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며 쌓은 추억이 참 많다. 시골 추억은 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추석 때는 송편 빚고 같이 솔잎도 떼고 오솔길을 다니며 밤 주우러 다녔다. 설날 때는 사촌들과 같이 아빠가 만들어준 연을 날리고 눈이 오면 비닐 포대를 갖고 나가서 언덕에 올라 타고 내려오며 자연을 벗삼아 놀던 일을 아이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며 얘기 나눈다. 그 외에도 고구마 캐러가고 옥수수 따서 쪄서 먹고 냇가에서 놀던 추억들이 아련하다. 시골에서 보내는 명절은 아이들 정서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식구가 모여 했던 윷놀이는 그야말로 경쟁이 치열했다. 천 원씩 두고 두 팀이 나눠 윷놀이를 하면 아이들이 더 열정적이었다. 형님 큰 딸은 어릴 때부터도 욕심이 많고 지는 걸 싫어해서 조카가 이겨야만 게임이 끝날 정도였다. 지면 씩씩대고 눈물까지 흘렸던 일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 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장성해서 할머니와 고스톱을 함께 쳐드리고 지는 걸 싫어했던 조카는 시집 가서 아들 둘을 낳고 야무지게 살림하며 할머니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손자 손녀들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가끔 연휴가 짧을 때 역귀경 하셔서 우리집에서 명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형님집보다 우리집이 넓어 기꺼이 먼저 제안하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귀성 전쟁만 안 치러도 한결 편할 거란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며느리 셋이 음식을 맡아 각자 하나씩 준비하기로 했어도 매끼마다 다른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시골에서야 어머님 집이니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상을 차렸지만 막상 우리집이니 또 달랐다. 거창한 손님을 치르는 부담감과 뒷정리까지 만만치 않았다. 몇 번 명절을 치르니 귀성길이 힘들어도 내려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은 가까이 계셔서 그 수고가 한결 줄어들어 몸도 마음도 편해져 명절 모임을 기쁘게 감당한다.
요즘처럼 바쁘게 살면서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함을 느끼게 하는 명절은 며느리들에겐 피할 수 없는 부담이지만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가족들 모임은 늘 정겹다.
가끔 집안 분위기에 따라 제사가 많거나 대식구인 경우나 권위적인 집안 분위기로 남자들이 전혀 집안 일을 돕지 않는 등의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와 갈등을 빚는 사례를 접할 때마다 기쁜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왕 모이는 명절인데 서로 돕고 화합하고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마음을 열고 기쁘게 감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 명절 분위기도 우리 세대면 끝나지 않을까 싶다. 연휴가 되면 공항은 붐비고 해외 여행자가 늘고 있는 것이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머님들 세대가 끝나고 우리 세대가 시어른이 된다면 명절에 큰 의미를 두지 않거나 더 이상 다음 세대에게 주어지는 명절 부담은 사라질 것 같다. 어쩌면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했으니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어도 가족의 정을 나누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거나 그 의미까지 지나치게 축소되어선 안 된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은 온고지신의 정신과 오랜 전통과 문화이자 그 의미가 이어지기 바라지만 간소화 된 명절을 보내게 될 건 분명하다. 어떤 명절 분위가 될 지는 곧 겪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