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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09. 2022

제주생활 중간보고

브런치 101번째 글


제주에 온 지 정확히 절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이렇게 빠르게 흐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지나가버렸네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린 제주에서 이미 가을, 겨울, 봄을 겪었고 지금은 봄과 여름 즈음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가을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제주도에 오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물씬 뜨는 최고의 날씨였다. 제주까지로 이사 준비하는 동안의 여러 스트레스가 금세 사라질 만큼 시작부터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았다. 처음부터 참 평화로웠다. 초록이 둘러싸인 자연에 사는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무엇보다 '전원주택'에 처음 살게 되며 눈앞에 보이는 정원과 귤나무가 그저 신기했고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기억하는 제주의 가을은 갈대가 정말 아름다웠다. 곳곳에 심긴 갈대가 바람에 흔들려 은빛 물결을 만들어 낼 때면 내 마음도 두근거렸다.




가을의 제주 (산굼부리)




그러나 겨울에 접어들며 생각보다 주택살이 적응이 힘들어졌다. 왜냐하면 늦가을이 되며 본격적으로 감기에 걸리기 시작했는데, 감기가 낫지 않고 거의 몇 달 동안을 쉬지 않고 걸려있었다. 아니 나으려고 할 즈음 감기에 다시 걸리고,  또 걸리고를 반복해서 거짓말처럼 감기와 한 몸처럼 지낸 겨울이었다. 남편 말로는 자기 생애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제주가 추운 건지 우리 집이 추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 제주의 날씨는 숫자로 표시되는 온도와 체감 온도가 많이 달랐다. 확실한 것은 '겨울 주택살이는 뻔한 고생길'이었다.



우리 집은 중간산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눈이 내리면 운전해서 큰 도로까지 내려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눈이 생각보다 자주 내려서 겁에 질리곤 했다. 제주시에서 보낸 폭설주의보 안전문자가 도착하면 밤새 걱정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침에 잠에서 깨서 정원 가득 쌓인 눈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이는 그곳에서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즐거워했다.



추운 겨울 제주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실내 관광지, 도서관, 카페 등을 주로 다녔다. 이전에 몇 번 관광으로 제주에 왔지만 늘 그렇듯이 대표적인 관광지만 다녀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기회가 될 때 열심히 가보자는 마음으로 끌리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겨울의 제주  (우리 집 귤나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가고 제주에도 봄이 왔다. 3월까지는 여전히 추웠고 4월이 되며 슬슬 봄이 왔구나라는 느낌이 오더니 벌써 5월, 때로는 덥기도 하다. 그럼에도 집에서 나는 두꺼운 수면잠옷을 입고 잠을 자고, 저녁엔 담요 없이는 지낼 수 없고, 종종 방안에 히터를 켜놓고 하지만 그래도 봄이다. 특히 어떤 날은 갑자기 습하고 더워져서 이미 여름이 찾아온 느낌이다. 특히 창문을 열어 놓으면 집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 나를 포근히 안아준다.



봄이 되자 제주 지천에 꽃이 가득하다. 매화꽃을 시작으로 벚꽃과 유채꽃까지 정말 예쁘다. 제주에서 본 벚꽃은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보아온 벚꽃보다 더 화사하고, 풍성했다. 5월, 지금은 철쭉꽃이 한창이다. 그리고 집 앞마당이나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을 만날 때면 얼마나 앙증맞고 예쁜지 모른다.



봄의 제주 : 벚꽃의 향연




제주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은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을 때 언제고 차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바다는 그저 사랑이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비치고,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들릴 때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바다 가까이에 계속 살던 사람은 절대 모르는 육지인들이 느끼는 감성이 있는 것 같다. 30년이 넘도록 바다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육지 것이기에 나는 바다이 가까이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이는 주말마다 아빠와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남편은 서울에서는 주말이 되면 도로가 복잡해서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것을 꺼려했는데 이제는 아이와 주말마다 새로운 곳을 다녀온다. 때론 내가 합류해서 바다에 가기도 한다. 5월이 되며 날씨가 좋길래 우리는 곧장 바닷가로 갔다. 그런데 아직 바다에서 놀기는 추웠는지 감기에 독하게 걸려서 일주일을 꼬박 집콕하며 고생했다. 그래도 아이는 바다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거워했다. 너도 제주 바다의 매력을 알아보는구나?




