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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20. 2023

5. 부부가 닮았다

추억에서 건진 단상

아내와 나는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옛 어른 들은 부부가 닮으면 잘 산다고 덕담까지 붙이곤 하셨다. 그런 까닭인지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으나 부부가 닮아서인지, 어른들의 덕담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기실 부부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닮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30년 넘는 세월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살았으니 닮아가고 있는 것은 맞을 것이다.


이과인 아내는 이성적이고 문과인 나는 감정적인 성향이라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젊었을 때의 나는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사회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차들을 보 분노했다. 파란불이 켜지면 나의 권리를 지키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즉각 횡단보도로 튀어나갔고, 그런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와 충돌할까 봐 걱정하며 나를 말렸다. 나의 분이 사그라들면 아내는 지나치는 자동차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너무 감적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후로 내가 자동차를 운전해 보니 노란불에 제대로 멈추지 못해 빨간불인데도 횡단보도를 지나쳐야 할 경우가 가끔 생겼다. 아내의 조언대로 이런저런 상황도 감안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마음씨 좋은 아내는 남의 말을 잘 믿성격인  반면, 고약한 나는 상대방을 일단은 의심하고 보는 편이다. 살다 보니 타인에게 속는 일이 생기고 주변에서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 많은 사건들을 보고 들으면서 아내는 세상이 조심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살다 보니 이 세상에는 뛰어난 인격을 보유한 믿을만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선 나는 좀 더 사람을 신뢰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입맛도 많이 달랐다. 아내는 건강에 최적화된 싱겁고 맵지 않은 음식을 좋아하였 나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맵고 짠 음식을 좋아했다. 런데 지금은 입맛이 서로 바뀌어 아내는 좀 맵고 짠 음식을 즐기고 있고, 나는 아내의 노력으로 싱겁고 맵지 않은  음식을 무리 없이 먹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얼굴, 다른 성격, 다른 취향을 가지고 다른 도시, 다른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살아가다가, 장성하여 주변의 우연한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된 부부이다. 결혼 초에는 서로 많이 달랐는데 같이 산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중간 어느 지점에서 얼굴도, 성격도, 취향도 닮아가고 있다.


 아내와 나 가끔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누가 먼저 이 세상 떠나더라도 재혼은 못할 것 같아. 30년을 넘게 서로를 맞추느라 고생했는데, 다시 맞추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서로를 닮아서 기쁜 건지, 아니면 지긋지긋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좋다. 부부가 닮아서 노년을 서로 같은 마음으로 의지하며 도와주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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