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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26. 2021

나도 기름보일러가 처음이라

제주에서 난방유 주문하기

오늘 아침 나의 핸드폰에 연락처가 한 개 늘어났다. 바로 주유소 전화번호. 날씨는 갑자기 추워지고 있고 등유가 똑 떨어졌다. 아침이 되자마자 주유소에 전화를 했다. 






 처음으로 난방유를 주문했다. 




제주도에서 이사를 하려고 몇 군데 집을 보고 다녔었는데, 주택은 거의 기름보일러였다. 기름보일러? 생각도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아파트와 빌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그냥 지역난방으로 모두 해결되곤 했었는데... 기름보일러라니!  아마 내가 아기 때 살던 그 집에선 기름보일러를 사용했을까? 다행인 걸까 부동산 중개인에 말에 의하면 제주도는 기름보일러를 많이 쓴다는 것. 아!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구나! 



제주도에 이사 오는 날, 엄마가 함께 집을 정리하러 오셨다.  엄마는 나보다도 먼저 창고로 가서 기름보일러를 확인하고 오셨다.  그런 후에 기름보일러에 대해 조금 알려주고 가셨다. 태어나 기름보일러를 처음 보았다. 재밌게도 기름보일러에는 기름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주는 투명한 관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 신기했다. 이전 집에 살던 분들이 기름보일러 통의 1/5 정도를 남겨놓고 가셨다. 엄마는 "이게 다 채우는 것이 비쌀 텐데" 하시며 기름보일러를 채우라고 50만 원이나 주고 가셨다. 아마 이것보다 부족할 수도 있다고 부족하면 더 보내줄 테니 전화하라는 말씀도 남기셨다. '그렇게나 많이 들어간다고?'



며칠 전부터  보통은 온수를 놓고 쓰고 있었는데  날씨가 쌀쌀해지며 하루 두 번 정도 보일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기름이 이렇게 금방 달아버릴지 몰랐다. 하필 똑 떨어진 시점이, 갑자기 온수가 멈추고 냉수가 나온 시점이 슬프게도 아이가 씻고 있는 때였다. 머리 감으려고 물을 묻힐 때만 해도 따뜻한 물이 나왔는데 머리에 비누거품을 낸 후에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다' 잠시 포트에 물을 끓여 머리를 감길까 생각을 해봤지만 물이 끓는 동안 이미 아이의 몸은 차갑게 식을 텐데... 할 수 없지 차가운 물로 아이의 머리를 감기고 몸을 닦였다. 아이는 너무 차가워 소리 지르고 기절 직전이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미안한 미안했다. 하필 이 시점에 차가운 물이라니!   







왜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나오는 거지? 하면서 보일러 온도 조절계를 보았다. 그곳엔 A6라고 쓰여있는 에러 표시가 반짝이고 있었다. 왜 이런 거지? 껐다 켜면 될 거야 하면서 전원을 껐다 켰다. 그래도 다시 빨간 표시가 써져있는 것이 아닌가. 아 무슨 일이지?! 처음엔 고장이 난 줄 알고, 보일러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가 밤 9시여서 내일 A/S 접수해야지 하고 그냥 맞는 번호일까 전화만 걸어본 것이었는데 벨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주유소에 전화를 걸었다. 원래 지나가다 본 주유소 번호를 누를까 하다가 기름통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면서 그 전화번호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난방유를 넣으려고 하는데요" 아저씨는 주소를 물어보셨다. 3번이나 물어보셨다. 그러다 출발하실 때 또 전화가 왔다. 그리고 집 주소를 다시 확인하셨다. 난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봤는데 한 드럼, 두 드럼 이렇게 단위가 매겨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한 드럼은 200리터라고 한다. 가격이 제일 궁금했다. 하필 요즘 휘발유 가격은 갑자기 치솟았다. 주유하는 비용도 비쌌기 때문에 등유의 가격도 궁금했다. " 한 드럼이 얼마예요? 22만 6000원... " 역시 비싸구나. 어쩔 수 없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서울이라도 난방을 켜야 하니까... 



 








30분이 채 안돼서 작은 주유차가 도착했다. 길에서 보던 주유소 차의 미니버전이었다. 귀여웠다. 나는 먼저 창고에 문 열러 들어가고 아저씨 아줌마는 긴 호스를 앞부분, 중간 부분을 들고 따라오셨다. 기름을 얼마나 넣을 거냐는 질문에 나는 되려 "이 기름통이 가득 차려면 얼마나 들어갈까요?" 여쭤보았다. 2 드럼이 들어간다고 하셨다. 기름 호스를 꽂아놓고 두 분은 집 주위를 둘러보셨다. "집이 넓어서 관리하기가 힘들겠어" 하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기름은 어느새 채워졌다. 나는 신식답게 카드로 계산했다(현금이었으면 조금 저렴했을까?) 다음에 연락하면 '분홍 집'이라고 말하면 금방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하셨다. 여기가 원래 집이 분홍색이었다고. 다른 집과 다르게 이곳은 분홍색이었다고 "네? 여기가 분홍색이었다고요?" "응 그러게 흰색으로 색칠했네" 

분명 이 집에 난방유를 매번 넣어주던 분들이신가 보다 그 옛날 아마도 몇 년 전 이 집의 색을 기억하시는 걸 보니. 








난 오늘 제주도의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도 제주도에 와서 갔던 음식점이나 마트를 제외하면 처음인 분들일 테다. 푸근한 인상의 노부부는 작은 기름차를 타고 금세 떠나셨다. 그 뒷모습 바라보며 나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  



늘 따뜻한 물이 당연히 나오는 집에 살다가 때마다 보일러의 기름을 떨어지지 않게 체크하는 일. 제주도에 와서 처음 하는 일이다. 내 인생 제주도에 와서 기름보일러를 써볼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인생은 참 재밌다. 오늘 난방유 덕분에 주유소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고, 나는 서둘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 도중에 어제 울고불고 소리 지르며 씻은 아이 생각이 났다.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2021년 10월 26일 
현재 제주도 등유가격  

리터당 1130원 
한 드럼 : 226,000원 

(주유소마다 약간의 가격차이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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