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선풍기없이 잠을 잤다. 비가 오더니 낮기온도 현저히 떨어지고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야 가을이구나 싶고 살 것 같다. 입추도 추석도 처서도 지났지만 더위는 물러갈줄 몰랐다.
올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없었다. 추석이 지났어도 낮 기온이 33도라니 말도 안 되는 날씨를 처음 경험했다. 매년 선선한 가을바람을 체감하며 한가위를 맞았는데 도무지 기온이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동남아가 된 것 같다.
비가 내린 뒤 처음으로 오후 기온이 30도 아래란 기상청 보도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태풍도 우리나라를 빗겨가서 큰 피해없이 지나간 건 행운이었다. 가까운 주변 나라들의 연이은 태풍 피해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다. 우리에게만 안 오면 된다는 안일주의나 방관주의는 피해야 한다. 모두가 평안하고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란다.
여름 내내 에어컨만 끼고 살았다. 낮은 종일, 잘 때도 28도로 맞춰놓고 새벽에나 껐다. 아직 나오지 않은 전기세가 걱정된다.추석 때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의 방에 에어컨을 놔드리며 명절 선물까지 바꿔놨다는 기사를 봤다.
어머님이 시골에 사실 때 우리도 안방에 창문형 에어컨이라도 놓아드렸다. 그 뒤로 밤에 쾌적하게 주무신다고 그렇게 좋아하셨다. 이사오면서 트윈 에어컨을 새로 설치해 드려서 매년 여름을 편안히 지내셨다.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께 더 필요한 것이 에어컨이다.
너무 더워 휴가도 늦게 다녀왔다. 새롭게 맞은 가족들과 가까운 가평으로 1박2일 가볍게. 예전에도 휴가철은 피해서 다녔다. 사람 많고 차 막히는 성수기만 지나도 한가한 데다 비수기 가격이 낮아져서 여러모로 좋다. 광복절이 지난 이후나 날씨 좋은 가을에 주로 여행을 다녔다. 더위에 강해서 여름을 겨울보다 좋아했는데 점점 숨 막히는 더위를 경험하니 이젠 달라졌다.
여름 내내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 모임이나 약속 잡는 것도 피하고 아이스 커피만 달고 살았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준비하고 나가는 것도 힘든 여름이어서 혼자 도서관에 가거나 남편과 영화를 보면서 시원한 실내를 찾아다녔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남편은 여전히 따뜻한 커피가 최고라고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랑이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라니 생각만 해도 덥다. 아이스 커피를 마실 때면 잠시라도 더위가 달아난다. 아침에 한 잔, 오후에 한 잔, 남은 얼음에는 물을 채워 종일 마시면서 여름을 보냈다.
또 하나 여름 내내 수영장 가는 것이 즐거웠다. 물의 온도는 항상 28도 전후로 비슷해도 봄. 가을. 겨울엔 물에 들어갈 때면 몸이 긴장한다. 36.5도의 몸의 온도에 28도는 낮은 온도는 어쩔 수 없는 차가움을 느낀다.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적응되지만 처음엔 움츠러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올 여름은 더위를 몰아내는데 최고였다. 심지어 물에서 나오기 싫어 강습 외에도 자유 수영을 많이 다녔다.
추석 명절 동안 휴관이라 연휴가 끝나자마자 남편과 자유 수영을 다녀왔다. 며칠 동안 명절 후유증이 싹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전 부치고 상 차리고 손님 맞고 많은 일을 한데다 날도 덥고, 많이 먹기까지 했으니 몸이 무거웠다. 한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수영하고 나니 한결 개운해졌다.
여름 내내 아이스 커피와 수영은 폭염에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올 겨울 추위도 심상치 않고 기후 변화로 앞으로는 더위가 더하다는데 이제 계절에 적응할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