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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2. 2021

낭만의 그림자

주택의 낭만은 여기까지 인가요?




우리는 주택생활 첫 난관에 봉착했다.





우리의 주택 낭만은 여기까지가 끝이었을까? 아무래도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제주집을 알아보러 왔을 때 우리에겐 딱 4박 5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서울에서 인터넷을 통해 제주오일장, 제주 직거래장터 등등으로 집을 알아봤지만 1년을 어쩌면 더 살아야 할 집을 사진으로 보고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을 보러 내려왔었다. 남편을 제주도에 와서도 도심에 살고 싶어 했고 나는 도심과 벗어난 곳을 원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도심 가까운 곳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어차피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4박 5일 동안 매물로 나온 집 중에 한 개를 골라서 우린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기대하지 않고 방문했던 곳이 생각보다도 너무 좋아서 계약을 했다. 물론 신중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집주인을 만났다. 집주인은 흥미롭게도 우리의 또래였다. 계약을 하는 도중에 집주인이 한 말을 기억한다. "여름 내내 에어컨을 써도 별로 전기세가 안 나올 거예요, 그리고 겨울에 2층이 따뜻하니 전기 틀어놓고 2층에서 주무세요." 별 선택의 폭 없이 구한 집이었는데 (사실 잘 몰라서) 태양광 설치한 집이라 전기세가 덜 나온다니 에어컨 사랑하는 남편도 좋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살 수 있는 나도 너무 좋고 우리는 횡재라고 생각했다.



우린 10월 초에 이사를 왔다. 제주도의 10월은 따뜻했다. 그런데 갑자기 11월이 되며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10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했다. 보일러 등유 값이 부담되기도 하고 전기세가 저렴하다니 전기히터를 하나 주문했다. 우린 보일러를 돌리는 대신 전기히터를 틀고 지냈다. 얼마 전 더 추워져서 전기히터를 사려고 했는데 창고에서 커다란 전기스토브를 찾고는 반색을 하며 종일 틀어놓고 지내고 있었다. 보일러를 트는 것만큼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초겨울 날씨를 견딜만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리 집에 한국전력공사에서 전기요금청구서가 날아들어왔다. 그런데 무려 찍혀있는 금액이 169780원! 무려 17만 원이라는 전기요금 숫자가 찍힌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파트에 살 때 관리비만큼 나온 전기요금 숫자를 보며 이것이 진짜 우리 집에 온 전기요금청구서일까 재차 확인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다 주택이라서 이렇게 많이 나오나 보다 체념을 할까도 생각했다.



우린 이 집에서 보일러는 등유값이 비싸서 적게 틀고, 전기세는 태양광이라고 해서 조금 전기를 마음 놓고 쓰고 있었는데, 어쨌든 나는 겨울이 된 이후로 아직 이 집에서 따뜻하게 지낸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전기요금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국전력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한전에서 말하길 태양광 전력 생산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말인가요?" 재차 물어보니 태양광 업체에 전화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 집주인이 우리가 이사하기 직전 태양광 업체가 와서 수리를 했다고 했는데 왜 다시 이런 일이 생겼지? 결국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태양광 업체랑 연락이 닿아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인버터 문제인가 보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인버터가 뭐지... " 그런데 우리 이사 직전에 지난번 태양광 업체가 와서 고쳐놨다고 했는데 두 달 동안 작동하지 않은 상태로 있었던 것도 화가 나고 가장 큰 문제는 태양광 업체가 언제 고치러 올 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오늘도 태양광 발전 없이 계속 전기를 쓰고 있다. 누구 탓도 하지 않을 테니 어서 빨리 고치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밤이 되었다. 잠자러 들어갈 시간인데 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내일 공연을 봐야 하니 어서 자자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내일 공연 주인공 팔찌를 찾아온다고 방에 들어갔다. 탈칵탈칵 소리가 여러 번 들리더니 아이가 뛰어나온다. "엄마 방에 불이 안 켜져요" "아래 버튼 말고 위에 버튼을 눌러야지"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어? 진짜 스위치가 안 눌러진다.  아이는 그 짧은 다리로 깨 갱발을 하고 위에 버튼을 눌렀을 텐데... 그 버튼이 고장 났다. 앗! 그런데 거기에서 용접할 때의 냄새? 전기 냄새 가 난다. 무섭다. 설마 불꽃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다음 날 그곳을 전기 스위치를 고쳐볼 심산으로 한번 더 건드렸다가 새어 나오는 연기를 보고 기겁했다. 당장 전기 기사님을 불러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우린 한 건의 일이 더 생겼다. (으아아아악!!)



나는 종종 내가 부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에도 이렇게 고민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내가 태양광 인버터까지 알지 못해도 전기료가 17만 원이 나와도 가볍게 낼 수 있는 부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전기료를 17만 원이나 내면 기절할 것 같은 서민이니까 태양광에 대해, 전기요금에 대해 검색하고 또 검색해본다. 그런데 지금 1시간 넘게 검색했는데 내가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망가진 스위치 내부




전기 스위치는 어떻게든 내가 고쳐보고 싶었고(알고 보면 손재주가 제법 있다), 태양광은 일전에 수리해놓은 아저씨의 잘못(그 이후로 태양광 작동이 안 되었다)이나 혹은 잉여량을 올리지 않은 , 혹은 과전압으로 인한 한국전력의 문제일까 알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나의 수준으로는 그것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집을 돌아다니면서 새고 있는 전기의 연결을 끊고 왔다.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원을 뺐다. 크리스마스의 낭만도 잠시 미뤄놓아야겠다. 그리고 정원의 밤이면 켜놓는 불을 껐고, 물이 없이 켜있는 티포트의 전원을 껐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가 따뜻하다. 등유를 아껴보자고 그리고 따뜻하다는 이유로 종일 틀어놓았던 전기스토브의 코드도 빼놓았다. 차마 아이가 자고 있는 방의 전기히터까지는 끌 수 없었다. (감기가 걸리면 더 머리 아프다) 그리고 거실 등도 2개인데 , 부엌 쪽에 가까운 등만 켜고 지금 컴퓨터를 사용 중이다. 컴퓨터도 충전이 끝나면 전원을 분리해달라고 남편한테 부탁하고 자야겠다.



나의 제주 낭만은 정원이 있는 주택이었다. 그 집에서 두 달 동안 정말 즐겁고 편안하게 지냈다. 이제 제주의 낭만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나 괜찮다. 아니 점점 괜찮아질 것이다. 태양광을 못쓰게 되며 전기를 아껴 쓰기 시작하는 것, 돈을 아끼고자 조금 불편하게 살아가는 것, 주택의 낭만만을 바라던 생각을 끝내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것.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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