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대한 책임
하루를 편하게 보냈다면 그날은 무의식에 따라 발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 것을 의미합니다.
무의식은 적어도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처음 배울 때는 의식을 집중해야 합니다. 또 성격상 그렇게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보고 있다면 딴짓을 할 수 없죠.
의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죠. 힘이 듭니다. 그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죠.
그런데 반복적으로 배우고 익히면 결국 몸이 외우죠. 무의식화 되는 것입니다. 몸을 무의식의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것이 많아지죠. 40세가 되기 전에 95% 이상이 그렇게 무의식화 된 것에 따라 삶을 살죠.
걷는 것, 먹는 것, 씻는 것을 비롯하여 운전하는 것, 말하는 것, 직장에서의 업무 등등. 왼발, 오른발, 40cm 이처럼 의식적으로 신경 쓰면서 걷지 않죠. 어떤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하고자 하면 그 생각에 해당하는 단어와 어법을 일일이 의식적으로 찾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동으로 진행되죠.
처음에 한국어를 배울 때는 그렇지 않죠. 받아쓰기 시험 등 상당시간 의식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배우게 되죠. 그러나 때 되면 더 이상 그런 수업은 받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성격의 무의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감정의 표현, 말, 행동 일체의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무의식이 되게 한 모든 과정이 자신의 의식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화 된 자신의 인격 일체가 그러합니다. 그는 이미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무의식도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이 좋을 법한데 그렇다면 전자를 그렇게 할 필요가 더 큰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의식적으로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데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런 태도와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에 대한 숭배를 하는 것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뭐가 자유를 제한받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거부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주장이 들어 있는 철학책을 읽어 본 적도 없고 강연을 들은 적도 없고 또 의식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융이 집단무의식이라고 하는 것과 성격이 비슷한 것입니다. 후성유전된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와 같은 무의식에 따른 행동은 책임이 없는 것입니까?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형성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이 형성한 것이든 원인을 모르는 것에 의해 형성된 것이든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요.
의식적인 노력을 강하게 기울여서요.
그러므로 인간은 무의식이라는 혹은 무의식이었다는 이유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란 의식을 말하는 것이며 선천적으로 주어진 주권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책임은 다른 누구 혹은 그 무엇에도 넘길 수 없습니다.
욕을 하는 인간은 죽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죠.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의식적으로 말씀인 진리를 배워 자신의 뇌에 형성된,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바꿔야 합니다.
창조의 법칙을 배워 그것으로 자신을 통치하여 악성 무의식을 제거해야 합니다.