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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그 추억

by oj

김장을 끝냈더니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엄마와 네 자매가 해마다 의기투합해서 하던 김장을 작년부터 각자 따로 하기로 했다. 할 만했다. 오히려 편했다. 오남매가 먹을 김장량도 어마무시하지만 보쌈이 필수인 점심 준비에 모이는 사람까지 많아 그야말로 이틀 김장에 파김치가 된다. 그 수고가 얼마나 덜어질까 싶었는데 막상 처음 해보니 너무 편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돌아왔다. 남편이 수영에서 농사를 짓는 지인 분을 만난 뒤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농막을 드나들며 철철이 얻어먹는 농산물이 많아졌다. 여름 내내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호박을 가을엔 노각에 고구마까지 풍성한 나눔에 시장 갈 일이 없을 정도였다. 작년 김장 때 절인 배추를 주문했는데 그 분이 배추 5~6포기 정도를 또 주셔서 절여서 해야 했다. 웬걸 올해는 20포기 배추를 우리 몫으로 아예 남겨두셨다. 무까지 한아름 안겨다준 남편에게 난 고개를 절레거리며

"나는 못 절이니깐 당신이 알아서 해요. 당신이 갖고 왔으니까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배추는 실하고 맛있어 보였다. 작년에 절여보더니 요령도 생긴 듯했다. 금요일 저녁에 김장 비닐 두 개씩을 겹쳐서 세 개의 비닐에 7포기씩 넣어 소금물을 맞추어 절여두고 꽁꽁 묶어두었다가 새벽에 한 번 뒤집어 주었다. 아침에 보니 잘 절궈서 있었다. 남편이 배추를 씻어서 물을 빼고 그사이 난 양념 준비만 하면 되었다.


토요일 아침에 무채를 10개 정도 썰고 갓과 쪽파 등 양념들로 배추 소를 만들었다. 가까이 사는 언니가 도와주어 남편과 둘이 속을 넣기 시작했는데 포기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 끝났다. 난 뒷정리와 잔심부름만 하고 저녁은 보쌈 대신 작년처럼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두 해를 간편하게 김장을 하다보니 이제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엄마와 사는 동생 김치는 세 언니들의 담당이 되었다. 작년에 언니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농사짓는 친구에게 김장을 부탁했다. 편하다며 올해도 또 주문을 했다. 고추농사를 크게 짓는 친구라며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맛있다고 큰언니, 동생 것도 주문해서 올해는 나만 김장을 한 셈이다.


엄마와 어머님네 한 통, 결혼한 아들들도 작지만 두 통, 꼭 주고 싶은 지인에게 한 통, 배추를 주신 분께도 작지만 한 통을 이리저리 나누다 보니 두 통이 겨우 남았지만 뿌듯했다. 김장뿐 아니라 김장 나눔이 유네스코 무형 유산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눔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긴 덕분이다.


어릴 때 김장하는 날은 동네 잔치였다. 품앗이로 한달 내내 김장이 끊이지 않았다. 땅속에 묻은 독에 넣은 김장과 연탄 몇 백장을 사서 쌓아 두면 겨울 날 걱정이 없다고 흐뭇하하시던 젊은 엄마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님이 시골에 사실 때까지 농사 지은 배추로 해마다 식구들이 모여 김장을 한 기억도 새록하다. 농사 짓고 마늘 까고 그 많은 김장 재료들을 혼자 준비하시면서도 힘들다고 내색 한 번 안 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참 죄송하다. 엄마 역시도... 억척스럽고 강한 두 어머님께 배운 것이 참 많다. 20년 동안 김장을 함께 했던 긴 시간을 돌아보면 몸은 힘들었어도 살아가는 재미였고 사람 냄새나는 일이었다. 이젠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해마다 우리집 김장은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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