제주의 바다 & 아이









내가 여행을 다닐 때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의 카페이다. 사실 그 동네의 카페 탐방이 여행의 목적이다. 이전에 제주로 여행을 왔을 때는 카페를 많이 못 가서 아쉬움이 컸는데, 여기서 살게 되니 언제나 마음먹을 때 카페를 다닐 수 있어서 좋다. 특히나 예쁜 카페가 얼마나 많이 생겨났는지 아직도 가야 할 카페 리스트가 수십 개는 된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카페에서 달콤한 커피를 마시는 순간, 예쁜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일, 혹은 혼자 끄적거리기, 왜 그것은 꼭 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해야 더 좋은 것일까? 언젠가 카페가 집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제주 카페 투어





제주생활 6개월에 집밥 요정이 되었다. 지난 3개월 정도 코로나가 정말 심각했다. 사실 우리는 서울을 떠나올 때 만해도 이제 코로나가 끝나겠거니 했고, 너무 늦었나 싶게 제주에 온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코로나 확진자수가 10만 명을 웃돌기도 하고, 제주 하루 확진자수가 3천 명이 될 때도 있으니 코로나가 제일 심각할 때였다. 그 시기 우린 철저하게 칩거생활을 했다. 가는 음식점도 줄이고, 카페의 수도 줄이고 나니 코로나로부터 안심이었다.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 친구들까지 모두 걸리는 시기였는데 우리 아이는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무사했다. 우리 이미 걸리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 아무튼 언제고 걸릴 코로나지만 아직도 안 걸리는 것은 '인간관계 문제'가 있는 거라던데... 그렇다. 우린 아무도 만나지 않고 철저하게 우리끼리만 지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우리 사이는 그렇게 좋거나, 안 좋지도 않고 워낙 코로나 기간 동안 찰떡처럼 붙어있는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집밥 삼매경





봄이 되며 정원이 숲이 되었다. 잡초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나는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 잡초를 뽑았는데 그 속도가 잡초가 자라는 것보다 느렸다. 달리 해결한 뾰족한 방법 없 꾸준히 잡초를 뽑을 수밖에... 그 이후로도 잡초를 뽑다가 허리가 아프고, 팔이 아파올 때면 '제주의 낭만은커녕, 이게 무슨 짓이야' 싶다가도, 집안에 들어앉아 정원을 바라보거나, 정원에 열린 귤을 따는 일, 그곳에 핀 들 꽃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구경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매번 제주에 사는 것은 절대 행운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잡초, 잡초, 잡초 ㅜㅜ




당황스럽게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절로 눈물이 나온다. 지난 6개월의 삶은 힐링 그 자체였다. 이전의 육지의 삶이 고되거나 힘들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그 생활에 지쳐있었다. 그래서 제주에서 오롯이 나로, 우리로 지내는 이곳의 삶은 천국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은 정해진 기간이 있어서 더 즐거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은 제주생활은 더 따뜻해질 테고 어쩌면 곧 무더위가 찾아와 엄청나게 습하고 더울 수도 있고, 섬 특성상 장마로 인해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지도 모른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며 집 안팎으로 출몰하는 벌레들이 정말 많아지는 것을 보아 벌레와의 사투도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이 모든 것을 겪고 나면 제주를 빨리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더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또 반년을 지내고 봐야 다시 말할 수 있겠다.



솔직히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반,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이다. 그렇다고 제주의 삶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불편함과 답답함이 공존하는 곳이라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은 그만큼 이곳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주에서의 남은 기간을 더 풍요롭고 풍성하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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