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이 유행하면서 크고 작게라도 당근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에겐 필요 없지만 버리긴 아까운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팔거나 나눔을 하면서 유용하게 쓰여 정말 잘 만들어진 플렛폼이다.
나도 가끔씩 당근을 한다. 아들들이 썼던 게임기나 시리즈물 만화 등을 사고 팔기도 했다. 올리기만 하면 금방 구매자가 나타난다. 큰 화분 등은 무료 나눔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집앞까지 오니 편하고 구매할 때는 가까우면 가고 멀면 반값 택배를 요청한다. 당근을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도 있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근으로 가장 잘 샀던 물건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장농이다. 우리집 장농은 체리색이 유행할 때 사놓은 장이었다. 유행이 지난 체리색은 방을 어둡게 하고 칙칙해서 바꾸고 싶었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비싸게 주고 산 장농이라 튼튼해서 바꿀 명목이 없었다.
그때 붙박이장이 있는 곳으로 이사가게 됐다며 흰색 12자 에넥스 장농이 당근에 나왔다. 사용한지 3년 밖에 안 됐다는 말과 가구 특성상 기사님이 다 조립해주신다는 말에 남편을 설득해서 장농값 13만원. 기사님 조립비 25만원에 장농을 구입했다. 쓰던 걸 사냐며 펄펄 뛰는 남편에게 사진까지 보여주며 에넥스 가구임을 강조해 겨우 설득을 시키고 사게 됐다.
20년 가까이 쓴 장농을 바꾸다 보니 정리가 만만치 않았다. 먼저 우리 장농을 무료 나눔으로 올려야 했다. 다행히 바로 가져가신다는 분이 계셔서 그 무거운 장농을 두 분이 싣고 가셨다. 장농에서 꺼낸 물건을 작은방에 옮겨놓고 기사님과 예약한 날짜에 조립이 끝나자마자 짐정리를 시작했다.
번거로운 일이긴 했지만 흰색 붙박이형 장농을 들여놓자 환해진 안방이 되었다. 기분전환이 되었고, 남편도 만족해 했다. 덕분에 쓸모없는 묵은 짐들까지 버리면서 정리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당근 초창기에 사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너무 깨끗해서 다들 새로 산 장농으로 알고 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니깐.
두 번째는 큰 아들이 첫 월급으로 당근에서 로봇 청소기를 사다 준 일이다. 벌써 5년 전이니 그땐 로봇 청소기가 지금보다 훨씬 비쌀 때라 새것은 부담되어 40만원을 주고 말없이 사 와서 나에게 안겼다. 불필요한 돈을 썼다며 야단했지만 사실은 감동했고, 써보니 너무 편해서 두고두고 고마웠다.
로봇 청소기. 건조기. 식세기는 젊은 세대에서 3대 이모님으로 불린다. 그 이모님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유선에서 무선 청소기만으로도 편리했던 내게 물걸레까지 벗어나게 해준 로봇 청소기는 가장 고마운 이모님이 되었다.
당근 에피소드는 나만 있지 않을 것 같다. 풀어놓으면 아마 한보따리는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