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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Apr 16. 2024

고난은 해가 아니다

고난은 해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해를 입는다는 것은 손실, 상실을 의미합니다. 물질을 손해 보는 것이라면 필수적인 것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죠. 신제 부위가 손상되거나 상실되는 것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는데 생명은 누구나 상실되는 것이므로 진정한 궁극의 해란 생명을 영원히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사기나 도둑을 혹은 재앙을 맞아서 재산이 줄어드는 것은 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수품이 상실되는 것이 해로운 것이죠. 신체 부위가 잘려 나가거나 못쓰게 되는 것이야 말로 심각한 해, 손실이죠.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사람에게 해라는 것은 위에 언급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당하는 고통이나 고난은 해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고난에서 벗아나기 위해 인내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것은 큰 해가 될 수 있으며 생명을 영원히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난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오게 되지만 이 악한 세상에서 의를 고수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고난은 사람을 연단하고 강화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인내를 성공적으로 이루면 승인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죠. 야고보 1:2~4) 예수도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5:8)


불의한 행동을 해서 받는 부끄러운 고난이 있습니다. 옥고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갇혀있음 자체가 고난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라도 이러한 고난을 통해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게 작용하게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손실,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원인이나 양상은 매우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든 그에 굴복하고 인내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해로 작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영원한 상실을 가져옵니다. 고난에 직면하여 투덜거리는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있게 되는 이 고난을 올바르고 지혜롭게 심지어 기쁘게 인내한다면 그것은 결코 아무런 해로 작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유익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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