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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05. 2022

돌담 위의 우체통

제주에서 우편 받기




제주도로 종종 편지가 온다. 서울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신다. 아이가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지 썼어요?" 하고 물어보면 시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 금세 편지를 써서 보내주신다.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커다란 카드를 두 개나 받아 신이 났다. 때론 소포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책이 주문되어 오는 터라 택배가 아닌 소포라는 단어가 어울릴 듯하다. 핼러윈 때에는 핼러윈 그림 색칠하기가, 얼마 전엔 영어를 썼다 지웠다 하는 책이 도착했다. 아이는 제주도에 와서 종종 자신에게 오는 편지나 소포를 받고 신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우편이 오거나 택배가 오면 "누구한테 온 거야?" 하곤 묻고는 한다. 



제주 우리 집의 우체통은 따로 없다. 우체부는 돌담 위에 우편을 그냥 두고 간다. 그러니까 돌담 위가 모두 우체통인 셈이다. 보통 돌담 위에 그냥 놓여 있지만, 바람이 부는 날엔 그 우편 위로 돌이 한 개 올려져 있다. 우체부의 센스 있는 행동이다. 처음에 제주도에 도착해서 우편을 받았을 때, 돌담 위에 올려진 우편물을 보고는 너무도 낭만적이라 사진을 찍어두곤 했다. 돌담 위의 우체통은 아마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돌담 위가 전부 우체통인 셈이다. 





어제는 이미 나왔어야 하는 전기 고지서가 나오지 않아서 한국전력공사에 전화를 했다. "왜 고지서 우편물이 오지 않나요?" 나는 돌담 위에 있던 고지서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리라고 생각했다. 혹은 지난번 내린 폭설에 눈 아래로 파묻혀서 어디론가 사라졌거나. 그런데 우편물이 지금 가는 중이란다. 곧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생각보다 돌담 위의 우체통은 안전했다. 



가끔은 등기우편이 오고는 한다. 그때 우체부는 꼭 우리를 만나 '직접' 전해줘야 한다. 그래서 대문으로 들어와 초인종이 없는 우리 집 문을 쿵쿵! 두드리신다. 얼마 전 도착한 새해 카드는 등기로 도착해서 우체국 아저씨가 친히 집 문 앞까지 방문해주셨다. 보통 우리가 집에 있는 시간은 창문을 열고 지내기 때문에 손님이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는 우체부 아저씨가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창문으로 보자마자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자기 이름 앞으로 온 카드를 받고 아이는 정말 신이 났다. 





새해에 도착한 신년카드





지난번에는 당첨으로 받은 상품권이 등기로 도착했는데 우리가 집에 있지 않아 등기가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우체부가 다음 날 다시 등기를 들고 방문하신다고 하는데 그다음 날에도 우린 집에 없을 예정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집 앞에 상자를 놓아두고 그 안에 등기를 놓고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다행히도 부탁을 들어주셔서 우리가 우체국 가서 찾아오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택배는 그냥 집 문 앞에 놓고 간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어서 정원이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그래서 그 대문을 통해 들어오셔서 택배를 집 문 앞에 놓고는 문자로 연락 주신다. (아파트 문 앞에 놓고 가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도 택배가 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 외할머니께서 쌀을 보내주셨다. "네? 제주도까지 쌀을 보내주신다고요? 택배비가 더 들 테니 보내주지 마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kg 쌀이 도착했다. 쌀이 도착한지도 몰랐는데 아이 등원을 시키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놓여있었다. 외할머니는 쌀이 터질까 봐 한 번, 두 번 가마니에 꼭꼭 싸서 보내주셨다. 제주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함모니ㅜㅜ)





제주로 보내진 외할머니의 사랑 





우리 집에 유일하게 오는 유일한 빠른 배송은 쿠ㅍ이다. 아마 육아에 쿠ㅍ의 로켓 배송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일 것이다. 서울에서 살 때는 급할 땐 당일 배송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적어도 하루 만에 도착하니 자주 이용했는데 여기선 그것도 이틀이 꼬박 걸린다. 그래도 아주 가끔, 아주아주 가끔은 하루 배송으로 도착하기도 한다. 내 돈 내고 내가 주문했는데 다음날 배송이 오면 마치 공짜로 선물 받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때다. 그래도 추가로 배송비(도선료)가 드는 제주에서 무료배송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정말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배송비 여부는 서울에서는 한 달에 5~10개 정도 받던 택배를 제주도에서는 1~2개로 줄이는데 기여했다. 왜 늘 배송비는 아까운 걸까. 





유일한 빠른 배송 






하루 종일 집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차가 종종 지나다닌다. 거의 끝에 있는 길이라 많이 다니지 않는데 그래도 낮엔 택배 차도, 우체국 차도, 빠른 배송 차도 지나다닌다. 나는 이곳에서 돌담 위에 올려진 우편물을 받는 것도, 지나다니는 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가끔 정원에서 산책하고 있으면 동네분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 번씩 꼭 놀러 오는 고양이들도 기다리고는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와 완전 반대인 이곳 제주의 삶이 나는 너무도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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