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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Sep 18. 2024

아이들의 울타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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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이 아플 때이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질병 앞에서 부모들이라면 모두 느꼈을 고통이 찾아온다.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애가 타는 그 마음.


아이들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다치고 넘어지고 부러지고 원치 않는 질병이나 사고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지만 부모이기에 차분하게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돌봐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땐 빨리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큰 아들로 인해 여러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첫 돌이 되기 전에 와이셔츠를 다리고 세워둔 다리미를 만져 다리미가 넘어지면서 다리에 닿아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코드를 뽑은 상태였어도 여린 피부여서 금방 허물이 벗겨지면서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부랴부랴 안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집에서 잘못 소독하면 안될 것 같아서 약국으로 가서 약사의 응급처치를 받았다. 놀라서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달랬는데 그 흉터가 연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다. 손에 닿는 곳에 둔 내 잘못이라 너무 미안했다.


22개월 땐 내 애간장이 다 녹아들었다. 배가 아프다고 시작된 아이의 질병은 급기야 맹장 수술로 이어졌다. 병명도 모른 채 동네 병원에 다니다가 세브란스 응급실까지 갔지만 찾지 못했다. 서울역 소아 아동병원에 다니면서 급기야 떼를 써서 입원 시킨 후에 여러 검사로 맹장임을 알게 되고 급박하게 수술했다. 어린 아이들에겐 잘 찾아오지 않는 질병이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복막염까지 진행 되어 위급한 상황이여서 그때 흘린 눈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린다.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는 두 돌도 안 된 아들이 겁에 질려 엄마를 찾는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반 병동으로 옮겼어도 염증이 심한지 고열이 계속되어 두 주간 입원하고 퇴원할 때까지 한시도 맘을 놓지 못하고 가슴을 졸였다.


퇴원한 뒤에도 밤에 자다가 몇 번씩 자지러지는 아들을 안심시키고 다독이며 노심초사 키웠다. 너무 어릴 때 겪은 힘들었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자리잡아 나중엔 분리 불안을 겪었다. 배에 남은 흉터는 자랄수록 더 커져 여전히 선명하지만 사랑의 끈이고 안도의 흉터이다.


4살 땐 목욕탕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 실컷 물놀이를 하고 나오다가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모서리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일요일이라 마침 남편과 함께 있을 때였다. 아이는 자지러졌고  흐르는 피를 수건으로 감싸안고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차가 없을 때였고 택시 타러 가기엔 급한 마음에 들어오는 주민에게 도움을 청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는 거의 울다 지쳤고 남편은 놀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고, 난 둘째를 안고 큰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가면서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도와주신 주민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응급실에 가서 찢어진 머리를 10바늘 이상 꿰매야 했다. 가벼운 뇌진탕으로 찢어진 부분만 꿰매면 되어 다행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돌도 안 지난 둘째 아이까지 데리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었다. 며칠 뒤 실밥을 뽑고 상처가 잘 아물었지만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어 그 뒤로 아이들이 목욕탕에서 나올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성인이 된 뒤로는 재작년엔 손목이 부러지는 교통사고로 또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회생활 2년 차가 된 아들이 회사 차로 출장 가다가 신호위반 차에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에어백이 터져 손목이 부러졌다. 차를 폐차시킬 정도의 큰 사고였다. 사고에 비해 손목만 다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연락을 받고 용인에 있는 병원까지 가면서 걱정과 두려움과 신호위반 차에 온갖 분노가 솟구쳤다. 수술을 하고 손목에 철심을 박고 1년 뒤에 철심을 빼는 수술로 손목 흉터까지 덤으로 남아있다. 아들이 새차를 산지 얼마 안된 터라 차가 괜찮은지 묻는 지인들이 많았지만 내겐 차는 중요치 않았다. 회사 차가 아닌 새차였어도 말이다.


다리. 배. 머리. 손목까지 온갖 흉터로 가득한 아들을 볼 때면 맘이 아프다. 내 잘못으로 생긴 상처가 아닌 데도 마치 내 잘못 같다. 흉터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줄 때면 나만큼이나 놀라고 속상해하는 여자 친구가 있어 남편 외에 동지가 늘어난 기분이다.


아이들의 건강은 부모의 행복이다. 아플 때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제발 건강하게만 회복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젠 조그만 흉터라도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는 아이들을 지키는 울타리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고, 아이들이 다칠 때면 엄마는 흉터는 없어도 마음속에 피멍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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