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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21. 2022

제주 전원생활, 새싹이 돋았다!


친구와 오랜만에 ㅋ톡을 하는데 대화창 화면에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한다. 설마 제주도에도 눈이 오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창밖을 보니 오늘 날씨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맑음이다. 휴, 다행이다. 



이번 주 오랜만에 제주에는 해가 떴다. 화창해진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상쾌하다. 이렇게 해가 뜨는 날은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어 전체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밖에 있는 창고도 문을 열어놓아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후 나도 오래간만에 광합성을 하려고 정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정원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는데 초록색의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온다! 설마~? 저것은?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가까이로 다가갔다.






우와!! 파가 자랐다.






도시에서 살 때 겨울에는 집에서 파를 키워먹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겨울에 파를 잘라서 화분에 심으면 무럭무럭 자라고 수경재배로 키워도 정말 잘 자란다고 했다. 그때 나도 몇 번이고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그때마다 마음만 먹은 채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에 시도하게 되었다! 이사한 제주의 집에는 파를 심을 화단 같은 공간이 있었다. 전 세입자들은 그곳에 토마토를 키우는 것을 봐 뒀었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는 저 공간에 꼭 시도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뿌리에 흙이 가득한 파를 샀다. 그리고 뿌리에 흙이 가득한 파를 일단 아랫부분을 어느 정도 남긴 후 잘라놨다. 일단은 자른 파 부분을 요리에 사용했다. 그 후 그 잘린 부분을 바로 심어야 하는데 또 나의 귀차니즘의 발생으로 부엌에 달린 베란다에 방치했다. 사실 도시에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이렇게 해보지 못하고 넘어가는가 싶었다.



다행히도 며칠 후 엄마가 제주에 놀러 오셨다. 엄마를 만나자마자 '파를 화단에 심어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모종 삽으로 흙을 파고 그 속에 파를 심는, 이 간단한 일조차 못하는 의지 제로인 딸이 제주도에 살고 있다. 다행히도 엄마는 왜 그것을 아직도 못했냐는 그런 잔소리도 없이, 정말 순식간에 파를 심어주셨다. 생각보다 그것은 정말로 간단한 작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세 단밖에 없는 파뿌리였기 때문일 테다. (나는 왜 또 못했을까. 그 쉬운 것을) 



아무튼! 파는 그 며칠 사이로 눈도, 비도 맞고, 거센 바람도 피하고 그렇게 견뎌냈다. 주인의 눈길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파에게서 파가 다시 자라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진실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얼마나 대견하고 귀여운지, 농사를 짓는 기분이라는 것이 이럴까라는 생각도 스치듯이 들었다. 여린 초록색을 띠며 자라고 있는 파가 제법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러운 나의 파파파








원래 파를 심기 전에 제주에 다녀가셨던 엄마는, 그 작은 화단에 가장 먼저 상추씨를 심으셨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엄마는 가끔씩 전화로 상추의 안부를 묻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아니 전혀 아무 소식도 없어'라고 대답하며 생각했다. 제주도가 아무리 따뜻하더라도 겨울에 상추 씨앗이 자랄 리가 없지... 특히 이 상추씨로 말할 것 같으면 작년 봄인가 여름에 내가 아파트에서 상추를 심겠다고 화분에 심었는데 새끼손톱만 한 상추가 열리고 더 이상 크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작아서 상추 인지도 몰랐던 그 새싹은 결국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직도 상추 봉투에 심지 못한 씨앗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 씨앗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뒀다가 제주도에 들고 온 씨앗이었다. 



그때도 제주에 놀러 오셨던 엄마는 정원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화단에 상추를 심었다. 그리고 상추를 심고는 4번의 눈이 왔다. 무려 4번이다. 그런데 파를 돌보며 옆을 보니 상추 잎이 자라나고 있었다. 여전히 작고 작은 상추 잎이었지만 아파트에서 자라던 상추보다는 월등히 (10배 정도) 컸다. 제법 상추의 모양도 갖추고 있어서 정말 신기했다.




상추가 자란다




'알고 보면 제주도에 벌써 봄이 온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요즘 누렇게 변했던 잔디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단에 상추 말고도 잡초가 얼마나 많이 자라났던지... 이 정도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1월이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봄은 1월에 오는 걸까? 아마도 조금 더 지나면 답을 알게 될 테다. 



정말로 따뜻한 봄이 와서 채소 모종을 심는다면 얼마나 빨리 자랄까? 어떤 모종을 사 올까 고민을 해봤다. 지난번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에 봤던 다양한 모종들이 생각났다. 일단 아이가 좋아하는 토마토 모종은 필수로 사야겠고, 쌈야채의 종류가 많으니 그것들도 몇 개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 지었다. 그 후엔 여름이 되어 쑥쑥 자란 다양한 채소를 매일 수확해서 비건식으로 먹어볼까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여름 아침이면 이미 수확되어 식탁 위에 놓여있던 상추, 토마토, 오이, 가지들이 생각났다. 상추에 밥을 올리고 쌈장 하나만 넣어도 배가 부르던 여름날의 풍요로움이 떠올랐다. 이 작은 상추가 날 꿈꾸게 만드는구나. 



이 상추가 더 크면 누구랑 나눠먹지? 마침 얼마 전엔 앞집 아주머니께서 처음으로 텃밭에서 수확했다며 무를 세 개 , 배추도 한 포기나 가져다주셨다. 그동안 제주에서 무도, 배추도 사 먹기만 했는데 갓 따온 무와 배추를 받게 되어 먹어보니 무도 배추도 달달하니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신선하던지 보관기간이 꽤 지나도록 쌩쌩했다.  나는 그 무와 배추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상추가 자라면 앞집부터 나눠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소량이겠지만 좋은 것을 나눠먹는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면 꽤나 흐뭇할 것이다. 



귀여운 나의 파와 상추여! 앞으로 남은 겨울 제주에 몇 번이나 더 눈이 올진 모르지만 부디 눈, 비, 바람을 잘 견디고 계속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렴. 힘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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