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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18. 2021

갑자기 고양이가 5마리

제주도 길고양이

처음 제주집으로 들어오던 날 고양이가 마중 나왔다. 그날은 분명 비가 왔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이었는데, 환기를 시키느라 창문을 열어놨더니 고양이가 한 마리 다가왔다. 저녁을 지어먹는 내내 고양이가 그 자리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워져서 깜깜한 밖에서 눈이 노랗게 빛나던, 흰 바탕에 검정 얼룩을 가진 고양이. 그날 밤 남편에게 이 고양이 얘기를 하니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고양이 사료가 있었다 했다. 아마 이전 집주인이 돌보던 고양이 같았다. 아마도 이 집을 오며 가며 살던 길고양이가 아니었을까? 



그다음 날은 이삿짐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그 지켜보던 고양이가 다시 왔고 뒤이어 물에 빠진듯한 생김새와 더불어 털이 쥐 파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빠진 얼룩 고양이가 왔다. 아... 근데 침도 흘리면서 다가온다. 사실 조금 무서웠다. 한눈에 봐도 청결하지 못한 고양이었다. 오후가 되어 이삿짐센터가 도착했다. 이삿짐센터 직원 중에 한 명이 그 고양이를 보더니 구청에 신고하라고 말했다. 병 걸린 고양이라 더럽기도 하고 병균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구청에 신고하면 그러면 고양이를 데리고 간다고 한다. 그런데 차마 신고할 수 없었다. 아마 이곳에 우리 오기 오래전부터 살던 고양이 들일 텐데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 감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수가 있을까!) 



그 후로도 종종 찾아오는 고양이들. 어떤 날을 우리 집 앞마당 데크 위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나무 위에서 꾹꾹이를 하고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문으로 들어왔다가 담장을 넘어 나가기도 한다. 이사 짐을 정리하고 여유가 생긴 어느 날, 마트에 가서 고양이 간식과 밥을 사 왔다. 그다음 날 놀러 온 고양이에게 우린 처음으로 간식을 건네주었다. 생선포로 된 간식을 몇 개 놓아주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창문을 통해 지켜봤다. 우리를 바라보며 굉장히 의심하다가 한참 후에야 먹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로도 같은 간식을 몇 번 더 줬는데 언젠가는 먹지도 않고 가버렸다. 그래서 며칠간 고양이가 놀러 와도 간식을 주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챙겨줬는데 그렇게 하니까 조금 상처 받았다. 고양이에게 상처 받은 나 정상인가? 



사실 나는 동물에 관해 별 관심이 없다.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은 마음도 든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도 힘든 사람이다. 거기에 아이까지 키우니 내가 더 이상 할애할 에너지가 없다. 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외동아이가 종종 외로움을 타는 터라 동물이라도 같이 키워야 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나는 우리 가족 챙기는 것만으로도 아주 힘이 부칠 지경의 저질체력이라 쉽게 애완동물을 집으로 들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바로 잡는다. 집으로 애완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고 어떠한 이유로든 끝까지 성실하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고양이를 만나게 되니 없던 애정이 생겨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캣맘이 되는 건가 잠시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우연히 본 책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집에서 길고양이를 챙기는 것은 여러모로 고민하고 시작하길 권한다고, 앞으로 계속 챙길 수 없다면 애초에 음식을 주거나 , 챙겨주는 행위를 시작하지 말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예쁘다고 몇 번 주고 주기 싫다고 안 주고 혹은 내가 여길 떠나거나 해버리면 늘 기다렸던 그들에겐 꽤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동네를 떠돌며 밥을 먹는 길고양이들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일, 매번 그들을 챙길 수는 없다. 책임감 있는 행동을 애초에 시작하지 말라야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간식도, 밥도 챙겨주지 않았더니 몇 번 놀러 오던 고양이들도 자주 놀러 오지 않게 되었다. 초반에 몇 번 간식을 먹은 검정고양이가 와서 밥을 달라고 애절하게 "야옹, 야옹"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별 반응 없이 집 안에 머물렀더니 이후로는 모든 고양이들이 거의 오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집 정원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아주 가끔 만나기는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기 고양이가 나타났다. 



