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상담-2
‘누군가가 저에게 의존할 때 살아있다고, 가치있다고 느껴져요.
제가 먼저 의존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항상 상대방이 저의 안정되어 있는, 잘 흔들리지 않는, 밝은 모습을 보고 찾아오고 저는 그걸 받아줬어요. 그리고 그 의존을 그들의 사랑방식으로 느꼈고요. 그때서야 저도 안심하고 마음을 열지요. 하지만 항상 상대방이 기대는만큼 똑같이 기대진 않았어요. 저의 그런 모습은 원하지 않을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불안을 잘 숨기는데 훈련된 사람으로 살았어요.
그것도, 상대방이 떠날까봐 취한 저만의 방식이겠지요?’
‘아, 썸머씨… 이 지점이 경계선 성격장애로 썸머씨를 규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썸머씨는 따뜻한 사람이에요. 약함을 품을 줄 아는…’
‘맞아요. 그렇게 살며 만족감을 얻었는데, 근데 그게 제대로 무너진게… 이번에 상담을 받으면서 였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힘들어도요, 친구들 앞에선 어느정도 선을 지키며 힘들어했어요. 근데 이번에 상담 받고, 제 실체를 알고 나니깐, 내가 정말 겁이 많고 연약하다는 것을 수치로 보고 나니깐, 무너졌던 것 같아요. 와르르… 약국에서 가슴이 너무 쪼이고, 숨을 크게 내쉬기가 어려워요. 아침마다 너무 힘들고 점심도 도망치듯 나가서 먹어요.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싶을 때, 친구들이 저를 찾아와주고 격려해주고, 제 힘듦을 이해해줬어요. 너무 허하니까 전화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그랬어요. 저에게 기대었던 친구들에게 제가 기대니까 어색했는데, 그리고 이게 맞나 싶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히려 친구들이 나도 상담가볼까…? 라고 말해줘서 오히려 내가 솔직하게 내비치는게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나 싶었어요.’
‘썸머씨, 지금 계속 상담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썸머씨는 이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달리 유대감이 강하고, 통제력이 있어요.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요. 그러니 너무 스스로를 이 안에 가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선생님, 제가 이 기질과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만큼이라도 살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자책하지 않아도 될까요?’
‘계속 말했지만, 썸머씨. 지금 느끼는 감정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에요. 모든 감정은 이유가 있고, 사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죠. 그러니 자책할 필요도 없고, 그 감정을 인정해주면 되어요.’
이 상담 다음 날 친구를 만났다. 역시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의 상태가 그 모든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으려 애써서 완성된 것이라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산 것이라는 거다. 살려고 그랬으니, 나의 지금 모습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아,,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나의 단점들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살려고 만들어진 특성이라 생각하니, 스스로가 그리 밉지 않아졌다. 스스로를 사랑하기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첫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