료를 넣어 국물내고 어묵을 넣고 끓이면 끝 아닌가!




최고 간단 어묵탕 끓이기


1. 멸치팩과 다시다, 양파, 파 등을 넣고 국물을 낸다.
2. 무를 넣고 푹 끓인다.
3. 어묵을 넣는다.
4. 간장이나 쯔유를 넣고 간을 한다.
5. 후추를 조금 뿌리면 끝!




그런데 맛이 조금 다르다. 국물을 낼 멸치팩과 무를 넣고 끓이다가 다양한 종류의 어묵을 넣고 어묵탕을 끓였다. 심지어 멸치팩대신 코인육수로 국물을 내면 될 정도로 간단했다. 그런데 이게 내가 먹던 어묵탕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맛이 다르다.



좋은 재료, 다양한 종류의 어묵, 깨끗한 냄비, 그릇 등등 그리고 나의 정성까지 듬뿍 넣어 어묵탕을 끓였는데  좀처럼 지하상가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늘 열 개정도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어묵이었는데, 그렇게도 맛있고 좋았던 어묵이었는데!!! 몇 개 먹으니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후회했다. 그냥 지하상가로 달려가서 어묵 두 개나 사 먹을걸...









분명 나의 요리실력이 부족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요리도 거뜬히 해내는 마법의 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쌀쌀해진 날씨, 등원을 시킨 후의 후련했던 마음가짐, 그리고 그곳에 서서 먹던 한 개의 어묵을 신중히 골라 먹던 순간과 따뜻한 국물 그리고 뱃속 허기짐이 지금과는 다른 것 같다. 분명 그곳이어서, 그 순간이어서 어묵이 훨씬 더 맛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법의 가루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지하상가에서 팔던 어묵 국물에서 분명히  느껴지던 msg를 넣지 않은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마법의 가루가 음식을 더 맛깔나게 하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날의 어묵꼬치가 너무 그립다. 그러나 이제 서울의 지하철역으로 어묵을 먹으러 가기는 너무 멀다. 어묵 두 개를 먹으러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려 지하철을 한 시간 갈아타고, 그 정도로 그것을 먹으러 갈 자신이 없다.



단지 내가 그 어묵을 먹으러 매일 들릴 정도로 좋아했던 기억과 추운 계절 나에게 잠시 따뜻함을 나눠주던 그 어묵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은 msg가 듬뿍 들어간 소박한 어묵탕을 만들어 봐야겠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그 맛을 재현해내고 싶다.  갑자기 추워진 이 계절은 어묵탕을 먹기에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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