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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21. 2022

불안이 노크할 때

종종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현재에 대한 안락함과 다르게 미래의 불안감은 가끔 나를 찾아와 노크한다. '나를 잊지는 않았지?' 




어제는 별일 없이 보낸 하루였는데 저녁이 되자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요즘 낮엔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엔 넷플릭스 보며 프랑스 자수를 하는 낙으로 살아가는데, 어젯밤은 넷플릭스를 볼 의욕이 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은 무거웠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운동장을 걸을 때도 한숨과 함께 걸었다. 




날씨는 춥고 어깨는 축 처지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이럴 때일수록 걸어야지 하면서 걸었다. 어차피 몸은 자연스럽게 걷게 되어있었다. 터벅터벅, 이게 운동인지 한숨인지 모르게 걷고 있었다. 




그때 트럭 한 대와 포클레인 한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운동장을 돌고 있던 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황급히 몸을 피했다. 다행히도 운동장의 사이드엔 뛸 수 있는 트랙이 있어서 그곳만 왔다 갔다 걸었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한가운데 흙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트럭과 포클레인이 흙더미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 포클레인이 그 흙을 떠서 트럭 뒤편 기계에 쏟았다. 그렇게 반복하길 여러 차례, 트럭 뒤편에 흙이 가득 쌓이자, 트럭은 운동장을 돌며 흙을 골고루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트럭 뒤에 실린 기구는 흙을 고루 펼쳐 뿌려주는 기계 같다.) 트럭에 있는 흙이 떨어지면 포클레인은 흙을 채워주고, 그러면 다시 트럭은 운동장을 돌며 흙을 뿌린다. 내가 운동장을 돌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들은 성실하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가 내뱉었던 한숨을 떠올려봤다. 그것은 아마도 내게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서, 그리고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니 어쩌면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몰라서 만들어낸 걱정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걱정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불안감도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현재를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오늘 아침에 봤던 트럭과 포클레인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내 옆에서 열심히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한숨 쉬며 미래를 걱정한다고 해도 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저 세탁기의 빨래는 내가 건조기로 옮겨놓아야 빨래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계속 한숨만 쉬면서 우울해 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차근차근, 성실하게 해야겠다. 어차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날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언제든 찾아올 테니, 현재의 삶이라도 충실하게 살아서 조금이나마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편이 낫겠다.



마치 오늘 아침, 흙을 채워주는 포클레인처럼 내 안의 지식을 충분히 쌓아서, 언젠가는 그 트럭처럼 고루고루 씨앗을 뿌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잘 자라서 미래의 내가 하나씩 사용할 수 있도록 좋은 열매로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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