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갈 때 먹는다고 계란을 가스불에 올려놓고는 안방에서 에어컨을 틀고 브런치 글을 읽느라 깜박 잊었다. 탁탁 소리와 함께 누린내와 탄내가 나면서 그제서야 아차 싶어 나가 보니 주방이 난리가 났다. 냄비는 다 타버리고 계란 두 개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주변은 온통 계란 폭탄으로 초토화 되었다. 건망증을 자책하며 이 더운 날씨에 한참을 치워야 했다.
화장실 불을 끄지 않고 나오고 '뭘하려고 했지?' 하며 한참을 생각하는 일도 이제 다반사이다. 나이가 드니 친구들과 언니들. 지인들 건망증 에피소드만 풀어놔도 이야기가 한 보따리이다.
50대 중반이 넘어가니 머리에선 떠올라도 단어가 기억나지 않거나 생각과 다르게 말이 튀어나올 때도 많다. 나만이 아닌 내 나이대 비슷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다들 나이는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다른 단어를 말해도 신기하게도 다들 알아듣고 이해한다. 대화를 하다가 마음은 급한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면 정말 답답하다. 한 번은 브로콜리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 파마한 채소 있잖어."
라고 말하니까 바로 브로콜리라고 알아듣고 패션후루츠가 생각이 안나서
"개구리알 과일."
이라고 하면 바로 맞춘다.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알록달록 예쁘고 비싼 과자 있잖어."
라고 하면 바로 마카롱이라고 답한다. 오히려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잘 한다며 순발력이 좋다고 말한다. 암튼 건망증이 점점 심해진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때였다. 이사를 끝내고 한숨 돌리다가 둘째 아들 유치원에 깜박 잊고 연락을 안 한 걸 뒤늦게 알았다. 하원 시간이 훌쩍 지나 놀라서 부랴부랴 이사 전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로 올라가니 이사오신 분이 경비실에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경비실로 갔다. 의자에서 누워 자고 있는 아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미안하던지 내 건망증에 화가 났다. 잊을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까먹다니 한심스러웠다. 울거나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경비실에 가서 침착하게 기다린 아들이 대견해 미안하다며 한참을 안아주었다. 그 일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됐다.
한 번은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숙소를 이동해야 해서 갖고 다니기 편한 배낭을 맸다. 감천 문화 마을에 갔다가 곳곳에 예쁜 벽화가 있어 사진을 찍는다며 배낭을 내려놓고는 쫄래쫄래 그냥 걸어가는 나를 보며 친구 둘이서 언제쯤 가방을 찾는지 보며 뛰따라 오고 있었다.
한 골목으로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올 때야 왠지 허전함을 느꼈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는데 친구 둘이서 뒤에서 깔깔 대며 웃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둔하냐고 이제 생각 났냐며 한참을 놀렸다. 너무 어이없어 웃다보니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박수치며 박장대소하는 사진까지 찍혀 흑역사로 남았다. 지금도 그 일이 생각날 때면 스스로 너무 대책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여행갈 때면 되도록 크로스 가방을 맨다. 지금은 챙기거나 갖고 나갈 물건은 되도록 보이는 곳에 두고 핸드폰 메모 일정을 꼭 확인하고 점검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한 친구는 자기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며 치매 검사가 필요할 정도라고 말한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넘기지만 나중에 더 심해지지 않도록 두뇌에 좋은 운동이나 활동이 필요할 듯하다.
비슷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지만 핸드폰을 냉장고에 넣고 한참을 찾았다는 소리는 곧 남의 일이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