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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13. 2022

전원생활의  득과 실


날이 제법 따뜻해졌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여는 것도 추워서 덜덜 떠는 때가 있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온도가 확 올랐다. 오늘 아침은 이미 공기가 여름 느낌이 난다. 오랜만에 아빠와 아이가 등원하고 나는 집에 남아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며 걷는 정원을 산책한다. 가든 생활이라니, 내 인생 언제 다시 이런 호사스러운 삶을 즐길 수 있을까. 적어도 평생 서울에 산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번이 마지막 전원생활일 수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등원하려는 아이에게 분홍색 꽃이 눈띄었다. "엄마! 나무에 꽃이 피었어요!" 분명 얼마 전까지 이제 막 잎이 나오던 나무였는데, 며칠 새 분홍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아마 하루, 이틀 후면 만개할 모습이다. 어떤 나무의 꽃일까? 아주 예쁜 핑크색 꽃에 눈이 호강이다. 나중에 친정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여쭤보니 '모과나무'라고 말해주셨다. 모과나무가 있는 집이라, 참 낭만 있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가 모과차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모과나무에 꽃이 피었다

 




우리 집에도 유채꽃이 피었다. 유채꽃이 아주 거대하게 피었다. 그 옆으로도 아주 작고 귀여운 유채꽃이 피었다. 사실 처음에 남아있는 유채 잎을 보고 '웬 샐러드 잎이 지?" 생각했다. 아이랑 저 푸른 잎을 뜯어서 고기 싸서 냠냠 먹을까? 하고 얘길 나눴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사이로 유채꽃이 자라 있다. 유채꽃 잎이 이렇게 생겼구나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유채꽃을 보면서도 꽃이 예쁘게 피었구나 생각했지, 그 잎까지는 관심은 없었다. 이렇게 식물에 대한 나의 무지가 드러난다.  





유채꽃과 벚꽃나무




또 정원에 길쭉하게 나온 잎을 보면서, 튤립이 피려나 궁금해했는데 꽃이 피고 보니 그것의 정체는 수선화였다. 두 송이가 아주 탐스럽게 피어있다가 지금은 사라졌다. 수선화가 몇 송이 더 필 것만 같았는데 아쉽게도 딱 두 송이만 피었다. 그러나 수선화 두 송이는 얼마나 튼튼했는지 지난번 제주도에 호우주의보가 왔을 때, 그 거센 비바람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 후에도 꽤 오랫동안 꽃을 유지 주었다. 그 모습은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나의 전원생활은 도시에서 늘 생화를 사다가 꽃병에 넣어놓던 삶과 비교하면 얼마나 생기 넘치는 삶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식물의 생명력은 다른 곳에도 나타났다. 겨울에서 벗어나자마자 글쎄... 잡초가 벌써 한 여름처럼 자란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봄이 온 지 얼마 안 되어 분명 집안은 여전히 초겨울 혹은 꽃샘추위 느낌일 때도 있었는데, 창밖의 정원은 이미 여름이다. 잡초가 얼마나 튼실한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정원은 잔디인지, 잡초인지 모를 것들이 지천에 널렸다. 오고 가며 조금씩 솎아내던 잡초가 이제 걷잡을 수도 없이 빽빽하다.  




잡초가 가득하다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잡초가 마당에 가득했다. 이전에 살고 있던 신혼부부는 정원을 가꾸는데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당 가득 잡초는 물론이거니와 집 뒤편으로는 거의 숲처럼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지나면 아마 집 전체가 비밀의 숲처럼 잡초로 뒤덮이겠군'고 생각했다. 그때가 지난여름 8월 말의 풍경이니, 아마 앞으로 우리가 마당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된다면 그것은 다시 찾아올 미래의 모습이다.



역시 그 상태로 새로운 임대인을 맞이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을까? 다행히도 초가을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집주인은 마당을 싹 정리해 주셨다. 만약 정리되지 않은 집에 그냥 들어왔다면 우린 주택의 낭만 따위는 절대 느끼지 못했을 듯싶다. 아마 입주 처음부터 벌레와의 사투를 버렸거나, 아니면 정원을 산책하다 무성한 잡초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을 거다. 










그동안 조금씩 자라나는 잡초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 추웠기 때문에 그동안 정원을 지켜보기만 했다.  마침내 따뜻해진 날씨를 피부로 느끼자마자 우리는 정원에 씨앗 심기를 계획했다. 그런데 씨앗을 심으려고 보니 이미 정원에 자라난 잡초가 너무 많아서 어디에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으로 뽑다가 나중엔 곡괭이로 밀어버렸다. 내 키만 한 곡괭이를 처음 사용해봤다. 이것은 뽑는 용도일까, 흙을 가는 용도일까?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날 잠깐 곡괭이를 사용하고, 잡초를 뽑는데 힘을 너무 과하게 썼나 보다. 그날 오후 나는 한쪽 팔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밤새 팔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상추, 오이 씨앗을 심었다.




씨앗을 심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씨앗에게는 아무 소식이 오지 않았다. 씨앗을 심기만 하면 바로 새싹이 돋는지 알았다. 후후... 아무튼 지난번 팔이 아픈 이후로는 잡초 제거하는 것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정원에서 거닐었다. 그 후엔 종일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유튜브 보며 밥을 듬뿍 먹었더니 몸이 무거워졌다. 그래! 이번 주 잡초 뽑는 날은 오늘이다. 며칠 전부터 안방 앞 뜰에 잡초가 가득하다. 오늘은 아무래도 저곳을 해치워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엔 잡초를 하나씩 뜯어내다가, 아무리 뽑아도 표시가 나지 않길래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사정없이 잡초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헐크'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 후에야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잡초들이 어느새 조금씩 땅을 드러내며 사라졌다.





뽑아낸 잡초가 한가득, 그 후 정돈된 정원




그곳의 잡초를 해치워버린 후(?) 정원 군데군데 생긴 잡초를 조금씩 뽑았다. 일한 시간 40~50분 남짓, 얼굴과 몸은 온통 땀범벅이다. 하필 4월 초, 23도의 한낮에 잡초 뽑기라니,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르고 날씨가 흐리다는데 조금 무식했다. 꼭 이렇게 일을 안 해본 티를 낸다. 그리고 그 이후 내 허리가 사라졌다(아이고~허리야!).




부모님이랑 같이 살던 시절, 어느 시기가 되면 매일같이 가족농장에 다녀오신 후 저녁이 되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는데, 오늘 내가 꼭 그랬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역시 잡초는 하루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매일 성실하게 뽑아야 하나보다. 하지만 잡초 뽑기를 매일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이해할?









그 이후로잡초를 뽑고 또 뽑고, 매일 자라나는 잡초를 바라보다 보니 요즘 드는 생각은 이렇다.  전원생활의 반 할은 '잡초 뽑는 일'이 아닐까?



우린 이 잡초를 이겨낼 수 있긴 할까? 뽑고 뽑아내면 어느 순간 깨끗해지기는 하는 걸까? 결국 우리는 또 겨울까지 기다렸다가 이 잡초들이 모두 추워서 죽어버리길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잡초를 뽑다가 내 팔과 내 허리는 괜찮은 걸까? 나는 올여름 잡초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잡초 덕분에 기대가 되기도 하고, 초조해져 오기도 하는 제주 전원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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