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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l 29. 2024

표현이 다른 사랑


이은숙 작가의 <불량한 오십> 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CF 문구에 나오는 유쾌. 통쾌. 상쾌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공감되는 부분이 더 많았던 건 나도 50대였기 때문이랄까. 50대에서 오는 안정감과 편안하다는 말에서 요즘 내게 찾아온 봄날이 연상되었다.


특히 "우리 엄마는 호모 저스티스" 란 독특한 제목의 글을 읽고 모든 어머님들이 자식을 사랑해도 사랑의 방식은 다 같지는 않구나 싶었다. 작가님의 어머님은 그야말로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이 강점인 분이셨다. 어쩌면 작가님의 노후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머님은 우멘센스 편집장인 딸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라고 친구들에게 부풀리고 삼수해서 명문대를 간 손자에게 삼수해서 간 것도 대단한 거냐고 찬물을 끼얹고 막내 손녀딸에게는 애교는 많은데 예쁜 얼굴은 아니라면서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분이셨다. 그런 어머님을 극강의 현실주의자. 호모 저스티스로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목돈을 쥐어주시고 필요한 걸 사라는 어머님은 츤데레 면모를 보이셨다.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 병원 검진 때나 약이 떨어진 날은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복지관에 모셔다 드린다. 이젠 신분증까지 있어야 해서 대리 처방도 어렵게 됐다. 이왕 늦는 날이면 목욕도 모시고 갔다가 점심도 사드리고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엄마는 자식들이 뭐만 해드리면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난 뭐가 고맙냐고. 당연한 일인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해도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병원 데려다줘. 목욕 시켜줘. 점심 사줘. 옷도. 신발도 사줘. 복지관도 보내줘. 내가 딸들 덕분에 산다."

하신다. 자식을 키워주고 그 정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인 데도 돈 쓰고 수고했다며 늘 미안해 한다. 엄마가 좀 더 당당하고 위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달라고 오히려 당당히 요구하는 엄마 모습을 보고 싶다.


엄마가 당당하면 자식들이 눈치 본다고 하는데 엄마는 막내동생과 같이 살아서 그런지 괜히 자식 눈치를 더 보신다. 예전엔 안 그러셨다. 치매 이후에 기억력이 나빠지고 일상 생활이 불편해지고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우울감까지 찾아오신 뒤부터 더해졌다.


옷만 해도 그렇다. 편한 게 제일 좋다고 하시면서 사다드린 예쁜 옷은 옷장에 잘 보관해서 딸들의 타박을 많이 듣는다. 활달하고 인정 많고 억척스럽던 엄마.  언제나 자식 편이고 지금도 그러신 엄마. 인정 많고 베풀기 좋아하시던 소녀 같던 엄마.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시던 선한 엄마. 한없이 왜소하고 작아진 어깨를 보듬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하기만 하다. 엄마로서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셨던 엄마가 이젠 스스로도 더 사랑하시고 엄마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란 걸 아시면 좋겠다.


시어머님은 다르다. 위엄이 있으시다. 필요한 걸 사드리면 고맙다고는 해도 엄마처럼 행동하시지 않는다. 혼자 사시니깐 더 남들에게 비루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셔서 옷도 잘 갖춰 입으신다. 시골에 혼자 사실 때나 지금도 문밖에 나가실 때면 꼭 옷을 갈아입으신다.

밑반찬과 김치를 해다 드리는 형님께도 네 아들들과 며느리는 물론 손녀딸과 손자들까지 할머니를 잘 챙기는데 당당히 누리신다. 어머님 역시 자식들에게 통 크게 쓰시기도 하고 기분을 내시기도 한다.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 간다는 아들 며느리를 위해 쥐어주신 용돈 액수에 놀랐다. 왜 그렇게 많이 주셨냐니깐 언니. 형부들과 간다니 맛있는 거 한 번 사라는 말씀에 감동했다. 필요한 건 받으시고 누리시는 그런 당당한 어머님이 좋아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위엄이 있어야 한다. 기죽지 않고 당당해야 한다. 기죽지 않으려면 재산을 꼭 쥐고 있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과 다른 차원이다. 나이 들수록 말과 행동에서 품위와 위풍당당함하란 뜻이다.


부모여도 모성과 희생. 양육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무리 달라도 사랑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표현이 다를 뿐이다.


꼭 정석처럼 살 필요도 없다. 부모의 사랑 표현과 방식이 다른 것처럼 자기 방식 대로 살면 된다. 사랑의 표현이나 삶의 방식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자르지도 과하지도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애쓰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내키는 대로 불량한 50대를 살면서 유쾌. 통쾌. 상쾌한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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