여느 때처럼 열어놓은 거실 창문 밖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 그런데 늘 보아오던 고양이가 아니다. 사이즈가 확연히 작다! 직감적으로 '저것은 아기 고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더니 1마리는 이미 집 뒤편으로 가버리고 저 멀리 엄마 고양이와 2마리의 고양이들이 지나가려고 서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놀란 눈을 하고 재빠르게 흩어져서 도망간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봤더니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려고 눈치를 본다. 



아기 고양이들을 봤더니 갑자기 또 마음이 동하였다. 지난번 사놓은 주지 못한 간식 중에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참치를 오픈했다. 사실 그동안 내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고 모아놓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 잘 올려서 문 밖으로 내밀었다. 고양이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마저도 엄마 고양이가 너무도 경계하길래 나는 밥을 주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몰래 지켜보니 고양이 4마리가 다 몰려와서 너무 맛있게 먹고 있다. 혹시 안 먹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절반만 가져다주고 남겨놓았었는데, 참치 나머지도 다 가져다주었다. 엄마 고양이는 열심히 먹다가 아기 고양이가 나타나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쨰려보며(!) 아기 고양이들을 지키고 있다. (야, 내가 먹이 줬거든!) 



열심히 참치를 먹고 있는 아기 고양이 3마리가 색이 각각 다르다. 1마리는 몸이 완전 검은색이고, 두 마리는 얼룩이 있는 하양이랑 검정이 들어갔는데 한 명은 많이, 한 명은 적게 얼룩이 들어간 고양이다.  아마도 저 검은색 아기 고양이는 아빠를 꼭 빼닮은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마리는 엄마를 닮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너희들도 아빠, 엄마를 꼭 닮았구나. 잠시 후에 아빠로 보이는 검정고양이가 나타났는데, 이전부터 집에 와서 밥 달라고 '야옹야옹' 울던 고양이다. 아직 아빠가 되기엔 작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보니 청년 느낌의 고양이가 됐다. 

아마도 재네들이 아빠, 엄마 고양이 맞는 거 같은데 왜 아빠 고양이가 한참 연하 같아 보이는 걸까? 조금 웃음이 났다. 엄마 고양이 능력자구나? 




지켜보는 엄마 고양이와 의심 많은 아기 고양이 3마리



아까 고양이들 밥을 주려고 거실 문을 열고 왔다 갔다 했더니 왕파리가 집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그 파리를 쫓으러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여는데 한가롭게 햇빛 아래에서 털을 고르던 고양이가 한꺼번에 일어나 그르릉 거린다. 아니, 나도 너희를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너네들 밥 주다가 파리가 들어와서 내쫓아야 한다니까!" 앉아있던 의자에서 움직여 창가로 가까이 갈 때마다 엄마 고양이 한 마리가 보초 서듯이 지켜본다. 아니 째려본다. 무섭고 부담스럽다. 



그러다 갑자기 아기 고양이가 2마리가 밖으로 뛰어간다. 그러더니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더니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보넷 아래로 들어가려고 한다. 자동차 아래로 들어가며 윗부분을 바라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자동차 고장 난 곳을 고치려고라도 하는 걸까? 아이고 어쩌면 좋아.  






늦은 오후, 아이랑 잠시 정원에서 놀고 있다가 잠깐 창고 문을 열러 갔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다. 창고 뒤편에서 갈색 옷을 입은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다가 황급히 숨는 것을 보았다. 이건 뭘까? "거기 누구 있어요??" 난 정말 무서워하며 창고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황급히 도망가는 갈색의 엄청 뚱뚱한 고양이를 보았다.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를 지켜보는 도둑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와, 오늘은 하루 종일 고양이 day다. 



제주도에 와서는 아파트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어 사니, 아니 땅과 가까이 사니 고양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꼭 집안에 키우지 않아도 애완동물이 생긴 느낌이다. 아직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어야 할지, 음식도 계속 줘야 할지는 모르겠다. 마음을 줘버렸는데 언젠가 우리가 이 제주집을 떠나게 되면 저 고양이들도 우리도 너무 많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우선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저 귀엽고 탐스러운 고양이들을 바라보면서 지내고 싶어지는 것이 나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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